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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77246' 그때 그 위조지폐 아직도 유통 중

첨단 금융과 먼 생활인 농락하는 위폐 단속은 통화당국의 영원한 과제

[취재파일] '77246' 그때 그 위조지폐 아직도 유통 중
# 지난 2013년 6월, 서울 광진경찰서가 48살 김 모씨를 구속했다. 김 씨의 혐의는 '통화위조 및 사기'. 당시 경찰은 김 씨가 2005년 3월부터 만들고 쓴 5000원 권 위조지폐가 무려 5만여 매에 달한다고 밝혔다. 2억 5000만 원어치 위폐를 만들어 8년 간 생활비로 썼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경찰을 취재하던 기자도 이 사건을 보도했다. (관련기사 : 8년 동안 가짜 돈 쓰며 생활…작업실까지 / 8뉴스) 김 씨는 경기 성남시 집 근처에 작업실까지 차려놓고 위폐를 만들었다. 컴퓨터 디자인 전공자였던 그의 집에선 컴퓨터와 프린터, 종이와 풀 등 '기초적'인 도구가 나왔다. 김 씨는 "화폐를 스캔해, 포토샵에서 읽어서 조금 부족한 부분들은 수정해 출력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매년 4000~5000장에 달하는 5000원 권 위폐를 전국에 풀던 김 씨의 행각은 한번 갔던 슈퍼마켓에서 또 위폐를 쓰다가 주인이 신고하면서 끝났다.
 
8년간 위조지폐 만들어 사용한 범인 검거

# 김 씨가 위조한 5000원 권은 1983년 발행된 구권이었다. 위폐 속 화폐 발행번호는 모두 동일하게 ‘77246’ 다섯 자리 숫자가 담겨있었다. 한국은행은 당시 보유하고 있던 5000원 권 잔량의 위·변조 여부를 확인하고, 위조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난 5000원 권 구권을 모두 폐기해 유통되지 않도록 했다. 2007년 1만원, 1000원 권 신권과 함께 발행하려던 5000원 권 신권도 계획을 1년 앞당겨 2006년에 먼저 발행했다.
 
김 씨는 감옥에서 8년을 살고 2021년 출소했지만 그가 남긴 ‘그때 그 위폐’는 생명력이 질기다. 9일 한은이 발표한 ‘2024년 위조지폐 발견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년 간 발견된 위조지폐는 모두 143장이었다. 금액 기준으로 193만 원어치다. 2023년 발견된 197장 207만 8000원 대비 54장, 액수로는 7.1% 줄었다. 작년 적발 위폐를 권별로 보면 5000원 권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모두 75장 발견돼 전체 위폐의 52.4%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74장이 문제의 ‘77246 지폐’였다.

회자(會子) 1160년에 발행된 중국 남송 왕조의 공식 지폐로 전해짐

# 10세기 중국 송나라에서 일제 단속을 벌였다고 전할 만큼 위폐의 역사는 유구하다. 전시에 적국을 혼란케 할 목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과 독일이 위폐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선 해방 직후 조선공산당이 남한 경제를 교란하고 공산정권을 수립할 목적으로 위폐를 만든 조선정판사 사건이 있었다. 목적이야 무엇이든 위폐가 창궐했을 때 결과는 ‘경제 질서 혼란’이다.
 
# 손끝만 살짝 움직여도 천문학적 “유동성”이 서로를 오가는 스마트폰 세상에서 ‘위조 지폐’는 어딘지 낡은 언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 한은은 위폐 발견이 줄고 있는 이유로 “비현금지급수단 이용 활성화에 따른 대면 상거래 목적의 화폐 사용 감소”를 들고 있다. 1997년 전국에 1만원 권 위폐 발견이 잇따랐을 때 한 신문은 “통화당국과 경찰은 위폐수사 전담반을 편성하라”고 사설로 꾸짖기도 했는데, 이런 목소리도 이에 부응하는 정부의 대책도 이젠 좀처럼 보고 듣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여전히 종이 화폐가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은주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져도 직접 다듬은 도라지며 우엉을 길에 내놓고 구깃한 지폐로 주고받는 시민들이 있다. 위폐 제조와 유통은 이 신성한 경제 행위를 좀 먹는 악질 범죄다. 핀테크니 혁신이니 하는 첨단 금융의 화려한 수사에서 한 발짝 떨어진 생활인들을 아프게 하는 위폐를 막는 건 통화당국이 결코 놓지 말아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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