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극사실주의(하이퍼 리얼리즘)는 하나의 미술 사조를 넘어, 이제는 콘텐츠 업계가 사랑하는 연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패러디 혹은 페이크 다큐로 대표되는 극사실주의 콘텐츠는 특히 개그 소재 유튜브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랄랄의 이명화 캐릭터, 피식대학, 한사랑 산악회 등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현실보다 더 현실감 있는 묘사로 사람들에게 공감과 웃음을 선사하는데, 그 이면에는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풍자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최근 이 극사실주의 캐릭터로 대중문화계를 휩쓴 개그우먼이 있으니 바로 이수지다. 그동안 자신의 유튜브 <핫이슈지> 채널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완벽 묘사하며 극사실주의 캐릭터의 대가로 칭송받았는데, 최근 '대치맘' 캐릭터가 제대로 터지면서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치맘'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대한민국 전체를 들썩이게 하였으니, 극사실주의의 끝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페이크다큐 자식은 좋다> 속 '대치맘' 제이미맘은 고급 외제차·패딩·액세서리를 하고 제이미의 학원 라이딩에 나선다. 차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아직 배변 훈련도 끝나지 않은 제이미에게 제기차기 과외를 시키기 위해 선생님을 찾는다. 평소에도 자식의 '영재적 모먼트' 찾기에 바쁘다. 느릿느릿 영어를 섞어 말하고, 자식에게 존댓말로 훈육하지만 참을 수 없을 땐 참지 않는다.
사실 '대치맘'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강남 대치동 학부모를 상징하는 하나의 사회적 캐릭터를 개그 소재로 '연기'한 것이다. 현실을 직접 경험하는 이들이 공감하기도 하지만,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의 교육열을 인식하는 대중들은 대치맘 캐릭터에 공감한다. 이러한 공감의 근본에는 실재하는 사회적 문제, 이를테면 입시 경쟁과 (영유아) 사교육 광풍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집단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모두가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공론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개그라는 형식을 통해, 누구나 느끼고 있지만 쉽게 말할 수 없었던 현실을 통렬하게 풍자한 것이다. 이러한 역설적 지점이 대중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원인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대중의 반향이 이 '문제'에 대한 각성이나 개선의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치맘을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이 패러디가 주목받은 이유는 입시 경쟁과 사교육 광풍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정작 논의의 초점은 특정 계층을 희화화하는 데 집중된 것이다. 언론들은 더욱 신이 났다. "몽* 패딩 실제 매물 쏟아졌나?","이제 못 입겠어요, 대치맘 발칵" 등 본질에서 벗어난 자극적인 기사들만 연일 쏟아졌다. 문제의 본질은 흐려지고, 특정 집단을 비웃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정작 논의되어야 할 교육 불평등이나 사교육 문제는 뒷전이다. 대신, '그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조롱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대중의 심리만 자극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