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료 발표 직후 폼페이오 국무, 에스퍼 국방장관이 각각 강경화 외교, 정경두 국방장관과 통화하면서 실망스럽다는 뜻을 전달했습니다. 부처가 내놓은 공식 논평에서는 수위가 더 올라갔습니다. 국방부는 수정 논평까지 내가면서 '강한 우려와 실망(strong concern and disappointment)'을 표명한다고 했고, 국무부도 "동맹의 안보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문재인 정부의 심각한 오해를 나타낸다"고 적시했습니다.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겁니다.
외교 용어 가운데 상대국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는 말로는 유감(regret)▶우려(concern)▶실망(disappoint)▶규탄(condemn) 등이 있는데, 미국이 사용한 '실망'은 꽤 높은 수위입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은 국제회의, 다자회의에서 인권침해 상황이나 내전 상황을 비난할 때 주로 쓰입니다. 양자 관계에서는 불만이 있다고 해도 '유감' 표명 정도입니다. 더군다나 동맹 사이에서 우려와 실망이라는 표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 우선은 미국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거겠죠. 미국은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수정주의자로 보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촘촘히 견제의 틀을 짜고 있습니다. 미중 간 무역분쟁이 풀릴 듯 풀리지 않는 배경에 이런 안보 전략적 고려도 있다는 게 정설입니다. 이런 중국 견제의 핵심이 바로 한미일 동맹인데, 미국 입장에선 우리가 그 틀 가운데 하나인 지소미아를 종료하겠다고 하니 대놓고 불만을 터뜨리는 겁니다.
에스퍼 장관 앞뒤로 한국을 찾은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마찬가지로 지소미아 연장을 희망했고, 우리 정부로부터 부정적 의견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미국 입장에선 이렇게 백악관과 국무, 국방부 세 갈래로 충분히 이야기를 했는데도 결과가 정반대로 나오니 우려되고 실망스럽다는 겁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청와대 관계자의 "미국도 이해했다"는 발언입니다. 청와대는 종료 결정 발표 직후 백브리핑을 하면서 "미국에 지소미아 종료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역설했고 따라서 미국도 이번 우리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 정부 소식통은 "미국이 이해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청와대의 설명에 불만족스럽다는 뜻을 워싱턴과 서울 양쪽의 외교 채널로 전달했다고 합니다. 청와대는 다음날 관련 질문이 쏟아지자 "미측이 지소미아 연장을 희망해왔던 것은 사실"이라며 "희망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미국이 실망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고 에둘러 진화했습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이해했다는 건 한국이 종료 결정까지 검토하게 된 처지를 이해한다는 거지, 종료 결정 자체를 이해한다는 건 아니"라고 풀이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