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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텅텅 빈 제조업…"기업 팔 비틀어 돈을 뜯을까요, 일자리를 만들까요"

[취재파일] 텅텅 빈 제조업…"기업 팔 비틀어 돈을 뜯을까요, 일자리를 만들까요"
"트럼프가 싫다 하지만 미국인 입장에선 좋은 것 아닌가요." 지난달 취재한 스마트폰 부품 제조업체 A 대표의 말이다. 이 업체는 삼성과 LG의 1차 하청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이다. 2년 여 전까지만 해도 직원이 100명 가까이 됐지만 지금은 60명이다. 공장 기계도 2/3 정도만 돌아가고 있었다.
 
"비슷한 부품을 만드는 2차 하청업체 가운데 규모가 되는 곳이 5곳 정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중 3곳이 최근 부도가 나서 문을 닫았어요." 지난해 갤럭시노트7 사태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하지만 납품 물량이 갈수록 줄어드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A 대표는 말했다.
 
"지금 대기업들은 스마트폰을 국내에선 극히 일부만 생산하고 외국에서 거의 다해요. 삼성전자는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세웠다가 지금은 베트남이 주력이에요. 협력업체가 해외에 같이 나가기도 하지만 규모나 자금력이 되는 업체들 위주죠. 게다가 이제는 현지 하청업체와 외국 부품 업체, 특히 중국 업체들이 많아요. 대기업들은 국내 납품업체와 외국 업체를 경쟁시켜서 조금이라도 단가 낮은 곳에 일을 줘요. 지금까진 기술 개발로 버텨왔지만, 금방 같은 기술 만들어내는 외국 업체들한테 밀리는 건 시간문제죠."

그러면서 A 대표는 국가 경제를 위해, 적어도 고용을 위해서라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추진하고 있는 리쇼어링(해외로 나갔던 자국 기업이 다시 국내로 회귀하는 현상)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 기업 팔 비틀어 일자리 지키는 트럼프
 
미국 포드자동차는 지난 3일 멕시코에 16억 달러를 들여 공장을 지으려던 계획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대신 포드는 미시간주에 자율주행 전기차를 위해 7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앞서 에어컨 생산기업 캐리어도 멕시코 공장 이전 계획을 백지화했다. 미국 밖으로 공장과 일자리를 옮기면 35%의 고율 관세를 물리겠다는 트럼프의 위협에 백기를 든 것이다. 트럼프는 또 애플도 압박하고 있는데, 아이폰을 생산하고 있는 중국 훙하이 그룹은 미국에 8조 원을 들여 생산 공장을 만드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채찍과 함께 당근도 사용한다. 캐리어는 공장 이전을 포기하는 대가로 10년 간 700만 달러(약 84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감면 받게 됐다.
 
일자리를 위해 자국 기업들의 해외 공장을 끌어오는 리쇼어링은 오바마 대통령도 해온 정책이다. 대신 트럼프는 당근만 쓰는 게 아니라 대놓고, 직설적으로 기업들을 협박하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은 거세다. 무엇보다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다. 글로벌 경제 시대에 기업들은 어느 나라에 어떤 공장을 세울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해외 시장 판매를 위해 현지 공장 설립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기업들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곳, 값싼 지대와 값싼 노동력을 찾아 간다. 제품의 경쟁력을 위해서다. 실제로 애플의 아이폰을 부품까지 미국에서 만들면 소비자들은 최신 아이폰을 하나 살 때마다 최대 90달러(약 10만 원)를 더 내야 한다는 추정까지 나왔다. 또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계획이 아시아의 첨단 전자 부품 공급망과 거대한 노동력을 미국에서는 조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지난 1997년부터 2013년까지 제조업에서 54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8만 2000개의 공장이 없어졌다. 경쟁력이 떨어진 기업들도 있지만 중국과 같은 저임금 국가로 생산 기지를 옮긴 것이 크다. 트럼프는 기업이 수익 내기에만 급급하고, 국내 일자리 창출은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냈고, 미국인들은 이에 열광했다.
 
리쇼어링은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일본, 독일 등 제조업 강국들도 해외에 나가 있는 기업들을 적극 유턴시키고 있다. 실제로 세계 2위의 스포츠용품 메이커인 독일 아디다스가 값싼 인건비를 찾아 아시아로 공장을 이전했다 '스마트 팩토리' 구축으로 독일 국내에서 신발 생산에 들어갔다. 각국 정부는 해외 이전 기업을 불러들이면서 세금과 지원책 등 각종 당근을 제시하고 있다.
 
● 복귀는 커녕…해외로 공장 내쫓는 한국
 
삼성전자는 지난해 1월부터 광주사업장의 냉장고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LG화학은 중국 난징에 배터리 공장을 지었다. 지난해 9월 기아차는 멕시코에 4번째 국외 생산거점 공장을 준공했다. 하지만 그만큼 국내 세수는 줄어든다. 특히 요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를 보면, 국내 제조기업들의 해외 이전 가속화로 2006년부터 10년 간 344억 4000만 달러 규모의 국내 투자가 무산됐다. 이로 인해 신규 일자리 24만 2000여 개도 창출되지 않았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 생산라인을 늘리는 건 여느 글로벌 기업과 마찬가지로 비용 절감, 현지화를 통한 생산과 마케팅 강화 등이 목표다. 여기에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란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는 우리나라 특유의 낡은 규제들과 낮은 노동생산성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공장 하나 지으려고 해도 수백 개에 달하는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인건비도 상대적으로 높은데다, 노동 시장의 경직성과 노사분규 등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현대차의 1인당 인건비는 9,600만원인데 도요타와 폭스바겐은 각각 7,951만원, 7,841만원이다. 하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더 낮다. 차 한 대를 생산하기 위해 투입되는 총 시간은 현대차가 26.8시간인데 반해 도요타 24.1시간, 폭스바겐 23.4시간이다. 또 정치권 일부에서는 리쇼어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법인세 인상과 기업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기업의 해외 생산 시설의 국내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3년 '유턴기업 지원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법의 적용을 받아 국내로 돌아온 기업은 중소기업 80여 곳에 불과하다. 대기업에선 LG전자가 멕시코 몬테레이 공장의 세탁기 생산 시설 일부를 국내로 옮겨온 것이 유일하다. 지원법은 유턴기업에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주고 있지만, 수도권으로 유턴하는 기업은 다른 법과의 충돌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해왔다. 반면, 기아차 멕시코 공장의 경우 멕시코 정부는 기아차 유치를 위해 서울 여의도의 1.7배에 달하는 500만㎡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10년 간 법인세를 면제하는 등의 세제 혜택 조건을 제시했다. 우리나라 정부가 더욱 과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함께 공장을 내쫓는 노동 환경 또한 변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앞서 언급한 스마트폰 부품 업체의 A 대표는 기업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왜 중국 업체들이 IT, 특히 스마트폰에서 빠르게 삼성과 애플을 잡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스마트폰 기술을 100이라고 하면 95는 협력 업체들의 기술입니다. 그런데 중국 현장에 공장을 세우고, 협력 업체들도 다 데리고 나가서 현지인을 고용하면 그 사람들이 기술 배우는 거야 당연한 거죠. 이제 중국에서도 임금 상승 때문에 베트남으로 옮겨 갔잖아요. 기술 전수해 준 것 아닌가요? 글로벌 경제 시대에 비용과 효과를 생각하면 불가피한 거라 할 수도 있지만 현지화도 전략적으로 했다면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저는 전략 없는 해외 공장 이전이 부메랑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뼈 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정부도 기업 팔 비틀어 돈 뜯는 것보다는 국내에 일자리를 더 만들도록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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