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기자 : 만약에 (연극)하다가 '뭔가 안 맞는다, 나는 이렇게 해석했는데 연출은 저렇게 얘기한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푸세요?
지현준 배우 : 어렸을 때는 그게 가장 억울했던 것 같아요. 저는 후배로서 연극을 대하고 나면 어쨌든 이 장면에 대해서 선배님들하고 붙은 거 아니에요. 나보다 위에 계신 분들하고 붙으면 저는 되게 슬픈 장면인데 그분들은 웃긴 장면이라고 얘기하시고 '왜 그럴까'라고 들어보면 그분들 인생에서는 이게 웃긴 거예요. 제 인생에서는 이게 슬픈 거고. 그러니까 누가 옳고 그름이 없는 거잖아요. 근데 자기 말을 하려면 자기의 경험을 갖고 오는 게 확률이 좋죠.
연극이라는 게 좋고 저한테 가치 있는 이유는 이 사람에 대한 인생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서. 인생을 이해해서 그때는 못할 수도 있고, 어떨 때는 타협을 할 때가 있고, 어떨 때는 내가 맞다고 우겨야 될 때도 있고. 이런 것처럼 그때그때에 따라서 좀 다르긴 한 것 같거든요.
그거를 어떻게 어느 길로 가느냐는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의 인생에서 왜 그런지 듣는 것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다. 내 시선과 내 경험에서는 이게 그냥 무조건 슬픈 일이었는데, 다음 작품 할 때는 가치가 하나 더 생겨 있는 거겠죠. 그게 연극을 하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제가 계속 넓어지고. 그리고 제가 항상 얘기하지만 연극에서는 사이가 안 좋거나 하면 티가 나거든요. 저는 이 바닥에 오래 있어서 공연을 보러가면 '둘이 사이가 안 좋네'.
이병희 아나운서 : (웃음) 보시면 알아요?
지현준 배우 : '이렇게 디렉팅해서 저 배우 저렇게 연기하는구나'가 다 맞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보이거든요. 제가 관객이라면, 제 기준으로 보자면 배우가 잘하고 못하고에는 그게 있는 거예요. 이 사람하고의 관계. 그걸 어떻게든 풀고 들어가는 게 숙제죠. 사회에서야 불편하면 안 봐도 장땡이고 피하면 되는 일인데 연극이라는 게 뭐라고, 그걸 잘하고 싶고 이왕이면 좋은 걸 드리고 싶으니까 이 사람하고의 관계가 너무 중요한 거예요. 어떻게든 이해해야 돼요. 쇼부를 쳐야 돼요. 그게 가장 큰 숙제이고 가장 큰 기쁨이기도 하고 가장 큰 고통이기도 하죠. 정말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은 반드시 어느 무리에나 하나씩 있으니까요.
김수현 기자 : 근데 지금 말씀하시는 거 듣다가 그러면 연극 말고 다른 거는 그게 덜한지.
지현준 배우 : 좀 넘어갈 수 있어요. 커버될 수 있고요. (그러나) 연극은 약간 벌거벗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다 보여요. 그게 너무 신기해요. 제가 연기 처음 배울 때도 (선배님들이) 제가 어떤 인간인지 다 맞힌 게 너무 자존심 상하고. '네가 이래서 이렇게 분석한 거고, 네가 이래서 이런 톤으로 대사 친 거고' 다 맞아요. 저희 직업 안에서는 이렇거든요. 그래서 지금 제가 후배들을 보면 '아 쟤는 이래서 이렇구나'가 보이는 것처럼
이병희 아나운서 : 그 마음이 다 들여다보이는 거예요?
지현준 배우 : 그렇죠. 어쩔 수 없어 제 경험 안에서 캐릭터를 해석하는 거니까
김수현 기자 : 쟤는 저런 사람이니까 이렇게 하는 거구나.

지현준 배우 : I냐 E냐도 보면 보이잖아요. 똑같아요. 얘가 어렸을 때 무슨 일이 있었고 이렇게 얘기하다 보면 거의 맞죠. 약간 반무당이 된다고. 그러면 왜 예전에 선생님들이나 선배님들이 날 보고 무슨 말을 했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은. 그러니까 반대로 보면 관객분들도 이거를 '연기를 잘하냐 못하냐'로 평가할 뿐이지. (그런데) 우리 연기에는 그게 포함되는 거고. 너무 무섭죠. 홀딱 벗겨졌으니 그래서 그게 다 티가 나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숨길 수가 없는.
김수현 기자 : TV나 영화 연기는 그냥 한 번 연기하고 끝나는 거잖아요. 찍고 나면 끝나는 건데 이거는 날마다 몇 번을 계속해야 되는 거잖아요.
지현준 배우 : NG가 없죠.
김수현 기자 : 그렇죠. NG가 나도 할 수 없죠. 그냥 해야죠.
이병희 아나운서 : 오랜 기간 동안 계속해야 되는 거고. 그러면 어떻게 풀어요? 안 맞는 사람, 힘든 사람이 있을 때?
지현준 배우 : 어쨌든 피할 수 없다라는 건 서로한테 공통된 지점이잖아요. 이 극을 올려야 되니까. 그러니까 서로한테 안 가본 지점까지 가보는 거죠. '왜 그랬니? 왜 그런 거야?' 지겹고 피하면 되는 걸 서로 파헤쳤죠. 어떻게 푸냐는 서로의 그런 역량을 만든 거긴 한데 파봐야지. 그래서 이해하면 '아 그렇구나' 해서 어떨 때는 이 사람이 아픈 사람일 수도 있고, 저보다 굉장히 품어주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픈 사람일 때는 내가 맞다 하더라도 이 사람 걸 같이 하는 게 훨씬 좋은 것 같았어요. 저는. 내 걸 만져서 이걸 하는 것보다 공연이라는 게 좋은 걸 줘야 되지만 어차피 사람 사는 이야기라서 그런 게 묻어나거든요. 그런 쪽을 선택하고 어떨 땐 또 반대로 해보기도 하고 그때그때 그런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그렇게 생각하면 연극에서 내가 만든 캐릭터가 사실 극중에서의 캐릭터지만 자꾸 연기를 하다 보면 그 캐릭터가 나한테도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지현준 배우 : 그럼요. 삶에 영향을 미치죠.
김수현 기자 : 근데 또 그 역이 계속 바뀐단 말이에요. 얼마 전까지는 <붉은 낙엽>에 출연하셨잖아요. 거기서 굉장히 고민이 많은 아버지 역할을 했는데 어떠셨어요? 그리고 아버지 역할을 많이 해보셨나요? 생각해 보니까.
지현준 배우 : 아뇨. 좀 저한텐 새로운 지점이었죠. 그리고 배우로서 다른 역할을 한다라기보다는 누구의 아버지 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딱 중간에 걸쳐 있는 나이니까 고민이 상당히 많이 되긴 해요. 연기도 좀 바꿔야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나도 이제 물러서야 되는. (나이가) 비슷한 아버지라는 역할이 물론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메인에 있는 젊은 역할을 하기에는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는 지점이라서요. 그런데 아버지 역할을 처음 해봤는데 아버지라는 것을 배경으로 한 그 사람의 심리에 더 포커스 된 얘기라. 그래도 잘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실제로 남편이랑 같이 봤는데 남편이 '아들이 저렇게 답답하게 구는데'.
지현준 배우 :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그렇게 드라마 보듯이 하셨으면, 다행이네요.
김수현 기자 : 그러면서 '아들이 저러면 얼마나 답답하겠냐'고 그러는 거야. 보면서 몰입한 거죠. <붉은 낙엽>은 개운하게 해결되는 느낌은 아니라서. 그래서 그만큼 생각을 좀 많이 하게 되고.
지현준 배우 : 맞아요. 어떤 사건이 일어나서 제가 의심을 하게 돼서 그걸로 인해 점점 파국이 되는 내용이거든요. 근데 그것도 저 나름의 최선을 다한 일이에요.
김수현 기자 : 그렇죠.
지현준 배우 : 그러니까 사람이 어떤 일에 있어서 해결하고자 하는 게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그냥 인간 사이에 어떤 슬픈 얘기일 뿐인 약간 그런 작품이어서.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