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첫 검찰 고위간부 승진·전보를 논의하는 법무부 인사위원회가 26일 열린다. 여기서 '검찰 고위 간부'란 '검사장급' 이상을 말한다. 대한민국 검사 중 2.3%에 불과해 '검찰의 별' 또는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 빠르면 26일 또는 이번 주 내에 새 정부 첫 진용이 결정된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차관급의 대우를 받는 47명의 검사장 그들은 누구인지, 1948년 검찰 창설 이래 대한민국 검찰을 움직여온 역대 검사장 345명 전원을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이 분석했다.
‘검찰의 꽃’인가, ‘검찰의 독’인가
검사장을 보는 두가지 시선이 있다. 검찰 내부에서 실력과 지도력으로 인정 받는 이들이 가는 영광스러운 자리기에 -군에서의 '별'과 같은- '꽃'이라고도 하지만,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과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을 가장 앞자리에서 받아야하는 사람들이기에 '검찰의 독'이라 불리기도 한다.
차관급인 검사장은 검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자리지만, 아무나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법무부 등 서초동과 과천을 오가며 근무해서 이른바 ‘주류 검사’의 길을 걸었다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검찰 개혁의 신호탄은 검사장 인사였다. 지난 정권에서 좌천된 윤석열 검사를 '기수 문화'를 파괴하면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시켰다. 또 기존의 검사장들을 대거 퇴진시키면서, 많게는 16석 이상이 될 수도 있는 전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검사장 인사를 예고하고 있다.
● 검찰의 47개 별…검사동일체가 적용되지 않는 '검사장'
“왜 정치 검찰이라고 하는지 검사장이 돼서야 더욱 뼈저리게 알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 당시 A검사장이 한 말이다. 검찰총장이 청와대와 국정원의 불법적인 사찰 의혹으로 퇴진하게 됐고,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부당한 압력도 속속 드러났다. 젊은 검사들이 공개적으로 비판글을 쓰거나 사표를 쓰는 등 항의를 표현했지만, 자타 공인 ‘검찰의 꽃’이라는 전국 검사장 중 문제를 제기하거나 직을 건 이들은 없었다.
검찰에는 검찰총장을 빼고 47명의 검사장급 자리가 있다. 올해 검사 정원은 법에 따라 2,182명이다. 실제로 근무하는 현원(2017년 7월19일 기준)은 2,022명, 검사장은 이 중 2.3%(47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지방검찰청 등 단위 조직에서 검사들을 지휘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과거 검사장으로 불렀던 자리를 ‘검찰청법 28조 대검찰청 검사급 이상 검사의 보직기준’에 명시했다. 즉, 정확한 표현은 ‘대검 검사급 이상의 검사’이다. 하지만 여전히 검찰 내외부에서 '검사장'이란 호칭을 관행적으로 쓰고 있다. 또 "검사장은 차관급"이라고 흔히들 얘기하는데, 이 역시 법 규정에 근거한 표현은 아니다. ‘공무원 여비규정’을 보면 ‘대검 검사급 이상 검사’에 대해서는 숙박, 항공 등 여비를 차관, 소장, 중장 등 등급과 동일한 수준으로 지급하게 돼 있어 차관급이라고 칭하고 있다. 검사장급에겐 관용차도 지급된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법원에 대응하는 준사법기관인 점, 일반 공무원과 다른 법률이 적용되는 특수직 공무원이라는 점이 반영돼야 한다”고 말한다. 사법부엔 대법관(대법원장 포함)을 제외하고 차관급 이상 법관이 모두 166자리(2017년 7월 기준)가 있는데 검찰은 4분의1 수준에 불과하고,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막기 위해서도 높은 직급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역대 검사장 345명 출신 지역 PK> 호남 > TK > 서울 순
“저 진짜 조직을 위해 개처럼 살았습니다”.
“그러게 잘 좀 태어나던가” <영화 내부자들 中>
‘줄도 빽도 없는’ 검사의 한(恨)과 부장검사의 조롱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게 검찰의 현실이다. 검사장 승진에서 연거푸 탈락한 한 검사는 기자와 만나 “조직에 충성을 다했지만, 이번 정권에서 내가 갈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서초동과 과천을 오가며 자칭 타칭 ‘주류 검사’의 길을 걸었다고 자부했지만, 검사장 승진을 못하자 원인을 출신지에서 찾았다.
검찰 내부에서는 “능력만으로 갈 수 있는 자리는 ‘부장검사’까지고, 다음부턴 관운”이라고 말한다. 차장급 이상 특히 검사장은 능력만으로 갈 수 없고, 관운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운을 결정하는 건 ‘대학, 고교, 고향, 근무연 ’ 등과 같은 학연과 지연, 즉 소위 ‘줄과 빽’도 부정할 수 없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마부작침이 분석했더니, 특정 지역 출신의 검사장들이 많았다. 1948년 검찰 창설부터 최근까지 법무부 등으로부터 확인된 역대 검사장은 모두 345명이다. 1962년 검사장이 된 조태형 검사부터 지난 5월 승진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까지를 모두 헤아린 숫자다.
광역자치단체기준으로 파악해보면, 서울(15.9%), 경남(14.8%), 경북(13.3%) 세 지역만 10% 이상을 차지했다. 제주는 0.95%(3명), 인천 대전 각 2%(7명), 강원 2.6%(9명)으로 다른 지역과 격차를 보였다. 반면, 충남(6.7% 23명), 충북(3.8% 13명)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한 검찰 관계자는 “충청권 출신은 지역색이 옅어 TK정권이든, 호남 정권이든 꾸준히 검사장으로 기용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대구, 광주 등 광역단체를 제외한 지자체 중 유독 많은 검사장을 배출한 지역도 있다. 광역단체를 제외한 전국 250여개 지자체 중 1명 이상의 검사장을 배출한 지역은 절반 정도인 121개 지역이다. 이 중 ‘마산 밀양 남해 의성 영주 전주 익산 청주’ 8개 지역에서 각 5명 씩 검사장이 배출됐다.
● 경기, 경북고 출신 압도적…345명 중 전통 명문 15개고 출신 53%
검찰 내에선 향우회만큼 활성화된 것이 고교 모임으로, 출신지처럼 고교 인맥도 하나의 자산처럼 여겨졌다. 이런 상황에서 동문 선배가 없는 검사들은 "동기는 고교 선배가 검찰국장한테 전화라도 한통 해줬다는데, 나는 끌어주는 선배가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곤 했다.
각종 모임이 촘촘하게 이뤄지는 검찰에선 동문회를 두곤 여러 일화가 있다. 나름대로 검사를 많이 배출한 A고교 출신들이 모임을 가졌다. 검사장 배출을 기념하며 현직 검사장을 좌장으로 십 여명의 검사들이 음식점에 모였는데, 위층이 너무 시끄러워 항의를 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전직 총장을 포함해 전현직 검사장들만 열 명 넘게 참석한 B고교 모임이었다. “모임 막내가 검사장”이라는 걸 알고 A고교 모임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이렇듯 검사장을 유독 많이 배출한 고등학교가 있다. 역대 345명 검사장 중 12.5%인 43명을 배출한 경기고다. 다음으론 대구 명문인 경북고 출신이 31명(9%)을 차지했다. 두 학교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검사장을 배출했는데, 3등인 ‘전주고(13명 3.8%) 부산고(13명 3.8%)’와도 상당한 차이가 났다.
경기고, 경북고와 같은 전통 명문고는 비평준화에서 이른바 '뺑뺑이'로 바뀐 뒤, 검사장 승진도 줄어드는 추세다. 경기고의 경우, 노무현 정권 5년간 11명, 김대중 정부에서 10명 씩 검사장을 무더기로 배출됐지만,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선 각 1명에 그쳤다. 또, 서울 외 지역 명문고의 경우 해당 지역 출신이 많았지만, 경기고 출신 검사장은 같은 경기고 동문이라고 하더라도 서울, PK, TK, 호남 등 출신지는 다양했다. 서울 명문고의 특성상, 전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많았다는 점이 작용했다.
● 역대 검사장 서울대(66%)>>>고려대>>성균관대…'신임 검사 중 서울대 출신 34%'
검찰은 폐쇄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명문대 출신이 임관해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그 중에서도 '이너서클'에 들어야 ‘검사장’이 될 수 있다고 비판을 받는다. 검찰 내부에선 “검찰은 임관만 하면,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법원과 달리 지방대 출신이라도 검찰 조직에서 출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임관 후에도 연수원 성적으로 주요 보직이 결정되는 법원과 달리 검찰은 개방적이라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이런 점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는 “서울대 출신 모임은 없고, 결속력도 제일 낮다”라는 말도 한다. 반면, 고려대 출신 검찰 모임은 매우 활발하고, 고대 출신 검찰 최고위 간부를 중심으로 “충성 맹세주를 마셨다”는 뒷말도 무성하다. ‘서울대 출신 검사장’이 많은 건, 검사 임관 때부터 서울대 출신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임관 검사들의 출신 대학과 비교해보면,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경향성은 현재 전체 검사(2017년 7월 기준)의 출신 대학과 비교해도 알 수 있다. 전체 검사 2,022명 중 서울대 출신은 759명(37.5%), 고려대 374명(18.4%), 연세대 244명(12%), 한양대 121명(5.98%), 성균관대 120명(5.93%)를 차지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비교적 다양한 대학 출신이 임관하더라도, 비서울대 출신 경우 검사 생활 도중 먼저 옷을 벗고 나가는 경우가 많은 점도 감안해야 된다"고 말했다.
● 지방대 출신 검사장 3%…절반 이상 영남 출신
반면 지방대 출신 검사장들은 극소수였다. 기본적으로 지방대 출신 검사의 비율이 적은 탓도 있지만, 검찰 내에서 지방대 출신 검사에게 소위 '출세의 문'이 지나치게 좁은 탓도 부정할 수 없었다.
최초의 지방대 출신 검사장은 1948년 검찰 창설 이래로 32년이 걸렸다. 1980년 전두환 정권 시절 승진한 조선대 출신의 이용식 전 검사장이 최초였다. 전두환 정권 시절 전남대 출신 김양균 검사장(1982년), 부산대 출신 김경회 검사장(1983년)이 연이어 배출됐지만, 이후 21년 간 지방대 출신 검사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역대 검사장 345명 중 지방대 출신은 11명(3%)에 그쳤다. 2006년부터 올해까지 12년 간 임관한 검사 1,495명 중 지방대 출신은 138명으로, 9.2%를 차지했다. 이 수치와 비교해보면, 지방대 출신의 '검사장 입문'이 상대적으로 더 좁다는 점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다 2004년 청주대 출신 권태호 검사장을 시작으로 노무현 정권에서 모두 4명의 지방대 출신 검사장이 나왔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각각 2명씩 있었다. 11명의 지방대 출신 검사장 중 6명은 영남 출신, 3명은 호남 출신 3명, 2명은 충청 출신이다. 정치적 논란이 큰 사건을 소신대로 처리해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지방대 출신 A검사장은 “‘검사가 수사만 잘하면 됐지’라는 말은 1%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지만, 승진과 수사 능력은 별개의 문제였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안혜민·홍명한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 '검찰의 별' 검사장 인사는 어떻게?…345명 분석해봤더니
▶ [마부작침] 정권 따라 요동치는 검찰…역대 정권 '검찰총장·검사장' 전수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