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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상 최악 AI, '방역 허술'이 만든 인재(人災)

[취재파일] 사상 최악 AI, '방역 허술'이 만든 인재(人災)
● 사상 최악 구제역 교훈 벌써 잊었나?

농식품부 출입을 하던 2010~2011년 겨울, 구제역이 전국을 초토화시켰습니다. 11월29일 경북 안동에서 최초 발생한 구제역은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해 소 15만여 마리, 돼지 331만여 마리를 땅에 묻고서야 멈췄습니다. 전국이 소, 돼지 무덤으로 변하기 직전 농림부는 긴급 백신 정책을 발표합니다. 그렇게도 ‘구제역 청정 국가 유지’를 고수하던 농식품부가 구제역 바이러스의 기세에 굴복한 겁니다. 결국 최초 발생 한 달이 안 된 12월22일 백신으로 긴급 돌아섰습니다. 그 당시 살처분 보상금을 포함한 피해금액만 2조7383억원. 하지만 가축 매몰에 따른 환경오염과 직간접 경제적 손실(수출감소, 수입증가, 백신수입, 농가 생계안정비 등)을 감안하면 피해규모가 10조원 이상에 달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방역 공무원들이 지쳐 쓰러졌고 과로로 숨지기도 했습니다. 구제역은 분명 인재였습니다. 초기 대응 실패와 농가, 지자체의 허술한 방역 의식, 오락가락하는 방역 정책이 구제역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적들이었던 셈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도 방역 당국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점입니다.

● AI 방역 현장 가보니…농장주 “억장 무너진다”

AI가 경북을 뺀 전국 농가로 확산하자 정부는 지난주 위기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했습니다. AI가 처음 발생한 충북 음성을 방문해 방역 현장을 직접 취재했습니다. 12월 초 AI 양성 판정을 받은 산란계 농가는 10여일이 지나도록 살처분 작업이 진행중이었습니다. 빠른 살처분이 중요함에도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고, 액비탱크(살처분 가축을 모아놓은 대형 원형 탱크)를 설치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됐기 때문입니다. 농장주는 “이렇게 철저히 방역을 했는데 AI가 올 줄 몰랐다”며 억장이 무너지고 허탈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산란닭 20만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닭까지 모조리 잡아 살처분했다며 방역당국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제보했습니다. 농장 전용 사료차가 ‘거점소독소’를 거쳐서 농장에 들어온 이튿날 AI가 왔다는 겁니다. 농장주는 ‘거점소독소’를 가는 길에 AI발생 농장이 인접해 있어 그쪽으로 가지 않겠다고 지자체 방역 담당자에 호소했지만 ‘이행하라’는 답변이 돌아와 그곳에 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 AI 관련 차량 모이는 ‘거점소독소’…방역 허술

‘거점소독소’는 농장에 드나드는 사료, 톱밥, 왕겨, 포장재 차량을 지자체 방역 공무원들이 소독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소독필증을 끊어야 농장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차량이 소독 장치로 들어오면 소독액이 자동 살포되고, 차량 탑승자는 공중전화 부스같은 곳에 들어가 자외선과 공기 소독을 받아야합니다. 운전석 발판도 소독액을 충분히 뿌려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하루에 차량 60~70대가 소독을 위해 거점소독소로 몰려듭니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니 소독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차량이 자동 소독 장치보다 덩치가 큰 경우가 많아 윗부분까지 소독액이 뿌려지지 않았고, 방역 공무원조차 제대로 소독이 되는지 알 수 없다며 회의적인 시각이었습니다. 해당 공무원은 “바이러스가 공중으로 전파되는데 솔직히 막을 수 있겠냐?”며 털어놨습니다. 2011년 12월 방역 매뉴얼이 주요 도로를 통제하고 모든 차량을 소독하는 방식에서 거점소독으로 바뀌면서 부담은 좀 줄어들었지만, 실제 방역 효율이 높아졌는지 담당 공무원마저 의문을 제기한 겁니다. 3번의 ‘이동중지 명령’을 내렸는데도 AI가 계속 확산됐다는 점은 거점소독소가 오히려 AI관련 차량을 모이게 하고 다른 차량들과 뒤엉켜 바이러스 확산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는지도 점검해봐야 할 대목입니다.

● ‘달걀 대란’ 조짐…“30개 1판에 1만 원 갈 것”
달걀 값 폭득, 1인 1판
AI가 충북 음성과 전남 해남에서 최초 발생한지 한 달여 만에 닭, 오리 등 가금류 1천8백만 마리가 살처분됐습니다. 2014년 195일간 1천4백만 마리 살처분과 비교하면 속도도 빠르고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정부가 ‘심각’으로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로 격상했지만 AI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달걀을 생산하는 산란닭에 피해가 집중되다 보니 벌써부터 ‘달걀 대란’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30개들이 달걀 1판에 7천원에 육박하고, 곧 1만원까지 올라갈 것으로 유통 상인들은 걱정하고 있습니다. 달걀값이 올라가면 빵, 과자 등 달걀을 원료로 사용하는 가공식품 가격도 덩달아 뛸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인 달걀 가격이 급등하면 서민들이 고통 받기 마련입니다. 달걀 30개면 4인 가족이 넉넉히 일주일은 먹을 수 있습니다.

● ‘긴급 백신’ 도입 서둘러야…‘방역 매뉴얼’ 재점검 필요

서민식품이자 국민식품인 달걀의 수급 안정을 위해서라도 AI의 더 이상 확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정부가 ‘AI 청정 지역 유지’라는 명분에 매달릴게 아니라 긴급 백신을 도입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 백신을 도입해도 당장 놓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백신 개발과 임상시험에 1년 넘게 소요됩니다. AI 바이러스가 국내에 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라 수출에 영향을 주고 청정국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처분 정책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구제역 사태에서 너무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매년 한반도를 찾아오는 귀한 손님 철새를 탓할 것이 아니라 철새의 이동경로를 파악해 그 주변의 농장들은 일정기간 휴업에 들어가는 대신 보상해주는 방식도 고려해볼만 합니다. 

특히 가축의 무분별 살처분과 이로 인한 환경오염, 인력 및 혈세 낭비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지 주무부처인 농식품부와 지자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농가 또한 방역 의식을 높이고, 계속되는 가축 감염병을 효율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현재의 농림축산검역본부를 ‘방역청’으로 승격하고 방역 전문 인력도 대폭 확충해야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리 있는 제안입니다. 2011년 말 개정한 거점소독 중심의 방역 매뉴얼을 다시 재점검해야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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