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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공화국 추적기 - 리딩방 사기가 '남는 장사'가 된 이유 [취재파일]

<리딩방 사기 사건 추징 및 배상 현황 전수조사 보도> 취재 후기

SBS <8뉴스>에서는 지난 9일 리딩방 투자 사기로 전 재산을 잃었지만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해액의 1원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돈을 되찾으려면 우선 수사기관이 범인을 붙잡아야 합니다. 붙잡힌 범인은 형량을 조금이라도 줄이려 피해자들에게 돈을 일부라도 돌려주고 합의를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피해 회복에는 별 관심이 없는 범죄자들도 있는데, 리딩방 사기 일당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리딩방 사기 수법 카톡


코로나 이후 주식 등 금융 자산 투자에 관심이 늘면서 리딩방 사기도 전성기(?)를 맞이했다.

사기를 당한 것도 서러운데, 비용과 시간을 또 들여가며 범인에게 돈을 돌려달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피해자 중에는 이미 피해 금액이 너무 커서 추가적인 소송을 진행할 여력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형사 재판 과정에서 위법 여부와 배상 책임이 분명하게 드러나 추가 소송이 불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형사 재판 중에도 피해 회복이 가능토록 하는 제도들이 마련돼 있습니다. '부패재산몰수법'은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권 등을 행사하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면 범죄 수익을 국가가 대신 몰수‧추징*한 다음 피해자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피해 금액과 배상 책임 및 범위가 명확할 경우에는 재판부가 유죄 판결을 선고하면서 범죄 피해에 대한 배상명령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소송촉진법)

*몰수는 부패재산을 범인으로부터 박탈해 압수하는 것이고, 추징은 부패재산을 몰수할 수 없는 경우에 그 가액만큼 범인에게서 징수하는 것입니다.

피해 회복에 관심이 없는 범인마저도 제도로써 피해자에게 돈을 돌려주고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는데, '리딩방 투자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은 왜 피해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까요? 이 물음에서 <리딩방 사기 사건의 추징 및 배상 현황 전수조사 보도>는 시작됐습니다.

하루에 18건, 한 건마다 1억 씩

리딩방 사기는 점점 더 빠르게 늘고 있고, 피해 규모 역시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4분기에만 경찰청에 접수된 리딩방 투자 사기 신고는 1,452건인데, 올해 1분기에는 1,783건으로 늘었습니다. 피해 규모 역시 지난해 4분기에는 1,266억 원으로 집계됐는데, 올해 1분기에만 1,704억 원이 추가됐습니다. 지난 반년 동안 하루에 18건씩, 1건당 9,200만에 달하는 피해 신고가 접수되고 있는 셈입니다.

리딩방 사기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 기망 사기에서 조직범죄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들 일당들은 총책을 비롯해 불특정 다수를 리딩방으로 유인하는 '모집책', 투자 전문가 행세를 하며 투자금 송금을 요구하는 '유인책'과 '바람잡이', 피해금을 송금 받는 대포계좌를 제공하는 '대포계좌 유통책', 피해금을 인출해 조직원들에게 송금하는 '인출책', 범죄 수익을 상품권 등을 통해 세탁하며 추적을 어렵게 만드는 '자금 관리책' 등으로 이뤄져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피해자를 쉴 새 없이 양산해내고 있습니다.

특히, 리딩방 사기 일당들은 초반에는 수익 실현이 이뤄지는 것처럼 꾸며 피해자로 하여금 더 많은 돈을 받아냅니다. 그런 뒤에는 원금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며 추가 입금을 요구합니다.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대화방 곳곳에 숨어있는 바람잡이들이 시의적절하게 간증(?)을 쏟아내며 사기꾼을 믿고 따르도록 유도합니다. 이처럼 공격적인 투자로 절묘하게 둔갑한 리딩방 사기는 어느새 보이스피싱과 전세사기 같은 민생침해 범죄로 진화했습니다.

리딩방 사기 피해자 취재

A 씨 / 리딩방 사기 피해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오면 '어차피 다 사기야.' 하고 삭제하고 차단하고 그런 일상이었는데, 그날은 이렇게 사기를 당하려고 했는지 들어가게 됐어요. 일당이 주식을 추천하면, 수익이 났다고 사람들이 다 같이 환호하고.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 방에 있는 사람들 90%는 바람잡이였던 거죠. 그래서 믿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한 사람을 바보 만드는 건 순식간이에요."

"범죄 수익을 지켜낸다면, 그게 곧 승소."

현란한 그들의 범죄 행위도 결국엔 민낯이 드러나고 범인들은 붙잡혀 법정에 서게 됩니다. 최근엔 10년이 넘는 중형이 선고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범죄 수익을 둘러싼 술래잡기입니다.

최근 수사기관은 범죄자들을 재판에 넘기기 전부터 발 빠르게 범죄 수익에 대한 보전 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범죄 행위로 얻은 수익을 일시적으로 묶어놔 처분 또는 은닉하는 것을 수사 단계부터 차단하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상반기에만 기소 전에 351건(5,073억 원)의 보전 조치가 이뤄졌는데, 재작년에는 452건(1,316억 원)으로 30%나 늘었고 지난해에는 797건(1,410억 원)으로 또 증가했습니다.(출처 : 경찰청)

그러나 리딩방 사기 일당은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수사 및 재판 과정 전반에 걸쳐 변호사 비용을 아끼지 않고 범죄 수익을 지켜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는 것입니다.

가령, '수사 기관에 의해 보전된 돈들이 범죄 수익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더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 '범죄 수익이 맞더라도 피고인별로 책임이나 관여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성급하게 추징해서는 안 된다.' 식의 반대 논리를 펼치면서 재판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리딩방 투자 사기 피고인들의 가장 큰 요구는 범죄 수익을 지키는 것이다. 유죄가 나오더라도 범죄 수익을 지켜낸다면 그게 곧 승소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리딩방 사기 피해자 취재

B 씨 / 리딩방 사기 피해자
"심지어 재판 중에 범죄자들 웃으면서 재판을 봅니다. 피해 금액으로 내로라하는 법무법인을 세 군데, 네 군데씩 선임해서 대비하는 거예요. 돈을 잘 지키고 숨겨서 자기들은 형량을 살고 나오면 그만이라 생각을 저희도 받았어요. 법정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피해자는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웃으며 재판을 지켜보는 이유

범죄 수익을 둘러싼 술래잡기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지난 1년간 1심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된 리딩방 사건 총 43건의 판결문을 전수 분석한 결과, 피해자에게 범죄 수익을 돌려주라고 재판부가 추징 명령을 내린 건 4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추징 명령이 이뤄진 4건에서도 평균 추징액은 범죄 피해액의 1.6%에 불과했습니다. 피해를 회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사실상, 모든 사건에서 리딩방 사기꾼은 범죄 수익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리딩방 사기 사건 추징·몰수 건수

재판부가 몰수나 추징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서 돈을 되찾을 길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앞서서 설명한 것처럼 소송촉진법에 근거해서 피고인(리딩방 사기 일당)이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도록 명령해줄 것을 정식으로 신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전체 43건의 사건 중 29건에서 피해자가 나서서 재판부에게 배상 명령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이런 피해자의 배상 명령 신청이 인용된 건 단 1건에 불과했습니다.

리딩방 사기 사건 배상 명령 건수

이러나저러나 못 찾는다.

제도까지 만들었는데, 빼앗긴 돈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추징도, 배상명령도 모두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사건 하나를 자세히 뜯어보려 합니다.

이 사건을 일으킨 사기 일당은 재작년부터 '맥스퀘어'라는 비상장 회사를 두고서 조직적으로 사기 행각을 모의했습니다. 방식은 아주 간단합니다. 피해자들을 리딩방에 몰아넣고 바람잡이 등을 동원해 홀린 다음 액면가 100원짜리에 불과한 비상장사의 주식을 '곧 상장이 임박했다'며 18,000원에 파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총 520명, 피해 규모는 177억 원이 넘습니다.

다행히 일당 대부분이 붙잡혀 대부분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사기조직 관리책 등 일부는 최근 1심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검찰이 요구한 추징명령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검찰은 각자의 범죄 수익 정산 비율을 파악해 피고인 5명에 대한 72억 2천만 원 상당의 추징명령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던 것입니다.

우선,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청구 등 민사적 방법으로도 충분히 범죄 수익을 찾을 여력이 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가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피해자들이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피해자 모임을 구성했고, 피해자 스스로 피고인들의 인적사항과 피해액을 특정해 이미 배상신청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저 인터넷카페에서나마 모여 서로의 피해 상황을 공유하고, 돈을 조금이라도 되찾으려 배상 명령을 신청했던 게 오히려 피해자에게는 독이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전체 배상명령 신청 377건 중 13건만 변호인의 조력을 받았단 사실입니다. 나머지는 변호인을 선임할 형편이 안 돼 피해자가 직접 신청서를 작성하거나 다른 피해자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그래서 상당수는 신청 기한을 지키지 못하거나 서명 또는 날인을 빼먹어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변호사를 쓰지 못해 배상 명령 신청서도 혼자 써야 했던 피해자들이 과연 민사 소송에 나설 여력이 있을까요?

또한,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이번 사건으로 공범들이 각각 얼마만큼 범죄 수익을 나눠가졌는지 특정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범죄 수익을 특정할 수 없으니 추징도 할 수 없다는 논리인데, 이는 재판부가 피해자들의 배상 명령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도 그대로 적용됐습니다. 이 사건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건에서 똑같은 논리가 반복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지금의 법 테두리에서는 이러나저러나 리딩방 사기 피해자들이 돈을 되찾기 어려운 구조인 것입니다.

리딩방 사기 전문가 취재

이승우 / 변호사
"피해자가 너무 경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자기의 비용으로 범인들을 쫓아다녀 봐도, 결국 남는 것은 판결문입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죠. 형사 재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다투기도 바쁩니다. 유죄 입증과는 별개로 범죄 수익을 찾아내 특정할 인력과 역량 모두 부족한 상황입니다. 법원 입장에서도 확실하지 않은 형태로 판결을 하게 되면 안 되니까, 더 엄격하게 보고 까다롭게 보고 꼼꼼하게 보다 보면 아무래도 추징 선고나 배상 명령을 내리기 힘들어집니다."

"새로운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리딩방 사기 범죄는 자본시장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사회의 첫발을 내딛기 위해 누군가 모아둔 종잣돈이나 평생을 몸 바쳐 마련한 누군가의 노후자금을 강탈하는 심각한 민생 범죄입니다. 따라서 예방부터 피해 회복까지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대응 체계가 반드시 마련돼야 합니다.

대부분의 리딩방 사기가 미신고 유사투자자문업자에 의해서 이뤄지는 만큼 적어도 미신고 업자에 의해 리딩방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신속한 대응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합니다. 보이스피싱 범죄처럼 수사 개시 이전부터 관련 계좌에 대한 지급 정지 조치를 내리거나, 더 나아가서는 이들 일당의 유튜브 방송 채널이나 SNS를 이용한 광고 행위도 즉각 중단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대책은 바로 강력한 처벌입니다. 지금처럼 리딩방 사기 범죄를 벌이다 붙잡혀 교도소에 가더라도 '남는 장사'가 돼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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