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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건희 여사 소환은 어떻게 '정치 드라마'가 되고 있나

[취재파일] 김건희 여사 소환은 어떻게 '정치 드라마'가 되고 있나
"[단독] ㅇㅇㅇ 의원 컷오프 검토 기류"

지난 총선, 온갖 기사가 쏟아지던 여의도 정치권을 취재했다. 기자들은 내가 모르는 게 타 언론사에 나왔을 때 '물을 먹었다'고 표현하는데, 다채로운 맛의 온갖 종류의 물을 마시는 고통스럽고도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개중에 가장 오묘한 맛의 '물'은 '~검토', '~기류'로 끝나는 제목의 것들이었다. 정치는 생물이라 했던가. 정치권을 취재하는 언론들이 쏟아내는 다양한 '검토' 및 '기류' 기사들은 종종 상황을 '만들어 나갔다'. 누구인지 모를 '플레이어'의 입에서 시작된 '[단독] ㅇㅇㅇ 의원 컷오프 검토 기류', '[단독] 공천관리위원회, 현역 의원 X명 공천 배제 가닥'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나가면 또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를 부인하기 바빴다. 하지만 보도가 반복되면 상황은 결국 그렇게 흘러가곤 했다. 그것은 불 나고 홍수 나고 사람이 잡혀가고 풀려나는 기사를 쓰던 전직 사회부 기자에게는 어려우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경험이었다. 존재하는 팩트를 찾아 기사에 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관찰자인 기자가 '플레이어'들과 함께 미래의 팩트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니!

총선이 끝나고 다시 서초동 법조계를 취재하게 되었다. 잡아 들이려는 이들과 잡혀가지 않으려는 이들의 투쟁이 펼쳐지는 음습한 곳이지만, 여의도 정치권을 취재하며 고민했던 복잡한 물음들로부터는 조금이나마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위안했다. 팩트를 취재하는 것에 따르는 어려움은 감내해야겠으나, 상황을 '만들어 가려는' 플레이어들의 힘 싸움을 보는 피로감은 조금 덜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 그 기대가 헛된 것이었음을 거의 매일같이 느끼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

대다수 일반 국민들은 이름을 알 필요가 없는 검찰 간부 -심지어는 지검장이나 차장도 아닌 부장급 검사들- 의 인사 전망을 취재하거나, 대통령 배우자 소환 여부와 형식을 둘러싼 '말'들을 접할 때 특히 그렇다. 기자들은 출근길 검찰 인사와 관련한 질문을 받은 이원석 검찰총장이 몇 초 동안 침묵을 했는지 숫자를 헤아리고, 검찰총장이 대통령 부인 소환을 두고 '지인'들에게 했다는 상세한 전언들이 유력 일간지 1면을 장식한다. 그리고 또 다른 '플레이어'들은 '검찰이 용산과 야당 사이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데, 총장이 자기 정치를 하는 바람에 매듭이 더 꼬이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음으로 양으로 털어놓는다. 이렇게 서초동 언저리에서 생산된 '말'들은 용산과 여의도의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에게 전달되고, 그들은 또다시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만들어낸다. 바야흐로 여의도에서 주로 전개되던 정치 드라마가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중반 들어 아예 서초동으로 주 무대를 옮겨 절정을 향해 질주하는 느낌이다.

이 드라마의 끝은 어떻게 될까? 검찰 관계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여권 핵심 관계자… 수많은 조연들은 오늘도 여러 대사들을 쏟아내며 이 드라마를 만들어 나가려 열심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드라마의 전개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주연의 결단일 터. 그리고 그 위치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아직까지 분명 이 극의 주연은 대통령과 그의 배우자일 것이다. '존재라는 거대한 연극에서,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관객이자 배우로서 스스로의 위치를 조화롭게 하는 데 있다'(양자물리학자 닐스 보어). 시간은 째깍째깍 흐르고, 극의 절정은 또박또박 다가온다. 조연은 조연답게, 관객은 관객답게, 그리고 주연은 주연답게. 이 드라마가 어떻게 쓰여지느냐에 따라 우리 정치와 사회의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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