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에게 ‘일상’이란 최고의 ‘영감 화수분’이기도 하고 최대의 방해물이기도 하다.
리지(미셸 윌리엄스)는 요즘 도무지 집중이란 걸 할 수가 없다. 보일러가 고장나서 집에는 온수가 안 나오지, 집 주인은 말로만 고쳐준다고 하고 차일피일 미루지 (게다가 그녀는 리지의 은근한 예술적 경쟁자다),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은 제 정신이 아니지, 아버지는 모르는 사람들을 집에 끌어들이지, 어머니는 아버지를 혐오하고 남동생은 싸고 돌지… 이 와중에 반려묘 리키는 집안에 잘못 들어온 비둘기를 물어 부상을 입혀 놓았다.
이런 빌어먹을 상황에서.
소심하고 섬세한 리지는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 낮에는 대학 행정직원으로 일하면서 밥벌이를 하고 밤에는 작품을 만드는 리지에게 이번 전시회는 예술가로서의 경력에 중요하다. 그녀는 미국 포틀랜드에 사는 무명의 도자기 인형 조각가다. 포틀랜드는 미국에서도 자유와 예술의 도시로 유명하다.
영화 《쇼잉 업》은 봉준호와 하마구치 류스케가 사랑하는, 미국 독립영화의 거장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영화다. 라이카트 감독은 우리에게는 지난 2021년 개봉했던 “퍼스트 카우”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영화에서 주인공 리지 역은 라이카트 감독의 오랜 페르소나인 미셸 윌리엄스가 맡았다.
《파벨만스》,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등으로 오스카 후보에 네 차례나 올랐던 미셸 윌리엄스는 《쇼잉 업》이 “안팎의 많은 저항을 극복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삶은 늘 그걸 방해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저항은 거대한 난관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늘 우리의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많은 일상의 저항에 봉착해 있다. 인간이고 사회인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게다가 리지는 우리처럼 평범하고 상처받기 쉬운 캐릭터다. 다쳐서 날지 못하는 비둘기를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창밖으로 내치는 매몰찬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옆집 사는 집주인 조가 그 비둘기를 길에서 거뒀다며 잠시만 보살펴 달라고 하자 거절하지 못하고 성심껏 보살핀다. 전시회에 내보낼 리지의 조각품을 굽다 반쯤 태워먹은 사람이 사과는 커녕, 그을린 작품이 그 나름대로 멋이 있고 자신은 그쪽 취향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놓아도 리지는 별말 못하고 돌아서는 쪽이다. 리지의 내면은 늘 긴장과 불안으로 흔들린다.
라이카트 감독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안과 긴장이 일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하다. 제가 아는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정말 스스로를 괴롭힌다.”라고 말한다.(A24 보도자료 중) 봉준호도 스스로를 “불안의 감독”이라며 영화를 찍을 때 불안하지 않으면 그게 불안하다고 말한 바 있다.
최근 출간된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의 신작 “먼 산의 기억”에서는 파묵의 뜻밖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과연 출판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든다”고 할 정도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 그림 에세이를 보면 대작가인 그도 일상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도 별 거 아닌 일로 짜증을 내고 사소한 일로 우울해한다.
"아슬르와의 무의미한 말다툼으로 기분을 망쳤다."
"식사가 나오진 않아 화가 나고 부루퉁해졌다."
"노턴 마지막 장의 마지막 몇 페이지들을 도무지 원하는 대로 쓸 수 없어 묘한 불안감이 밀려오고 불행해졌다."
누구도 일상을 비켜갈 수는 없다. 누구나 밥을 먹어야 하고 배설을 해야 하고 씻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고 기타 등등 삶을 영위하기 위한 행위를 해야 한다.
이 글을 구상하고 쓰는 동안에도 시시때때로 카톡이 당도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카톡을 툭툭 띄워 보내고- 요양원에서는 어머니가 감기에 걸리셨는데 어젯밤에 갑자기 식은 땀을 흘리고 고열이 올랐다는 연락이 온다. 내 왼쪽 고관절은 몇 달째 말썽이고, 왼팔을 들면 얼마 전 다친 어깨가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연말정산용 차량등록을 하라는 공지가 떠서 처리해야 하고, 꼬여버린 다음 주 저녁 약속 일정도 조정해야 하며, 며칠 전 지인의 부탁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지 계속 고민이 된다.
리지는 나아간다. 그녀를 흔드는 온갖 일상의 번뇌 속에서도.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는 원래 차(茶)를 마시고 밥(飯)을 먹는 일상적인 행위(事) 속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을 담은 불교 용어다.
드디어 다가온 전시회 날. 갑자기 나타나서 한쪽에 차려 놓은 다과를 싹쓸이하는 동생과 전시 관람객에게 치근덕대는 아버지의 주책에도 불구하고 전시회는 아슬아슬 그럭저럭 진행된다. 그리고 리지의 보살핌 덕분에 자연이라는 일상으로 돌아간 비둘기의 시선을 뒤로 한 채 리지와 조는 전시회를 마친 작은 안도감과 성취감, 그리고 동료애를 느끼며 다시 일상으로 사뿐사뿐 걸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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