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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데드락에 걸린 헌재?…3가지 경우의 수 [취재파일]

5:3 데드락에 걸린 헌재?…3가지 경우의 수 [취재파일]
헌법재판소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변론이 종결된 지 1달 넘게 지났지만 헌재는 여전히 선고기일을 확정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선고가 지연되는 이유를 놓고 갖가지 추측이 나옵니다. '8:0 파면이 확실하다.', '5:3 기각이 유력하다.' 등 희망사항을 반영한 것인지 조회수를 올리려는 것인지 목적은 알 수 없지만 근거가 없는 것만은 분명한 호언장담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 헌법재판관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입니다. 결정 방향이나 선고 날짜를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당위에 대한 호소나 소망을 담은 희구를 현상에 대한 분석이나 전망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헌재, 선고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의 결단이 이렇게까지 늦어지는 이유를 여러 정황을 근거로 추정해 볼 수는 있습니다. 일단 재판관들 사이 이견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결정 선고 이전에 극적으로 모든 이견이 해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견이 없는데도 그저 결정문 다듬느라고 시일이 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렇다면 의견이 어떻게 갈려 있기에 헌재가 아직도 결정을 못 하고 있는 것일까요? 유력한 분석 중 하나는 헌재가 선고를 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못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사 이견이 있더라도 선고가 이렇게까지 지연되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면 이견이 있는 채로 결정을 선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결정을 발표하지 못 하는 것은 헌재가 선고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

8인 재판관 체제에서 헌재가 탄핵심판 선고를 못 하는 상황으로는 어떤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을까요? 사실상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8인 재판관 체제의 유일한 기능 마비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바로 헌법재판관 8명의 의견이 5 대 3으로, 다시 말해 인용 5명 대 기각 또는 각하 3명으로 갈려 있는 상황입니다. 헌재가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반드시 전원일치 의견으로 결정을 선고할 의무는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견이 있으면 이견이 있는 대로 선고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8인 재판관 체제에서 인용 의견 5명과 기각 또는 각하 의견 3명으로 갈릴 경우 사실상 선고를 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8인 재판관 체제에서 5:3은 탄핵심판 결정의 실질적 정당성에 문제가 생기는 사실상 유일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탄핵심판 파면 선고를 위한 정족수는 6입니다. 재판관 정원이 완전히 채워진 9명 체제든, 1명이 빠져 있는 8명 체제든 6명 이상의 재판관이 탄핵심판 청구가 타당하다고 인정해야 피청구인에게 파면 결정이 선고됩니다. 거꾸로 말하면 8명 재판관 체제에서 3명 이상의 재판관이 기각 또는 각하 의견을 낼 경우에는 인용(파면) 의견을 밝힌 재판관이 더 많다고 하더라도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이 선고됩니다. [8명 체제에서 기각 또는 각하 의견이 3명이면 '기각' 결정이 선고됩니다. 기각 의견 없이 각하 의견이 4명 이상으로 재판관 총원의 절반 이상인 경우에만 '각하' 결정이 선고됩니다.]

그런데 5:3 의견으로 기각 결정을 선고할 경우 실질적 정당성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로지 이 경우에만 9번째 재판관의 의견에 따라 탄핵심판 결정의 방향이 정반대로 뒤바뀌기 때문입니다. 만약 9번째 재판관이 합류해 인용(파면) 의견을 내면 6(인용) vs 3(기각 또는 각하)가 되기 때문에 탄핵정족수 6명이 충족돼 파면 결정이 선고됩니다. 반대로 9번째 재판관이 합류해 기각 또는 각하 의견을 내면 5(인용) vs 4(기각 또는 각하)가 되어서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이 확정됩니다. 정상적이라면 헌재에 합류하는 것이 당연한 9번째 재판관의 의견이 결정의 방향 자체를 뒤바꾸는 '캐스팅 보트(Casting Vote)'가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9번째 재판관의 임명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헌재는 5:3 결정을 선고하기가 사실상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탄핵심판 또는 (역시 6명 위헌정족수가 필요한) 위헌법률심판 등에서 헌재가 5:3 기각 결정을 선고한 선례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8인 체제의 유일한 기능 마비 포인트…'5:3 데드락' 상황

9번째 재판관으로 국회가 지명한 마은혁 후보자

물론 8인 재판관 체제에서 5:3 기각 결정을 선고하는 것이 법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우선 8명 재판관 체제에서 탄핵심판 사건 결정을 선고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헌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8명 선고 가능 선례를 확립했습니다. 5:3은 8인 재판관 체제에서 인용(파면) 의견이 탄핵정족수 6명에 이르지 못 한 상황 중 하나일 뿐입니다. 따라서 법률적으로 선고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5:3 결정을 선고한다면 9번째 재판관이 참여했다면 결론이 완전히 달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실질적 정당성이 확보되기 어렵습니다. 특히 국회가 이미 9번째 재판관으로 마은혁 후보자를 지명했고, 그럼에도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가 지명한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고 헌재가 두 차례나 지적한 상황에서, 9번째 재판관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5:3 결정을 선고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마은혁 후보자

문제는 헌재가 두 차례나 위헌이라고 지적했음에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은혁 후보자를 빠른 시일 내에 임명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재판관 2명이 퇴임하는 4월 18일 이전에 한덕수 권한대행에 마은혁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한덕수 권한대행이 앞으로도 9번째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을 것을 '상수(常數)'로 전제하고, 재판관들 의견이 5:3으로 갈려 있다는 추정이 사실이라면, 현재 헌재는 '5:3 데드락(Deadlock)'에 걸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뜻입니다.

왜 5:3은 '데드락'일까요? 앞서 설명했듯이 결정의 실질적 정당성이나 선례, 그리고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임명이 위헌적으로 지연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현재 상황 그대로 5:3 기각 결정을 선고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헌재가 선고를 일정 시점 이후까지 미룰 수도 없습니다. 4월 18일에 재판관 2명(문형배-이미선)이 퇴임해 재판관 정원이 6명으로 줄어들면, 6명 재판관 체제에서도 탄핵심판 종국결정 선고가 가능한지를 놓고 논란이 불거질 뿐만 아니라, 합리적 해결이 어려운 혼란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약 5:3으로 의견이 갈려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헌재는 지금 당장 선고를 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4월 18일 이후까지 평의를 이어나가기도 어려운 '데드락'에 걸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가지 경우의 수와 '치킨 게임'

헌재가 '5:3 데드락'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는 추정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경우의 수는 3가지를 상정할 수 있습니다.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4월 18일 이전에 임명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경우의 수입니다.)

① 헌법재판관들이 4월 18일까지 5:3 대치 상황을 해소하지 못 해서, 실질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4월 18일 이전 또는 당일에 5:3 기각 결정을 선고하는 경우입니다.

② 헌법재판관들이 4월 18일까지 5:3 대치 상황을 해소하지 못 해서, 재판관 2명(문형배-이미선)이 결정 선고를 하지 않고 퇴임해 버리는 경우입니다.

③ 헌법재판관 중 일부가 4월 18일까지는 의견을 바꿔서, 헌재가 6:2 / 7:1 / 8:0 파면 결정을 선고하거나, 4:4 / 3:5 / 2:6 / 1:7 / 0:8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을 선고하는 경우입니다.

①의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에 대해서는 앞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헌재 결정의 실질적 정당성에 문제가 제기될 것입니다. 특히 헌재가 마은혁 후보자 미임명 상황에 대해서 2차례나 결정 선고를 통해 공식적으로 지적한 상황이기 때문에 5:3 결정의 정당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의 반발도 거셀 것입니다.

②의 경우 예상되는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재판관 총원이 6명이 되면서 선고 가능 여부 자체가 논란이 될 것입니다. 이른바 '식물 헌재'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후임 재판관 2명과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임명 여부를 두고 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후임 재판관 2명과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가 한꺼번에 임명된다고 해도, 한덕수 권한대행이 (이른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 2명이 퇴임한 이후에야 임명권을 행사한 점에 대해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경우 한덕수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으로 지명한 재판관 2명이 선고에 관여하는 것에 야권이 반발하고, 반대로 여권은 해당 재판관들의 선고 관여가 문제 없다고 맞서면서 내전에 준하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③ 4월 18일 이전에 재판관 중 1명 이상이 마음을 바꿔서 파면이든 기각(각하)이든 결정이 선고되는 것이 논란과 혼란이 가장 작은 시나리오입니다. 만약 헌재가 5:3 데드락 상황에 걸려있다는 추정이 사실이라면, 헌법재판관들이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는 결국 ③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인용파 재판관들과 기각/각하파 재판관들이 4월 18일까지는 양보하라고 서로에게 요구하는 '치킨 게임(Chicken game)'을 벌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기각/각하파 재판관 중 1명만 마음을 바꿔 6(인용):2(기각 또는 각하)가 되거나, 인용파 재판관 중 1명만 의견을 변경해 4(인용):4(기각 또는 각하)가 된다면 실질적 정당성 문제 없이 선고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헌재 내부에서 이 같은 '치킨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재판관 2명이 퇴임하는 4월 18일 직전에서야 종국결정 선고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 역시 완전히 근거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치킨 게임은 보통 기차가 도착하기 직전에야 결판이 나기 마련입니다.

혼란 피할 길은 4월 18일까지 '안정적 결정' 선고하는 것뿐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

여러 차례 밝혔듯이 헌법재판관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헌재가 선고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 근거한 '5:3 데드락' 추정이 사실이라면,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이들이 바랄 수 있는 상황은 딱 하나입니다. 재판관 중 누군가가 생각을 바꿔서, 파면이든 기각(각하)이든 실질적 정당성에 문제가 없는 결정을 헌재가 2025년 4월 18일까지 선고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2가지 시나리오는 모두 내전에 가까운 극심한 혼란과 분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재판관들이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추정이 사실이라면, 4월 18일 이전까지는 누군가 한 발짝 물러서기를 바랄 뿐입니다.

※ [2025년 3월 29일 수정 사항]

애초 본문에는 '헌법재판관 총원이 6명이 되면 탄핵심판 심리정족수 7명보다 적어지기 때문에 심리가 중단된다'는 취지의 문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의 심리정족수(7명) 규정을 효력정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통해 6명 재판관 체제에서도 탄핵심판 심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6명 재판관 체제에서 종국결정 선고까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초기에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6명 재판관 체제에서는 심리가 정지된다'는 내용이 포함된 문장 2개를 '6명 재판관 체제에서는 선고 가능 여부를 놓고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는 취지로 수정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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