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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폭싹 속았수다, '매우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다. 지난 7일부터 매주 금요일 4편씩, 4주에 걸쳐 총 16부가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극본 임상춘, 연출 김원석)는 제주 방언을 이용한 제목으로 인해 이 작품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직관적으로 의미가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단 한 편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누구를 향해 '수고 많았다'고 말하는지, 그 인사에 내포된 메시지가 얼마나 따뜻한지.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에서 태어난 '요망진 반항아' 애순이와 '팔불출 무쇠' 관식이의 일생을 사계절에 빗대어 풀어낸 작품이다. 제주에서 함께 나고 자란 요망진('똑똑하고 야무지다'는 뜻의 제주 방언) 애순과 무쇠처럼 한결같은 관식, 그들의 순수했던 10대 시절과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던 청년 시절, 인생이 던진 숙제와 맞부딪히며 세월을 겪어 낸 중장년 시절까지, 1960년 제주부터 2025년 서울까지 파란만장했던 그들의 70년 일생을 담는다. 애순과 관식의 10대부터 30대까지는 아이유와 박보검이, 40대 이후는 문소리와 박해준이 각각 연기한다.
'폭싹 속았수다'는 공개 이후 단숨에 국내 넷플릭스 순위 1위를 차지하며, 전 세대의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작품이 전하는 공감 가는 인생 이야기와 따뜻한 시선에 감동했다며 '인생 드라마'라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시청자가 많다.
글로벌 순위 또한 상위권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작품이라 세계에서 통할지 의문이 들었지만, 공개 2주 차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2위에 등극했다.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 그 보편적 감성은 국경과 상관없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폭싹 속았수다'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동백꽃 필 무렵' 작가X '나의 아저씨' 감독이 그리는, 우리네 인생
'폭싹 속았수다'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쌈, 마이웨이'의 임상춘 작가가 집필하고,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를 만든 김원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작가와 감독의 전작들이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은 웰메이드 작품들이라 '폭싹 속았수다'에 대한 기대 또한 컸는데, 베일을 벗은 작품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폭싹 속았수다'는 애순과 관식의 부모 세대부터 시작해, 그들이 성장해 스스로 부모가 되고, 다시 그 자식이 커가는 오랜 세월의 흐름을 보여준다.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겪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부모, 가족이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고마움과 후회, 그들의 희로애락을 촘촘하고 섬세하게 엮어내 누구나 '내 이야기', '우리 가족의 이야기'라며 공감할 수 있다.
임상춘 작가는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우리 주변에 실존할 것처럼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저마다 사연을 부여해 풍성하게 이야기를 완성하는 힘이 있는 작가다. 그런 작가 특유의 개성과 매력이 '폭싹 속았수다'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사람 사는 이야기로 따스한 감동을 전하는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있으면 매회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의 끝에 느끼는 위로는 긴 여운으로 남는다.
꿈과 사랑이 시작하는 봄, 뜨거운 성장과 시련의 여름, 수확과 헌신의 계절 가을을 지나 돌아보고 정리하는 겨울까지, 인생의 사계절을 녹여낸 '폭싹 속았수다'의 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엄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 속, 방점을 찍는 부분은 '엄마'로 통하는 여성의 서사다.
광례(염혜란 분)의 딸 애순(아이유, 문소리), 다시 애순의 딸 금명(아이유)으로 이어지는 3대의 인생기가 눈물샘을 자극한다. 잠녀(해녀) 광례는 꿈 많은 딸 애순을 위해 억척같이 일하지만 일찍 세상을 떠나고, 시인을 꿈꾸던 문학소녀 애순은 지독한 가난과 시대 환경에 부딪혀 꿈을 접는다. 양배추 장사를 하며 부끄러워 "양배추 달아요" 한마디를 못하던 애순은 어느덧 좌판에서 생선을 파는 괄괄한 중년의 아줌마가 된다. 그리고 엄마 광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 또한 딸 금명이 세상에 나아갈 수 있게 뭐든 한다. 엄마의 꿈을 먹고 날아오르는 딸의 이야기. 이 작품을 보며 "우리 엄마 생각나 눈물 난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아이유X박보검의 변신…누구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배우들
'폭싹 속았수다'는 아이유와 박보검이라는 두 청춘 톱스타의 만남만으로 캐스팅 단계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두 사람은 이 작품에서 순수한데 어설픈 10대부터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20대, 자식을 키워내기 위해 헌신하는 30대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를 선보인다.
아이유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기죽지 않는 '요망진 반항아' 애순 역으로 지금껏 보지 못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억척스럽고 괄괄한 모습부터 자식을 잃고 무너지는 절절한 모성애까지, '엄마'가 된 아이유의 연기 변신이 새롭다.
박보검은 오로지 애순만을 바라보며 어떤 힘든 것도 군소리 없이 해내는 '팔불출 무쇠' 관식 역을 소화한다. 다정다감한 매력의 박보검이 연기하는 투박하고 우직한 관식 또한, 지금껏 보지 못한 박보검의 새로운 모습이라 시선이 간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애순과 관식은 각각 문소리와 박해준이 연기하는데, 관록의 베테랑 배우들답게 아이유와 박보검이 연기한 두 캐릭터의 결을 유지하며 이질감 없게 호흡을 이어간다.
애순과 관식의 일생을 다채롭게 채워주는 인물들을 연기한 김용림, 나문희, 염혜란, 오민애, 최대훈, 장혜진, 차미경, 이수미, 백지원, 정해균, 오정세, 엄지원 등 연기파 배우들이 선사하는 앙상블도 주목할 포인트다. 이들은 개성, 사연, 매력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를 완성하며 그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모두의 연기가 훌륭하지만, 특히 손꼽을 배우는 염혜란이다. 염혜란은 애순의 엄마 광례 역을 맡아 '폭싹 속았수다' 초반의 전개를 책임진다. 광례의 유난히 억척스러운 행동이 홀로 남을 애달픈 딸 애순을 위한 독기 어린 강인함이란 걸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또 그런 딸을 두고 먼저 눈을 감아야 하는 광례의 한과 설움까지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펼쳐낸다. 시청자가 애순이를 애정하며 그의 인생을 응원하게 만드는 힘, '폭싹 속았수다'에 빠져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시작은 초반 염혜란의 연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염혜란은 TV 밖 세상 모든 애순이를 울린다.
제주라는 장소가 주는 힐링…미술X음악의 조화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이 섬의 매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부분의 마을 장면들은 경북 안동에 지은 세트에서 촬영됐지만 파도치는 푸른 바다, 넓게 깔린 현무 바위만 봐도 제주의 아름다움이 충분히 느껴진다. 애순과 관식의 첫 키스신 배경이 된 노란 유채꽃밭을 비롯해 김녕 해변, 제주목관아, 오라동 메밀꽃밭, 성산일출봉 등이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데, 확실히 제주라는 장소가 주는 위안과 감성이 있다.
또 '폭싹 속았수다'는 1960년대부터 2025년까지 다루는 만큼 시간의 흐름을 잘 녹여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제작진은 의상, 미술, 소품 등에 심혈을 기울였고, 그 결과 시대적 배경을 반영해 현실감 넘치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마치 그 시대에 들어간 듯 생생하게 구현된 배경에서 인물들의 살아 숨 쉬는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