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혐의로 수감된 한 무기수가, 자신을 치료해 줬던 의사와 교도소, 그리고 다른 재소자를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냈습니다. 그런데 저희 취재 결과, 소송을 변호사 1명이 다 맡고 있었고, 그 변호사와 무기수 사이에는 수상한 돈거래가 있었던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이현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9년째 정기적으로 교도소로 왕진을 다니는 치과의사 김 모 씨는 지난해 초, 자신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내용의 이 소장을 하나 송달받았습니다.
원고는 바로 이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한 무기수였습니다.
김 씨가 과거에 치료해 줬던 이 모 씨였습니다.
[김 모 씨/교도소 진료 치과 의사 : 뜬금없이 나와서 자기 이 빠진 데가 있으니까 거기다가 임플란트를 하나 하고 싶다고 해서 진료를 시행했죠.]
이 씨는 지난 2014년 여고생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불태운 뒤 시멘트로 암매장한 이른바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인물이었습니다.
치료한 지 8개월 정도 지난 뒤, 이 씨가 임플란트 치료가 잘못돼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받고 있다며 100만 원의 손해 배상 소송을 청구했던 것입니다.
소송 대상에는 의사 김 씨뿐만 아니라 법무부 장관까지 포함됐습니다.
[김 모 씨/교도소 진료 치과 의사 : 본뜨는 재료가 고무 인상제라고 해요. 러버(고무) 인상제를 담았더니 그게 뭔지도 모르고 "고무 대야로 본떴다"고…. 황당해가지고….]
이 씨는 소송이 진행되는 1년여 동안 각종 협박도 일삼았습니다.
법원에 제출한 자필 의견서와 준비 서면 등에서, 김 씨를 향해 생명을 위협하는 글이나 사진을 잇따라 첨부하며 금전적인 배상을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달 치과 의사나 교도소 측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이 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씨의 소송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 씨는 함께 수감 중인 다른 재소자를 상대로 폭행과 협박을 당했다며 3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가 하면, 법무부를 상대로 5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이 모든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모두 A 씨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 씨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1월까지 과거 복역했던 포항 교도소와 전주 교도소 등을 상대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20건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이 가운데 최소 10건 이상을 역시 A 변호사가 수임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런 이 씨의 무차별적 소송 전을 의아하게 여겼던 포항교도소는 이 씨의 영치금 계좌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 씨의 계좌로 8차례에 걸쳐 총 600만 원이 입금됐는데, 송금한 사람은 이 씨의 소송을 맡았던 변호사 A 씨였습니다.
포항교도소 측은 검찰에 이 씨와 A 변호사가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소송구조제도를 악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 씨와 A 변호사를 위계공무집행방해와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최용희/변호사 : (소송구조를) 남용하게 되면 진짜 도움을 받아야 되는 취약계층에 있는 분들은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도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제적 자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는 구조 결정을 취소하고 유예된 비용을 다시 나라에서 환수할 수 있는데 이 부분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취재진은 복역 중인 이 씨에게 편지를 보내 입장을 물었지만 변호사에게 왜 돈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호사 A 씨도 수차례 연락하고 사무실에도 찾아갔지만 만남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A 씨는 다만, 무기수인 이 씨가 자신에게 변호사 비용을 돌려달라고 해서 일부 돌려준 것뿐이고, 나머지는 이 씨가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해서 도와준 것이라고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영상취재 : 최대웅, 영상편집 : 오영택, 디자인 : 김민영, VJ : 김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