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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짠내나는' SF와 우리 사회의 '미키17'들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132

  우리는 자주 통계를 인용한다. 정부와 언론은 물론이고 일상 대화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통계(숫자)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자주 의구심이 든다. 통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숫자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같은 책은 그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숫자(통계)를 너무 모른다고 질타하는 책도 있다.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와 『팩트풀니스』같은 책들이다. (흥미롭게도 두 책 모두 빌 게이츠의 추천사가 있다)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에서는 미국에서 닭 한 마리를 생산하는 데 3kg의 옥수수 낟알이 필요하고 1kg의 낟알당 약 50ml의 디젤유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든다고 말한다. 이 숫자대로라면 우리는 닭고기를 생산하는 데는 닭고기의 에너지 함량보다 몇 배나 많은 에너지가 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은 우리의 머릿속에 뭔가를 툭 하고 던져 놓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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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 영화 《미키17》은 SF 영화다. 때는 2054년, 동영상을 32K로 찍는다. 인류는 우주로 진출했다. 니플하임이라는 얼음 행성이 배경이다. 인류가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대기 중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없는지, 생명체는 살고 있는지 등 모든 생존 환경을 탐사해야 한다.

봉 감독은 이 영화의 원작인 『미키7』이 출간되기도 전에 이 이야기를 접했다. 할리우드 제작사에서 영화로 만들어볼 생각이 있냐며 십여 장에 이르는 요약본을 보내줬기 때문이다. 봉 감독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 건 미키가 인간다운 대우를 못 받는 불쌍한 청년이라는 설정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미키17》은 그가 좋아하는 SF 장르이면서도 뭔가 새로운 SF였다.

그 새로운 SF에 봉 감독은 자신만의 ‘짠내’를 더해 《미키17》을 탄생시켰다. 봉 감독은 “‘인간냄새’ 나는 SF”라고 말했다. 이 SF 영화는, 봉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1700억 원을 쓰면서도(봉 감독 얘기로는 할리우드 중형 영화와 블록버스터 사이쯤 된다고) 여전히 영화에 자신의 인장을 남길 수 있는 감독임을 증명함과 동시에 할리우드 영화가 봉 감독에 딱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 또한 남겨놓긴 했다. 

《미키17》 캐릭터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아파도 일해야지, 숨막혀도 일해야지, 유해하지만 일해야지, 독해도 일해야지, 외로워도 일해야지, 추워도 일해야지, 고통스러워도 일해야지, 더러워도 일해야지, X같아도 일해야지… 

《미키17》 캐릭터 포스터 속의 카피처럼 니플하임 우주 개척단의 온갖 위험하고 험한 일은 미키가 도맡아 한다. 치명적 바이러스가 섞여있는 니플하임의 대기를 들이마시고, 정체불명의 괴생명체에 맞서는 것 모두 미키가 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미키는 몇 번이고 죽어도 휴먼 프린터로 다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직책은 ‘익스펜더블’. 즉 ‘소모품’이다. 

  봉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미키가 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서 목숨을 잃은 청년이나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고를 당한 청년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행한 산재 사고가 나도 현실에서 같은 일은 유지되고 사람만 계속 교체될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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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 국내에서 사망하는 이주노동자의 규모를 추정한 최초의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 2017년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으로 이름을 알렸던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썼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 용역 결과물이다.

나는 이 보고서를 인용해 무엇을 강력하게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봉 감독이 “미키가 극한 직업의 처지에 있는 노동자 계층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계급 문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고 보지만 영화가 거창하게 계급 간의 투쟁을 다룬다는 식의 정치적인 깃발을 들고 있지 않다”고 했듯이. 

그저 이 글로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감(感)을 잡아보려고 한다. 때로 어떤 숫자들은 우리의 머릿속에 뭔가를 툭하고 던져놓고 간다. 

  2023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숫자는 144만여 명에 이른다. 이 중 미등록 노동자는 42만여 명이다. 

그런데, 김 교수팀의 보고서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공표된’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익스펜더블’인 미키는 16,17,18… 이런 식으로 번호라도 매겨 죽음을 관리하는데, 이주노동자는 그조차도 제대로 없다는 뜻이다.

한 해 숨지는 이주노동자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김 교수와 인터뷰했던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가들은(그러니까 현장을 아는 전문가들도) 200~300명 정도라고 답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그 숫자가 2022년 기준 3340명이라고 말한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외국인 사망자료' 기반 추정)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간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이주노동자 사망자는 729명이다. 그중 62%가 49세 이하다. 87%가 사고사다. 사망 원인은 ‘두부(頭部) 외상 골절 및 출혈’이 30.9%로 가장 많다. 다음으로 ‘흉복부 손상 및 출혈’이 13%, ‘기타 손상 및 쇼크’가 11.5%, ‘익사’ 8.5%, ‘화상 및 감전’이 4.3%, ‘질식’ 3.3% 순이다.

사망 원인이 ‘미키17급'이다. 영화에서 '미키들'은 팔이 잘려 죽고, 피를 토하고 죽고, 기타 손상으로 죽는다.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위험의 외주화’ 죽음이 대부분 그렇다)

  이주노동자를 병들고 다치게 하는 사회적 원인은 ‘위험한 근무 환경’(고통스러워도 일해야지, 숨 막혀도 일해야지, 유해하지만 일해야지, 독해도 일해야지), ‘사업주의 폭력과 위력으로 인한 폭력적인 근무 환경’(외로워도 일해야지, X같아도 일해야지), ‘열악한 거주 환경’(추워도 일해야지), ‘제한된 의료 접근성’(아파도 일해야지) 등으로 분석됐다.

이 회사가 대형 화학물을 보관하는 탱크를 가지고 있고 정기적으로 그걸 청소를 해줘야 되나 봐요. 그 비슷한 사망 사례가 몇 년 전에 있었어요. (중략) (그 이후로) 거기에 한국인 노동자는 절대 안 들어가는 거죠. 한국인 노동자가 안 들어가니까 잘 모르는 베트남 노동자들을 거기에 들어가게 한 거예요.(참여자17) -보고서 37쪽

  《미키17》은 현재진행형 미래 SF 영화다. 비인간적이면서도 인간냄새나는 , ‘짠내나는’ SF다. 김 교수팀의 보고서 서두에는 모두 13개 국어로 된 요약문이 실려있다. 중국어, 베트남어, 영어, 우즈베키스탄어, 네팔어, 캄보디아어, 인도네시아어, 필리핀어, 태국어, 러시아어, 미얀마어, 스리랑카어, 방글라데시어 순이다. 《미키17》은 전세계 66개 지역에서 개봉한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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