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가 아니었습니다. 지난 8일 국회 국방위의 국방부 국감에서 김용현 장관은 야당과 심하게 다퉜습니다. 야당 의원들의 고성이 터졌고, 김 장관은 "정치 선동 말라"며 맞섰습니다. 국회 의사중계시스템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급기야 김용현 장관의 입에서 '병X' 비속어까지 튀어나왔습니다.
민주주의 문민통제에서 국방장관은 문민정부를 대리해 군을 지휘합니다. 군의 대표는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입니다. 반면, 한국의 문민통제는 독특합니다. 형식적으로는 국방장관이 문민정부를 대리해 군을 지휘하지만, 내용적으로 들어가 보면 장관은 문민정부를 대리하면서 동시에 군을 대표하는 이중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의 대표인 김용현 국방장관이 야당과 벌이는 대립은 군의 정치적 행위로 비쳐집니다. 정치중립을 신주단지처럼 여겨야 하는 군인들에게 무거운 짐입니다.
근원은 장관의 과거 언행…부담은 군이?
"청와대의 안보 운운, 역겹다"는 발언,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른 국방부와 몇몇 부대의 연쇄 이동, 대통령 관사 리모델링, 입틀막 경호 등등… 김용현 국방장관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정치적 사건들입니다. 김 장관이 대통령실 이전 TF와 경호처에서 본인 뜻대로 일을 추진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야당은 김용현 장관을 정치적 표적으로 삼는 것이고, 김 장관도 이를 감수할 각오가 섰으니 장관직을 수락했을 터. 야당의 공격은 김 장관이 무슨 수를 쓰든 스스로 흡수하고 군에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할 텐데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지난 9월 6일 국방부 기자단 간담회에서 기자들이 가장 궁금했던 것은 "김용현 장관이 야당과 어떻게 관계 설정할지"였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김 장관은 "야당이 올바르지 못하면 직을 걸고 싸우겠다"고 공격적으로 말했습니다. "안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대화하겠다" 정도의 평이한 답변을 기대했던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이어 김 장관은 군의 억제 역할을 설명하면서 비속어를 거듭 사용했습니다. 대변인이 "비속어는 좀 순화시켜서 보도해달라"고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했을 정도입니다.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국방부 당국자들이 모여 "불안하다"며 혀를 찼습니다.
지난 9월 26일 김용현 장관은 국회 본회의장을 방문해 취임 인사를 했습니다. 인사말이 길어지자 김 장관에게 감정이 안 좋은 야당의 일부 의원들이 "짧게 하라"며 항의했습니다. 김 장관은 개의치 않고 준비한 인사말을 끝까지 읽었고, 국민의힘 의원들과 국회의장에게 인사한 뒤 퇴장했습니다. 야당 의원석은 눈길도 안 주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지난 8일 국회 국방위의 국방부 국감에서 김 장관과 야당은 정면충돌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같은 충암고 출신의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발언 태도가 화근이었습니다. 여 사령관이 의원들 질의를 끊고 답변을 이어가자 야당 의원들이 반발했고, 이 과정에서 김용현 장관은 "군복 입고 할 애기 못 하면 더 병X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야당 의원이 김 장관과 여 사령관을 전두환, 차지철에 비유하자 김 장관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맞받았습니다.
국방장관과 정치의 관계는?
군에서 큰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방장관은 군을 꾸짖고, 합참의장이나 참모총장은 사과하는 것이 민주주의 문민통제의 정상적 양태입니다. 국방장관은 문민정부를 대리해 군을 지휘하는 직위여서 군이 잘못했을 때 문민정부를 대신해 군을 혼내는 것입니다. 사과는 군복 입은 합참의장, 참모총장, 사령관들의 몫입니다.
한국은 다릅니다. 국방장관은 문민정부를 대리하기 보다 군을 대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군에서 큰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방장관이 사과합니다. 이어 국방부 감사관실과 검찰단에서 감사하고 수사합니다. 국방장관이 사과하고 국방부가 조사하니까 언제나 셀프 조사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민주주의 문민통제의 한국적 특수성입니다.
국방장관이 군을 대표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국방장관은 각별히 정치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국방장관의 언행이 정치적이면 군이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자동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김용현 장관의 정치적 언행도 우리 군의 정치화와 등치됩니다. 군이 정치에 엮이면 군은 국민의 신뢰를 잃고,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군은 오합지졸입니다. 군부독재 흑역사의 기억이 선명한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김 장관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합참의장도 야당과 싸우고
군이 정치권과 싸울 수는 있습니다. 까다로운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정당이 안보를 위협하는 언행을 했을 때입니다. 한국의 안보 지형에서 기성 정당이 안보에 반하는 언행을 할 수 있을까요? 유권자의 표심을 크게 잃을 위험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한국의 정치권은 방법론이 다를 뿐 안보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군은 아무리 거대 야당이라도 설득하며 나아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어제 국방위의 합참 국감에서 김명수 합참의장은 몇몇 야당 의원들과 거친 설전을 벌였습니다. 차분한 토론으로 충분히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안보 방법론이 화제였는데 말다툼으로 비화했습니다. 합참의장이 "군복 입고 할 말 못하면 병X"이라는 장관의 말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 고위 장교는 "합참의장은 국민이 아니라, 장관에게만 충성하는 것 같다", "만약 정권이 교체되면 김용현 장관과 김명수 의장의 유산에 후배 현역 장교들만 곤욕을 치를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