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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결의에서 도화경제까지...봄을 반기는 복사꽃의 문화적 함의 [스프]

[종횡만리,성시인문(縱橫萬里-城市人文)] 허베이성 줘저우시, 후난성 창더시 (글: 한재혁 전 주광저우 총영사)

도화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바야흐로 봄꽃의 계절이다. 꽃은 피어서,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 삶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더해준다. 꽃이 지니는 역사와 문화적인 함의는 중국에서도 매우 크다. 몇 년 전 중국을 대표하는 꽃을 조사한 결과 10위 안에 모란(牡丹), 매화(梅花), 국화(菊花), 난꽃(蘭花), 연꽃(荷花), 수선화(水仙) 등이 포함되었다. 순위에 들지는 못 했지만, 유난히 많은 스토리를 품고 있는 꽃이 있으니 복사꽃, '도화(桃花, 타오화)'이다.
중국본색 한재혁1 활짝 핀 복사꽃, 桃花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 고전 <삼국지(三國志)>에는 첫 회부터 복사꽃 배경이 등장한다. 그 유명한 '도원결의(桃園結義)' 장면이다. 장비(張飛)는 "내 장원 뒤편에 복숭아밭이 있는데, 꽃이 한창이오(吾莊後有一桃園,花開正盛)"라면서 현덕(玄德)과 운장(雲長)에게 우리 세 사람이 형제를 맺고 함께 힘과 마음을 모아 대사를 도모하자(我三人結為兄弟,協力同心,然後可圖大事)고 제안한다. 사실 '삼국지 정사(正史)'에는 도원에서의 결의와 관련된 기술이 없다. 우리가 <삼국지>라고 부르는 이야기 책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 등장하는데, 실제 역사에서 세 사람의 '도원결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야기꾼들이 굳이 복숭아밭을 배경으로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본색 한재혁2 줘저우(涿州)의 '도원결의 정자(结义亭)'

아마도 복사꽃이 갖는 함의와 그로 인한 극적 효과 때문일 것이다. 복사꽃은 여러 개의 꽃잎이 꽃 한 송이를 이루어 단합과 우의(友誼), 화해를 상징한다. 또, 겨울이 가고 봄이 한창일 때 화사하게 피어 시작과 희망을 의미한다. 파릇파릇한 봄빛이 올라오는 장원에서 분홍빛 선연한 복사꽃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날에 검은 소(烏牛)와 하얀 말(白馬)을 제물로 준비하여, 세 장정이 황건적(黃巾賊)을 비롯한 불의(不義)에 붉은 피로 맞설 다짐을 하며 통음(痛飮)하는 설정은 색채감이 강렬한 영화적 장면을 연상시킨다. 수백 년 전 전문 이야기꾼들이 평서(評書)라는 형식을 통해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관객들에게 소리높여 삼국지를 읽어주면서 드라마틱한 시작을 하기에 좋은 구성이라 하겠다.

도원결의가 있었다고 알려진 장소인 유주(幽州) 탁현(涿縣)은 베이징에서 멀지 않은 현재의 허베이(河北)성 줘저우(涿州)시이다. 줘저우시는 바오딩(保定)시에 속한 현급의 시로 인구 65만 명의 중소도시이다. 줘저우는 복숭아가 많이 나고 봄에는 복사꽃이 많이 핀다. 장비의 고향마을, 도원결의 장소 등을 정비하여 관광명소로 활용하고 있다.

복숭아와 복사꽃은 삼국지 훨씬 이전부터 문화 속에 등장한다. 전설 속 서왕모(西王母)는 과수원에서 신비의 납작복숭아(蟠桃)를 길러 신선들에게 나눠준다. 복숭아는 불로장생을 상징한다. <서유기(西遊記)>에서는 손오공이 서왕모의 과수원에 들어가 복숭아를 따 먹는 소동을 벌인다. 시경(詩經)에는 "복숭아나무 무성한 가지에, 복사꽃이 곱게도 활짝 피었네(桃之夭夭, 灼灼其華)"라는 유명한 시구가 등장한다. 이삼천 년 전에 지어진 시에서 원시적 활력과 찬란한 자연을 느낀다.

성당(盛唐)의 시인 최호(崔顥)는 "작년의 이즈음 이 문 안에서, 복사꽃과 함께 발갛게 빛나는 그녀를 보았지(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그 아름다운 모습은 어디를 갔을거나, 복사꽃은 예전처럼 봄바람에 웃고 있는데(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라고 읊었다. 복사꽃은 애잔한 아름다움과 그리움의 대상이다.

또 다른 익숙한 말로 '무릉도원(武陵桃源)'도 있다. 도연명(陶淵明)의 걸작 '도화원기(桃花源記)'에는 진(晉)나라 때 무릉(武陵) 지역의 고기잡이가 복사꽃이 핀 수풀 속으로 들어가 세상과 격리된 마을을 발견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怡然自樂)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복사꽃은 사람을 이상향(理想鄕)으로 이끄는 안내 역할의 길상물(吉祥物)이 된다.

도연명이 이야기한 지역이 어디인지 이제는 알 수 없으나, 지형이나 지명의 유사성과 도연명과의 인연 등을 근거로 몇 군데 지역이 '무릉도원'임을 자처하고 있다. 후난(湖南) 창더(常德)의 도화원(桃花源), 후베이(湖北) 스옌(十堰)의 도화협(桃花峽) 등 십여 곳에 달한다. 사실 중국에서는 '무릉도원'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고 세상 밖의 이상향이란 의미로 '세외도원(世外桃源)'으로 부른다.
중국본색 한재혁5 제목에 복사꽃을 내세운 최근 판타지 드라마 포스터

비슷한 정서를 읊은 작품으로 당인(唐寅)의 '도화암가(桃花庵歌)'가 있다. "복사꽃 산골에 복사꽃 암자가 있는데, 복사꽃 암자에는 복사꽃 선인이 산다, 복사꽃 선인은 복숭아나무를 심고, 복사꽃을 따서 술을 바꿔 마신다(桃花塢里桃花庵, 桃花庵下桃花仙; 桃花仙人種桃樹, 又摘桃花賣酒錢); 술이 깨면 꽃 앞에 앉아 있고, 술에 취하면 돌아와 꽃 아래서 잔다; 깬 듯 취한 듯 하루가 가고 하루가 온다, 꽃이 지고 꽃이 피고 일 년이 가고 일 년이 온다(酒醒只在花前坐, 酒醉還來花下眠; 半醒半醉日復日, 花落花開年復年); 늙어 죽더라도 꽃과 술 사이 이기만을 바라며, 권력 앞에 머리 수그리기는 원치 않는다; 차나 말이나 비싼 것은 높은 분들의 취미고, 술잔과 꽃가지는 가난한 자의 벗이다(但願老死花酒間, 不願鞠躬車馬前; 車塵馬足富者趣, 酒盞花枝貧者緣)"라고 풍자한다. 복사꽃은 신선이 되고픈 이들에게 꽃그늘을 주고 말동무가 되고 부귀에도 비굴해지지 않으며 술 바꿔 먹을 돈까지 주는 좋은 동반자가 된다.

백거이(白居易)의 <대림사 복사꽃(大林寺桃花)>도 있다. "사람 세상에는 4월이 되니 꽃내음이 다했는데, 한적한 산속 사찰에는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네(人間四月芳菲盡, 山寺桃花始盛開); 봄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찾으려 해도 찾지 못했는데, 이곳에 숨어들어와 있을 줄은 몰랐네(長恨春歸無覓處, 不知轉入此中來)". 이백(李白), 두보(杜甫), 원목(袁牧), 한유(韓愈), 육유(陸游), 원진(元稹), 소식(蘇軾) 등 걸출한 시인들 중에서 복사꽃을 읊은 시 한 편이 없다면 이상할 정도이다.
중국본색 한재혁
린즈(林芝)의 복사꽃 풍광

복사꽃은 열매로 맺어져 복숭아를 선사하지만, 꽃 자체도 미용용으로 활용된다. 고대 의약서는 복사꽃이 기미, 잡티나 주름 제거 등 피부 미용에 효험이 있다고 적고 있다. 직접 바르기도 하지만 차나 술로도 만들어 마신다. 복사꽃같이 환한 얼굴이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듯싶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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