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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 지켜라"…밤샘 근무 시달리던 대형 로펌 변호사들의 '각성' [스프]

[뉴스쉽] 로펌 업계 휩쓴 '주 52시간제의 역습'

어쏘변호사
 

파편화된 뉴스는 이제 그만, 이슈의 맥락을 읽는 재미를 담았습니다.
 

'판검변'에서 '빅클검'으로

사법고시 시절에는 성적순으로 판사, 검사, 변호사를 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로스쿨 순위와 성적을 기반으로 선호도가 빅펌(대형 로펌), 로클럭(재판연구원), 검사 순으로 바뀌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로스쿨 졸업생들이 주로 대형 로펌으로 향하고 로클럭이나 검사 지원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판사와 검사의 경우 업무 강도에 비해 월급이 적다는 점이 단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명예보다는 돈이 더 중요시되는 사회를 반영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판검사의 경우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역 검찰청, 법원을 돌아다녀야 하는 점도 선호를 떨어뜨리는 이유 중 하나다. 이에 비해 대형 로펌의 경우 초봉이 1억 6천만 원 전후로 시작해 3~5년 차에는 연봉이 2억에 도달하는 만큼, 즉각적인 보상이 크다.

이처럼 로스쿨생에게 인기가 많은 대형 로펌인데 입사한 지 1~9년 차 정도 되는 어쏘 변호사(로펌에 고용돼 파트너 변호사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변호사)들의 불만이 최근 터져 나오고 있다. 대형 로펌 어쏘 변호사들이 과도한 업무를 처리해야 해 매일 자정을 넘긴 새벽 시간에 퇴근하는 경우가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한 대형 로펌 어쏘 변호사는 "일이 몰릴 때는 새벽 2~3시에 퇴근을 하고, 주말도 이틀 다 출근하는 경우가 있다. 항상 잠이 부족한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어쏘변호사
 

어쏘 변호사의 무기가 된 '주 52시간제'

회사 지분을 소유하는 파트너 변호사와 달리 어쏘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분류된다. 대법원은 지분을 소유하지 않은 이른바 '워킹 파트너' 변호사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바 있다. 근로자인 어쏘 변호사가 몇백 명이 넘는 대형 로펌은 2019년부터 주 52시간제 적용 대상이 됐다. 그런데 왜 어쏘 변호사들은 과도한 근로시간에 노출되게 됐을까.

정부는 로펌들에게 주 52시간을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줬다. 법률 업무를 재량근로제가 가능한 업무 중 하나로 지정했다. 2019년, 광장, 태평양, 세종, 율촌, 화우 등 대형 로펌은 재량근로제를 도입했다. 어쏘 변호사들에게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쳐 주 52시간을 넘게 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5년 전과 달리 대형 로펌의 어쏘 변호사들이 재량근로제 연장에 반대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율촌을 포함한 대형 로펌 2곳은 어쏘 변호사들을 상대로 재량근로제 연장에 관한 투표를 부쳤는데 반대가 더 많아 한 차례 부결되기도 했다. 어쏘 변호사들 사이에서 더 이상 대형 로펌 측이 시키는 대로 야근과 과로를 참지 않겠다는 의견들이 나온 것이다. 이들은 "주 52시간제 준수하라"는 주장을 무기로 삼아 회사 측을 상대로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법률 산업의 변화와 맞물린 '어쏘의 각성'

어쏘 변호사들의 불만이 지금 시점에 터져 나온 데는 법률 산업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법조계의 경쟁이 심화되고,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면서 어쏘 변호사의 처우가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진 탓이다. 한 대형 로펌 어쏘 변호사는 "선배 세대 변호사들이 받았던 급여는 사회 전체와 비교해 볼 때 굉장히 높았다. 그런데 지금 세대 변호사들은 대기업 다니는 직원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갭이 줄어든 것이다. 기업의 경우 52시간을 지키면서 일하는데, 대형 로펌에서 받는 급여가 몸을 갈아 넣을 정도의 가치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형 로펌에서 연봉 인상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지고, 유학을 보내는 어쏘 변호사의 비율이 줄어드는 등 복지가 줄어드는 일이 생겨났다. 개인 사무실을 사용하는 것이 변호사 같은 전문직의 상징처럼 여겨졌는데, 한 대형 로펌의 경우 4인이 1실을 쓰는 경우도 나타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로펌 변호사는 "예전에 대기업 월급이 300만 원일 때 빅펌은 월급 900만 원이었는데, 10년이 지난 뒤 대기업이 월급 600만 원인데 빅펌은 그대로 월급 900만 원이라는 우스개가 나온다"고 밝혔다. 법률 산업의 변화로 처우가 상대적으로 나빠지는 상황에서 야근과 과로를 강요받던 어쏘 변호사들 중 일부가 더 이상 재량근로제에 동의해선 안 된다고 느낀 것이다.
어쏘변호사

근로시간을 법으로 규제하는 이유

국가가 법으로 근로시간 총량을 규제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한 명이 오랫동안 일할 것을 1.5명 혹은 2명이 일하도록 하는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고용을 창출하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 입장에선 최대한 인력을 적게 뽑아 인건비를 줄이고, 오래 일하도록 만들어 많은 업무를 시키는 것이 이득이다. 하지만 노동은 상품이 아니고, 인간은 로봇이 아니므로 노동법에서는 근로시간 총량을 규제하고 연장, 야간, 휴일 근로에 대해서는 수당을 더 주도록 한 것이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 주 52시간제 적용을 제외시키자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정치권이 논의에 나선 바 있다. 연구 인력이나 고연봉 전문직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제한의 예외를 두자는 것인데,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이런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미국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라는 이름으로 관리직, 운영직, 전문직에 대해 근로시간 규제를 제외하는 제도가 있다. 그런데 미국은 일반 근로자도 법정 근로시간을 통해 근로시간 총량을 제한하지 않는다. 다만 주 40시간 이상의 경우 1.5배의 할증 임금을 주도록 노동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근로시간 총량 제한이 없는 만큼 미국 제도는 한국과 단순 비교하거나 도입을 논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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