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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사실은'] 전기차 틀어막는다고 주차장이 더 안전해질까?

안전한 주차장을 되찾기 위한 팩트체크…주차장을 위협하는 '진짜 위험'은 무엇인가.

퇴근길,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들어서서 빈자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비어있는 곳이 눈에 들어와 가까이 가보니 바로 옆 칸에는 전기차가 주차돼 있었습니다. 평소였다면 아무 생각 없이 주차했겠지만, 다른 빈자리를 찾아 주차했습니다.

지난 1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이후, 의심과 불안의 시선이 우리 주변의 전기차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미 전기차는 지하주차장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한 단지들도 나타나고 있고, 화재 발생 땐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 없이는 지하주차장을 이용할 수 없는 단지들도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이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 주차장이 더 안전해질까?'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이에 '전기차 지하주차장 출입 금지' 조치가 청라 지하주차장 화재와 같은 대형 사고를 막을 근본 대책이 될 수 있을지 하나하나 따져봤습니다.

'주차 중 불이 날 수 있는 차'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을 막는 가장 큰 이유는 전기차는 주차 중에 불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기차가 주차 중에 불이 난다는 건 데이터로도 확인됩니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지난 3년 동안 전기차 화재는 총 139건이 발생한 걸로 집계됐는데, 이 가운데 주차 중이거나 충전 중에 발생한 화재는 모두 62건(44.6%)입니다.

또한, 주차 중 화재 발생 빈도 역시 전기차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2021년에는 10만 대당 4.3대 꼴로 발생했는데, 재작년에는 4.6대, 지난해에는 6.3대로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확실히 전기차는 주차 중에 불이 날 수 있는 차가 맞습니다.

안상우 취재파일 CG1

그런데, 주차 중에 불이 나는 건 전기차만이 아닙니다. 전기차가 아닌 차량(내연기관을 가진 모든 차량)들도 주차 중에 불이 납니다. 실제로, 주차장과 공지로 한정해서 내연기관 차량 화재를 분석해보면 발생 빈도는 지난 2021년에는 10만 대당 3.5대, 재작년에는 4.0대, 지난해는 3.9대로 각각 나타났습니다.

안상우 취재파일 CG2

발생 빈도는 전기차보다는 낮지만 내연기관 차량의 보급률이 더 높기 때문에 화재 발생 건수는 내연기관 차량이 전기차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지난 3년 동안 주차장이나 공지에서 발생한 내연기관 차량 화재는 모두 2,911건이었습니다. 주차 중 발생한 전기차 화재보다 약 47배나 많은 수치입니다.

그렇습니다. 전기차를 틀어막는다고 해도 주차장에서 차량 화재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불이 나면 더 위험한 차'

물론, 전기차는 배터리 열 폭주 현상 때문에 불이 나면 더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번 화재에 앞서 우리는 리튬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화재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지, 그 가슴 아픈 사고를 지켜봤습니다. 때문에, 전기차 화재에서도 배터리 열 폭주 현상이 얼마나 위험한 지 당연히 따져봐야 합니다.

이와 관련한 연구 논문*이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에서 각각 화재가 발생했을 때 방출하는 열량 값 등을 측정해 비교했습니다.

*'Full-scale fire testing of battery electric vehicles'(2023)

그동안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2012년에도 비슷한 논문이 나왔는데, 그땐 배터리 용량이 23.5kWh(킬로와트시)인 전기차를 사용했습니다. 최근엔 배터리 용량이 100kWh가 넘는 전기차도 나오고, 청라 지하주차장 화재 당시 불이 난 전기차의 배터리 용량은 88.8kWh이었습니다. 제가 인용하는 논문은 배터리 용량이 64kWh인 전기차를 활용했습니다. 요즘 차량에는 여전히 못 미치지만, 과거 연구에 비하면 현실에 많이 가까운 조건입니다.

또, 이 연구 논문의 장점은 전기차는 물론, 전기차 배터리, 전기차 차체 각각에 대한 시험을 했습니다. 즉, 전기차 화재에서 어떤 요소가 열 방출량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따져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안상우 취재파일 CG3

시험 결과, 전기차에서 배터리 팩만 떼어낸 상태에서 불이 난 경우 최대 열 방출량(Peak Heat Relaes Rate, pHRR)은 1.54MW(메가와트)에 불과했지만, 차체만 떼어낸 상태에서 불이 났을 땐 최대 열 방출량이 7.81MW까지 치솟았습니다. 즉, 전기차 화재에서 열 방출량을 좌우하는 건 배터리가 아니라 운전자와 승객이 머무는 공간인 '캐빈(cabin)'에 있는 가연성 물질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안상우 취재파일 CG4

그렇다면, 실제 전기차(배터리 용량 64kWh)와 내연기관 차량의 열 방출량은 어떤 차이를 보일까요? 시험 결과 내연 기관 차량이 근소하게 더 높았습니다. 불이 난 전기차의 최대 열 방출량은 7.25MW였지만, 내연기관 차량은 7.66MW로 나타났습니다. 전기차도 그렇고 내연기관 차량도 그렇고 일단 불이 나면 위험한 건 매한가지인 것입니다.
 

'불이 꺼지지 않는 차'

지금까지 화재 빈도와 발생 건수, 화재 발생 시 열방출량 등을 비교해 봤지만, 불안함이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전기차 화재는 내연기관 차량과 달리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전기차 배터리팩은 방수, 방진 처리가 돼 있기 때문에 배터리에서 불이 시작됐거나 배터리로 불이 번졌을 경우 소방대원들이 아무리 소화수를 쏴도 진화가 쉽지 않습니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 불길을 어느 정도 가라앉힌 다음에 불이 난 전기차를 밖으로 꺼내 거대한 수조 속에 넣어버리는 것일 정도로 진화가 어렵습니다.

안상우 취재파일 사진1

이처럼 전기차 화재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진화가 어렵고 더 오래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책이 없는 건 아닙니다. 스프링클러 설비만 제대로 작동한다면 화재 전이를 충분히 막아내며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 청라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8시간 넘게 꺼지지 않으면서 피해를 키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데 있었습니다. 지난 5월 군산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하며 추가 피해 없이 45분 만에 진화하기도 했습니다.

스프링클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내연기관차 화재도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여름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주차 중이던 2007년식 아반떼 차량에서 불이 나 70명 넘는 입주민이 새벽에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이때도 아파트 관리직원이 임의로 조작해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불은 약 2시간 만에 꺼졌고 차량 수백 대가 불에 타거나 그슬리는 등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스프링클러가 만병통치약이냐?"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스프링클러의 중요성에 대해서 거듭해서 언급하는 이유는 실험*을 통해서도 화재 진압 효과가 입증됐기 때문입니다.

*지하주차장 내 전기자동차 화재의 소방시설 적응성 분석을 위한 실규모 소화 실험(2024)

실험 결과, 상부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 불이 난 전기차의 열 폭주 현상은 지속되더라도 주변 온도는 80도 이하로 유지될 수 있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스프링클러만 제때 작동하면 불이 난 전기차는 전소되더라도 인접 차량까지 화재가 번지는 건 막을 수 있단 뜻입니다. 또한, 하부에도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서 상부 스프링클러와 함께 작동한다면 주변 온도는 30도 이하로 유지될 수 있고, 열 폭주도 50% 수준까지 낮출 수 있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주차장이 더 안전해지려면?!

결단코 전기차가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전기차는 화재 발생 빈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고, 진화가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전기차 화재는 내연기관 차량 화재보다 더 위험하며 더 큰 피해를 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서는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이용을 금지하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 자체를 부정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마차가 다니던 시절부터 도시를 설계했던 유럽과 달리 우리의 도시는 지상에 주차 공간이 없거나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전기차를 밖으로 몰아낼 경우 화재 위험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지하주차장이 없거나 협소한 아파트는 이중 주차 등 주차난이 심각한 데다 요즘 같은 무더운 여름 열기에 노출될 경우 전기차 화재 위험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대책은 무엇일까요? 근본적으로 자동차 업계와 당국이 전기차 화재 위험 자체를 낮추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에 나서야 합니다. 탄소 제로 시대라는 흐름에 맞춰 전기차 보급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선행돼야 할 과제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전문가들은 우리 현실에 맞게 지하 주차장이라는 공간을 적절하게 활용할 것을 제언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스프링클러 설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전기차 화재는 지하주차장에서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만 갖춰진다면 내연기관 차량이든, 전기차든, 어떤 차량에서 불이 나더라도 우리의 주차장은 변함없이 안전할 수 있습니다.

이향수 / 건국대 소방방재융합학과 교수

이향수 / 건국대 소방방재융합학과 교수
"이게 '지하다.', '전기차다.' 여기에 초점이 많이 맞춰져 있는데요. 더 핵심적인 문제는 스프링클러가 전혀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는 거죠. 사실은 지상 주차 공간이 넓은 곳이 대한민국이 어디 그렇게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히려 사실은 지상보다도 지하가 어떻게 보면 스프링클러나 재난 안전을 위한 인프라 시설이나 환경을 아주 잘 신경 써서 갖춰놓기만 한다면 지상보다도 오히려 지하가 훨씬 더 화재를 진압하고 대처하는데 훨씬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 : 김효진 , 인턴 : 노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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