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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도 없이 '알라딘'을 매일 공연한다고?…우리가 몰랐던 뮤지컬 이야기 [스프]

[커튼콜+] 뮤지컬 '커버'의 세계를 알아보자

커튼콜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커버(Cover)'라는 말, 참 많이 쓰이는 영어 단어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영단어 '커버'는 덮다, 덮개, 숨기다, 엄호, 감싸다, 충당하다, 다루다, 취재하다, 포괄하다, 대신하다 등등 많은 뜻을 갖고 있죠. '커버하다'라는 말은 거의 우리말처럼 자주 쓰입니다. 음악에서 '커버'는 '리메이크'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뮤지컬에도 '커버'가 있죠. 특정 캐릭터를 맡은 배우가 사정이 생겨 공연을 못하게 될 때 이를 대신하는 배우를 뜻합니다.
백두산, 오석원 더골룸1 사진 제공 : 에스앤코

지금 공연 중인 뮤지컬 '알라딘'의 앙상블 배우 백두산, 오석원 씨가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출연했을 때, 뮤지컬 앙상블뿐 아니라 커버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어 이 글을 쓰려 합니다.

아, '앙상블'에 대해서도 설명해야겠네요. 앙상블은 뮤지컬에서 주연과 조연 배우들 외에, 극적이고 생동감 있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합창이나 군무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발레 '백조의 호수'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오데트 공주와 지크프리트 왕자만 있고 백조들의 군무가 없는 '백조의 호수'는 상상할 수 없죠. 뮤지컬도 마찬가지입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민중의 노래'는 정말 유명한데, 이 장면에서 수많은 이름 없는 '민중'을 연기하는 앙상블 배우들이 없다면 어떨까요? 앙상블 배우들은 뮤지컬 공연을 떠받치는 '기둥' 같은 존재입니다.
백두산, 오석원 더골룸2

백두산 씨와 오석원 씨는 오랜 앙상블 경력을 갖고 있는데요, 백두산 씨는 앙상블과 함께 조연인 경비대장 라줄 역을 맡고 있고, 오석원 씨는 앙상블이면서 조역 커버를 세 개나 하고 있습니다. 알라딘 친구 카심 역의 퍼스트 커버, 술탄과 자파 역의 세컨드 커버입니다. 오석원 씨에게 '커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어봤습니다.

"커버에도 세 가지 종류가 있어요. 얼터네이트(Alternate), 언더스터디(Understudy), 스윙(Swing)이죠. 스윙은 보통 앙상블 배우한테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신해 주는 배우들을 뜻해요. 언더스터디는 현장에서는 그냥 '커버'라고 많이 부르는데, 주조연 배우들한테 상황이 생겼을 때 대신해 주는 배우이고요. 얼터네이트는 한국에는 잘 없는데,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처럼 '원 캐스트'가 주류인 시스템에서 볼 수 있죠."

얼터네이트는 한국의 더블 캐스트(한 캐릭터를 두 명의 주연배우가 나눠 맡는 것)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보통 브로드웨이에서는 '원 캐스트'로 한 캐릭터를 한 명의 주연배우가 맡지만, 낮 공연 등 일부 회차만 얼터네이트가 소화합니다. 이를테면 100회 공연 중 90회는 '원 캐스트' 주연 배우가 맡고, 나머지 10회를 얼터네이트가 맡는 식입니다.

"저는 카심의 퍼스트 커버이니까, 만약 원래 카심 역을 맡은 배우한테 사정이 생기면 제가 바로 카심 역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스윙 배우가 제가 원래 맡았던 앙상블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

오석원 씨는 그래서 자신이 맡은 앙상블 외에도 카심과 술탄, 자파의 대사와 노래, 연기, 동선을 모두 숙지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상황이 생기면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말이죠. 연습 기간에 여러 역할을 모두 익혔을 뿐 아니라, 공연 개막 전 일반적인 드레스 리허설 외에, 언더스터디와 스윙 배우들이 출연하는 드레스 리허설도 따로 했습니다.

"워낙 기술적인 것들이 많아서, 단순히 내가 그 역할의 동선과 대사, 가사를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스펙터클한 무대 장치라든지 조명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연결돼 있는 게 많아서, 실제 공연처럼 한 번 돌려보는 거죠."

그는 (커튼콜 출연 당시) 아직까지는 '알라딘'에서 자신이 커버(언더스터디)로 투입된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예전 다른 공연들 할 때 몇 번 있었는데, 썩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죠.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거니까. 평소에 철저하게 준비는 하고 있지만, 마음은 그런 일이 안 생기기를 바라게 되죠. 출근 시간 전인데 이른 아침에 무대 감독님한테 전화가 오면 심장이 떨려요. 무슨 상황이 발생했나 하고요.(웃음)"
백두산, 오석원 더골룸3

'알라딘' 개막 후로 몇 달이 지났고, 그가 앞으로 카심이나 자파, 술탄 커버로 출연할 일이 생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요즘도 날마다 혼자서 여러 역할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불안감을 덜기 위해서라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낙천적으로 생각을 하면 꼭 그 원하지 않았던 일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있어야 별일이 없어요. 항상 '이게 언제 나한테 들이닥칠지 모른다' 이런 생각으로 연습하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브로드웨이에서 봤던 뮤지컬 한 편이 생각났습니다. 화제작이라고 해서 예매했는데, 그날 따라 남자 주연배우한테 사정이 생겨 커버가 나왔습니다. 그 배우의 첫 출연이라 했는데, 초반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첫 넘버에서 고음 올라갈 때 목소리가 갈라지더라고요.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좋아져서 연기와 노래 몰입도가 높아졌고, 막판에는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냈습니다. 커버 배우가 얼마나 부담감을 느꼈을지, 무대는 얼마나 무섭고도 정직한 곳인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백두산 씨는 샤롯데 시어터에서 날마다 '알라딘'이 공연되는 시각, 극장 연습실에서는 또 다른 '알라딘'이 동시에 공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저희 스윙들 진짜 대단해요. 한 사람이 세 명 네 명 역할을 소화해야 해요. 소품을 어디서 들고 어디서 등장하고 어떤 춤을 추고 이런 것들이 다 다른데, 스윙 배우들은 이걸 다 준비하거든요. 항상 꾸준히 연습하고 공연 시작되면 극장 5층 연습실에서 똑같이 공연해요. 사실 이 공연에는 없는 사람들이 많죠. 스윙 배우들끼리 '나 오늘은 오석원 역할 할 거야', '백두산 역할 할 거야', 이런 식으로 매일 정해서 공연하고 있어요. 감각을 놓지 않고 있어야 하니까. 그게 더 어렵죠."

'알라딘'의 스윙은 모두 5명입니다. 이들이 매일 그들만의 '알라딘'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관객도 없고 객석도 무대 세트도 없고 텅 빈 연습실에서, 배역들이 듬성듬성 빠져 있어도 있는 것처럼 상상하면서 스윙 5명이 매일 하고 있다는 '알라딘' 공연을 상상해 보다가, 어쩐지 마음이 찡해졌습니다.

"공연 초반에 1막에서 갑자기 근육을 다친 배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 스윙이 들어가서 대체했죠. 그 정도로 준비가 다 되어 있어요. 정말 대단해요"

무대를 더 풍성하게 연출하기 위해 스윙들을 특정 장면에 출연시키는 공연들도 있지만, '알라딘'의 스윙은 항상 대기하고 있다가 돌발상황이 생길 때에만 무대에 오릅니다. 그러니까 스윙은 공연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무대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대에 오를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스윙을 아무나 할 수는 없습니다.

"스윙 배우들도 모두 오디션을 해서 뽑아요. 배우 개개인의 역량을 간단하게 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스윙 배우들은 두 개 이상의 역할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사실 가장 능력이 우수한 자원을 캐스팅하는 게 맞죠. 정신적으로도 단단해야 해요. 그 긴장감을 이겨내야 하니까."

'알라딘'은 디즈니 라이선스 뮤지컬로 브로드웨이 현지의 제작 시스템과 똑같이 커버 선발과 리허설 운용을 철저하게 하고 있습니다. 스윙 배우들 중에는 베테랑이 많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뮤지컬 초창기 '원 캐스트에 커버도 없어서 부상을 입고도 끝까지 공연했다'는 배우들의 무용담이 낯설지 않았지만,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이 속속 들어오면서 이런 시스템도 함께 도입된 것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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