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번 기회에 유해가 발굴되면, 안 의사가 순국한 지 10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생기는 겁니다. 안 의사의 유골은 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발굴되지 못한 걸까요? 오늘 리포트+에서는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발굴되지 못한 이유를 살펴보고, 남북이 함께하는 유해 발굴의 의미를 짚어봤습니다.
■ "국권 회복되면 고국에 묻어 달라"…안중근 의사 유언, 왜 이뤄지지 못했나?
일제 강점기였던 당시, 법률에는 사망한 사람의 가족이나 친척, 친구의 요청이 있으면 시신을 인도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습니다. 안 의사 유족의 요구는 적법한 절차였던 것이죠. 하지만 일본 측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안 의사 유해 발굴 전문가인 김월배 하얼빈 이공대학 교수는 지난 6월 SBS 라디오 프로그램 '김성준의 시사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는데요. "당시 하얼빈의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가 일본 외무성에 보고해 시신을 인도해 주지 말라고 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안 의사의 유언에 따라 유해가 하얼빈 공원에 묻히면, 추후 그 지역이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 아직 비어있는 묘 하나…유해 발굴하려면, 中·日 적극적으로 협조 나서야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현재로서는 유해가 어디에 묻혀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된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안 의사의 순국 이후, 두세 건의 자료만 발견된 상태인데요. 관동도독부 사형 집행 보고서에는 안 의사는 유해를 '뤼순에 매장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또 당시 조선통감부 통역이자 안 의사의 재판 통역을 맡았던 소노키 스에요시가 보고한 공식 문건에는 '뤼순 감옥 묘지에 시신을 매장했다'는 글귀가 남아 있습니다.
김 교수 역시 지난달, 안 의사 유해가 매장된 장소에 대해 "구체적인 사료가 많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모든 가설을 다 열어둬야 한다"며 "안중근 의사 고향이 황해도 해주인 만큼 북한의 협력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협력, 그리고 꾸준한 민간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기획·구성: 송욱, 장아람 / 디자인: 소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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