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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비리' 은행이 피해자?…납득 어려운 양형 사유

<앵커>

입사시험 성적을 조작해서 청탁받은 사람들은 붙여주고 반대로 여자들은 골라서 떨어트렸던 국민은행 관계자들이 재판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판사가 형을 감해줄 사유가 있다고 했는데 들어보면 황당하실 겁니다. 먼저 리포트 보고 오시죠. 

안상우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2015년, 국민은행 이 모 부행장은 인사 담당 부서에 채용 전형 과정에서 성적 조작을 지시했습니다.

남성을 더 많이 뽑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결과 서류 전형에서 탈락권에 있었던 남성 113명의 성적은 상향 조정된 반면 합격권에 있었던 여성 112명의 성적은 낮춰져 결과가 뒤바뀌었습니다.

이 부행장 등 3명은 또 청탁을 받고 20명의 면접 점수를 조작해 합격시킨 혐의도 드러나 구속 기소됐습니다.

이 3명에 대해 지난달 말 법원이 판결을 선고했는데 모두 실형이 아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이들의 범죄가 비난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피해자인 국민은행과 심사위원들이 처벌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걸 감형 사유로 들었습니다.

기소된 혐의가 '업무 방해'인데 채용 선발이라는 업무를 방해받은 피해자는 국민은행과 심사위원들이고, 그들이 처벌 의사를 밝히지 않은 걸 감안했다는 겁니다.

채용 비리의 피해자는 부당하게 떨어진 응시자들이라는 일반적 인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김의지/변호사 : 법감정상 채용은 굉장히 예민한 문제이고, 실제로 떨어진 사람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피해 은행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을 약하게 하는 건 분명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은행이 업무 방해의 피해자라고 봤던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국민은행 법인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건 유죄라고 보고 벌금 5백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앵커>

안상우 기자와 더 얘길 해보죠.

Q. 앞뒤 안 맞는 법원 판결?

[안상우/기자 : 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우실 텐데요, 이번 사건에서 적용된 혐의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여성을 선발 과정에서 차별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이고 다른 하나는 성적을 조작해 채용 결과를 뒤바꾼 업무방해 혐의입니다. 그런데 국민은행 법인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만 기소됐습니다. 그래서 업무방해 혐의를 보면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국민은행이 피해자가 됩니다. 채용 절차를 방해받았다는 거죠. 채용 비리에 개입한 직원들한테 적용할 수 있는 혐의가 '업무방해'가 유일하기 때문에 은행이 피해자가 되는 법리가 적용되는 겁니다.]

Q. 감형 사유 정당한가?

[안상우/기자 : 재판부가 감형 사유 전에 밝힌 양형 사유를 보면요. 억울하게 떨어진 지원자들을 '사실상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하면서 이들의 피해를 회복할 길이 없어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감형 사유에 피해자인 국민은행이 처벌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걸 포함시킨 거죠. 아무리 법리가 그렇다고 해도 재판을 통해, 채용 비리 범죄가 엄정하게 심판받게 될 거라 기대했던 '가장 큰 피해자들', 즉 지원자들 입장에서 보면 납득하기 쉽지 않을 걸로 봅니다. 앞으로 신한, 하나은행 등 다른 은행에 대해서도 비슷한 재판이 남아 있는데 어떤 판결이 나올지 지켜보겠습니다.]

(영상취재 : 김세경·김승태, 영상편집 : 하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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