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지역을 뒤흔든 이번 산불은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번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말 그대로, 괴물 같은 불길을 극적으로 뚫고 나온 분들도 있었는데, 정형택 기자가 그 순간들을 직접 들어봤습니다.
<기자>
검은 연기로 가득 찬 하늘에 불꽃이 날리던 지난 25일 저녁.
68살 최동철 씨의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최동철/경북 영양군 석보면 : 불이 갑자기 날아오니까 뭐 어휴 뭐 말을 할래도.]
아내와 9살, 11살 두 손자, 그리고 거동이 어려운 이웃 3명을 차에 태우고 급히 탈출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불운이 겹쳤습니다.
[최동철/경북 영양군 석보면 : 아무것도 안 보이고 길도 안 보여서 가다가 앞바퀴가 빠졌어.]

불바다 속에서 애를 태우던 중 또 다른 탈출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최동철/경북 영양군 석보면 : 그래서 막 섰지. 막 손들고. 우리 손주만. 둘 태워달라고.]
극적으로 만난 이웃 차량에 어렵게 올라탔습니다.
[최동철/경북 영양군 석보면 : 뒷좌석에 우리 네 사람하고 일곱 명이 다 탔어.]
하지만 그 차마저 타이어가 터져버렸습니다.
최 씨 일행은 거센 불길을 피해 이곳 계곡으로 내려온 뒤 물속에 몸을 담갔습니다.
[최동철/경북 영양군 석보면 : 손주들 업고 막 들어가서 있으니 불이 또 이렇게 한 번씩 막 불이 날아오니까. 애들 막 벌벌 벌 떨어서 울지.]
그렇게 공포에 떨다가 근처를 지나던 구조차량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인근 마을 68살 신인호 씨에게도 그날의 공포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읍내에 잠깐 나와 있었는데, 대피하라는 긴급 재난문자가 왔답니다.
[신인호/경북 영양군 석보면 : (아내) 혼자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더 돼서. 어쨌든 그건 내가 불길을 뚫고 집까지 왔어요.]
이미 집에는 불이 붙은 상황.
이곳저곳 찾아봤지만, 아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인호/경북 영양군 석보면 : 불이 또 내 옷에 붙더라고. 냇가에 내려가 물을 뒤집어쓰고 또다시 올라왔어요.]
몸에 붙은 불을 끄고 대피하면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지만 아내의 행방은 알 수 없었습니다.
짙은 연기와 불구덩이를 뚫고 대피한 윗마을에서 다행히 아내를 만났지만 집과 축사는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신인호/경북 영양군 석보면 : 이제 뭐 아무 의욕도 없고. 지금 내일 당장 걱정이고 막막할 뿐이지 뭐야.]
(영상취재 : 이용한, 영상편집 :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