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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은 통합의 적"…'콘클라베'가 보여준 선거의 역설 [스프]

[주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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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교황이 선종한다. 전 세계 추기경들이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든다. 콘클라베(Conclave)에 돌입한다.

콘클라베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제도로, 교황 선종 시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이 소집되어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 회의다.

공정한 선거를 위해 추기경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투표에 임한다. 선거인단 2/3의 표를 얻는 추기경이 나올 때까지 매일 투표를 진행하게 된다.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추기경들의 비밀이 드러나며 선거는 장기전이 된다. 선거를 총괄하는 동시에 또 한 명의 교황 후보이기도 한 로렌스(랄프 파인즈)는 리더의 자격을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딜레마에 빠진다.

김지혜 주즐레
영화 '콘클라베'는 정직한 제목을 보고 지루하고 딱딱한 종교 영화를 상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종교 영화의 외피를 쓴 정치 스릴러에 가깝다. 선거판이 휘청이는 몇 차례의 전복은 예측 불가의 긴장감을 선사하고, 마지막 반전은 충격과 탄식을 선사한다.

'누가 교황이 될 것인가'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영화는 '리더의 자격'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고 종교의 변화와 포용에 관한 넓고 깊은 질문까지 던진다. 선거 과정을 영화의 플롯에 녹였음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콘클라베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를 뽑는 선거다. 권력을 향한 경쟁에는 어김없이 정치가 작동한다. 종교의 영역에도 예외는 없다. 이는 현대 사회의 선거에 대입할 수 있으며, 영화는 세속 정치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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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을 대표하는 100여 명의 추기경들은 교황 후보인 동시에 유권자다. 출신 국가와 이념, 성향에 따라 보이지 않는 파벌이 형성되고, 선거의 흐름에 따라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투표가 거듭될 때마다 시소의 무게 균형이 왔다 갔다 한다.

"선거란 누굴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프랭클린 P. 애덤스의 말처럼 선거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차선, 최악을 피하고자 차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신성해야 할 종교의 세계, 청렴이 몸에 밴 인물이라 여겼던 추기경들이 권력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고, 쟁투를 벌인다. 편향된 성향과 그릇된 인식을 가진 추기경이 있는가 하면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추기경도 있다.

그러나 다수의 선택이 선도, 진리도 아니라는 건 숱한 역사의 기록을 통해 학습해 오지 않았던가. 영화는 관객의 멱살을 잡고 그 아슬아슬하고 위태한 과정을 함께 참관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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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파인즈를 필두로 스탠리 투치, 존 리스고, 이사벨라 로셀리니 등 관록의 배우들이 연기 배틀 같은 호연을 펼친다. 특히 로렌스를 연기한 랄프 파인즈는 클로즈업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는 이 바티칸 정치 스릴러에서 선거의 총책임자이자, 후보의 비리를 캐는 탐정이자, 교황이 되기를 잠시나마 꿈꾼 세속적이고 연약한 인간으로서 침묵 속 고뇌를 심연의 연기로 표현해냈다.

또한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연극적 구성임에도 영화가 지루하지 않은 것은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밀도 높은 정치 암투극으로 바꾼 각색과 연출의 힘이 세다. 교차 편집과 컷 분할, 다양한 앵글과 쇼트를 활용하는 등 리듬감이 돋보이는 편집(닉 에머슨)의 공도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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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음악(볼커 베텔만)은 정적인 신에도 놀라운 마법을 부여한다. 영화를 연출한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서부전선 이상 없다'(2022)에서부터 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긴장의 밀도를 높이고 극의 분위기를 이끄는 전략을 펼쳐왔다. 이는 '콘클라베'에서도 또 한 번 놀라운 효과를 낸다.

"확신은 통합과 포용의 적"이라는 메시지는 설교조로 들릴 수도 있지만 '리더의 자격'을 끊임없이 묻고 검증하는 이 영화는 잘못된 선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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