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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이 또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2024년 미국 내 CD 판매량 조사 결과, 케이팝 그룹이 '톱 10' 가운데 7장을 휩쓴 것입니다.
현지 시간 지난 15일, 음악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석 업체 루미네이트가 공개한 '2024년 연말 음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CD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였습니다. 하지만 미국 가수 중에 미국 내 CD 판매량 '톱 10' 앨범을 낸 가수는 테일러 스위프트(1위, 8위 '1989')와 빌리 아일리시(10위 'Hit Me Hard and Soft')의 단 두 명뿐이었습니다. 2위부터 9위까지를 한국 그룹인 스트레이 키즈, 엔하이픈, 에이티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트와이스의 앨범들이 차지했습니다.
Taylor Swift - I Can Do It With A Broken Heart (Official Video)
루미네이트는 이 보고서에서 CD와 디지털(스트리밍과 다운로드) 판매량을 합산한 '톱 10'의 순위도 공개했는데요. 여기선 1위부터 5위까지를 모두 미국 가수가 차지하며 자국의 자존심을 챙겼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 빌리 아일리시, 트래비스 스콧, 사브리나 카펜터, 채플 론이 차례로 포진한 거죠. 하지만 이 차트에서도 6위에 스트레이 키즈, 8위에 엔하이픈이 끼어들면서 케이팝의 화력을 보여줬습니다. 참고로 비욘세의 'Cowboy Carter'가 10위로 '톱 10'에 턱걸이했습니다.
Beyoncé - TEXAS HOLD 'EM (Official Visualizer)
두 차트의 각 앨범에 병기된 판매량 수치를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습니다. 스트레이 키즈의 앨범 'ATE'는 CD 판매량만으로 44만 2천 장을 기록했는데, 디지털 합산 수치는 47만 2천 장으로 디지털 소비로 가산된 숫자가 3만에 불과합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1위 앨범이 CD로는 151만 장가량 팔렸지만 디지털 소비까지 환산해 합산하니 349만 장으로 두 배 넘는 숫자가 나온 것과 대조적이죠. 빌리 아일리시의 앨범은 CD 판매(10위)로는 16만 5천 장 팔리는 데 그쳤지만 디지털을 합산하니 3.45배 많은 57만 장 판매로 환산돼 'CD+디지털' 차트에선 2위로 껑충 뛰어올랐어요.
줄여서 말하자면, 케이팝은 미국의 손에 만져지는 CD 시장에서만큼은 압도적인 성과를 냈지만, 실질적인 감상에 해당하는 디지털 소비에서는 미국의 주류 시장에 효과적으로 침투하지 못한 셈입니다.
같은 보고서의 다른 차트들까지 살펴보면 케이팝의 편중 현상은 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CD, 디지털, 비디오 스트리밍 수치까지 반영한 종합 차트는 물론이고 디지털 송 차트, 스트리밍 차트, 라디오 방송 차트, 바이닐과 카세트 판매 차트까지, 다른 어떤 차트에서도 '톱 10'에 케이팝은 없었습니다. 루미네이트는 장르별 슈퍼 팬덤의 동향을 따로 언급하면서 케이팝 슈퍼 팬의 73%가 실물 음반(CD)을 구매했다고 특기하기도 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제이팝 슈퍼 팬의 76%, 록 장르 슈퍼 팬의 75%가 실물 머천다이즈(MD 또는 굿즈)를 사는 경향과도 흡사합니다.
슈퍼 팬 비즈니스는 폭발적인 한편 그 한계 역시 뚜렷합니다. 시장의 남녀노소 보편 소비자에 다가가는 주류 시장을 뚫지 못하고 서브컬처로 남는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이를 증명하는 걸까요. 멤버들의 화보, 랜덤 포토카드, 팬사인회 응모권 등으로 구성이 풍부한 케이팝 수출의 효자, CD의 판매량 증가세는 지난해 한풀 꺾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6일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음반 수출액은 2억 9천183만 달러(약 4천255억 원)로 전년도 2억 9천23만 달러(약 4천232억 원)보다 0.55%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사실상 제자리걸음입니다.
케이팝 음반 수출액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급증하는 추세였습니다. 2019년 7천459만 달러에 불과하던 매출은 2020년 1억 3천620만 달러로 1억 달러의 벽을 돌파하더니, 2021년 2억 2천85만 달러, 2022년 약 2억 3천139만 달러로 꾸준히 늘었습니다.
지난해 케이팝 음반이 많이 팔려나간 수출 대상 국가 '톱 3'는 2023년과 마찬가지로 일본, 미국, 중국 순이었습니다. 세 나라의 수출액 점유율이 72.8%로 거의 전체 파이의 4분의 3에 육박했죠.
써클차트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케이팝 실물 음반 판매량(1위~400위 합계)은 약 9천890만 장으로 2023년에 비해 2천130만 장 줄어들면서 1억 장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Stray Kids(스트레이 키즈) "Stray Kids" Video
사실 미국 내 CD 판매량 '톱 10'에서 2023년에도 케이팝은 무려 7장을 올려놓으며 현지 가수들을 압도했습니다. 2년 연속 '코리언 인베이전'은 그러나 현지의 주류 시장에서는 큰 파급력을 갖지 못한 '물펀치'였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또는 여전히) 케이팝 시장의 해외 성장 관건은 로제의 'APT.'처럼 대중적 히트곡을 얼마나 낼 수 있느냐가 되겠습니다. 로제는 중독성 있는 악곡에 영어 가사와 브루노 마스의 피처링, 그리고 글로벌 음반사를 낀 대대적인 홍보와 마케팅까지 더하면서 성과를 냈습니다.
그렇게 보면 현지에서 뽑아 현지의 방식으로 마케팅하는 이른바 케이팝 현지화 그룹의 선전도 기대해 볼 만합니다. 하이브는 미국 시장에서 선보인 현지화 걸그룹 '캣츠아이'에 이어 올해 라틴아메리카 시장에서도 현지화 그룹을 새로 데뷔시킬 예정입니다. SM엔터테인먼트는 한영(韓英) 합작 보이그룹 '디어앨리스'의 정식 데뷔곡 'Ariana'를 2월에 내놓을 계획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