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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통령제 옹호 토론을 어떻게 이겨요?"

[취재파일] "대통령제 옹호 토론을 어떻게 이겨요?"
● 이 시점 억울한 것들…'창조경제' 싫어도 '창업'은 살려야

지인이 들려준 얘깁니다. 어느 날 집에 가보니 아들이 고민에 빠져 있더라는 겁니다. 중학생인 아들이 자유학기제로 선택하는 과목 중에 토론 수업이 있는데, 이번 주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무엇이 더 장점이 많은가?' 였다나요. 양쪽 입장으로 팀을 정해 서로 자료 조사, 연습을 해서 실제 디베이트를 해보는 수업인데, 아들은 대통령제 쪽 팀에 속한 게 한숨 섞인 고민의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지인은 "왜? 대통령제의 장점이 얼마나 많은데, 자 같이 한 번 생각해보자"라고 말했는데, 아들은 아무리 리서치를 해봐도 의원내각제 팀을 이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답하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리 대통령제의 장점을 얘기해도 상대팀은 분명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 현실이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라고 반박할 거고, 과연 뭐라고 대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더라는 겁니다. 지인은 "지금 사태는 대통령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게 잘못 작동했을 때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그것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고)"이라고 설명하면서 강력한 리더십에서 오는 대통령제의 장점이 실제로 우리나라 경제 성장기에 많은 효익도 가져왔다 설명을 했다고 합니다. 한참 설명을 하는데도 승부욕이 강한 사춘기 아들은 "이해는 하는데, 그래도 토론하다 보면 질 거 같다"라고 풀이 죽어 있었다고요.

주말에 집에서 보는 신문에는 매거진 형태의 기획물이 동봉돼 옵니다. 지난주 표지에 큼직한 제목이 눈에 띕니다. 일본의 '창조 미술', 순간 흠칫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창조'라는 말이 그 단어 의미 그대로 보이지 않고, '창조경제' 등이 잠시나마 머리를 휙 지나가는 느낌이랄까요. 저뿐만 아니라 '창조경제' '문화융성' 등 어찌 보면 일반적인 단어의 조합인 말들이 그 자체로 들리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명칭에 'K'만 앞에 붙어도 갸우뚱해 하기도 합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단어들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을 정도로 국민들의 실망감은 극에 달해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던 '창조경제'. 부처 이름을 미래창조과학부로 바꿀 정도로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에 대한 애착은 강했습니다. 애착은 그렇게 강했는데, 3대 미스터리로 '박근혜의 창조경제' '안철수의 새 정치' '김정은의 마음'이란 우스갯소리가 돌아다닐 정도로 '창조경제'의 실체는 구체적으로 와닿진 않았습니다. 정확히 창조경제가 뭔지 아주 뚜렷하게 설명한 적은 없는데, 국민과 언론은 '창조경제'의 의미를 단어가 주는 뉘앙스로 이해하고, 정부가 '창조경제'라는 이름 아래 추진하는 여러 사업들로 미뤄 짐작했습니다. 과거 산업 패러다임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접근하는(요즘 거론되는 4차 산업혁명과 비슷) 시도, 그리고 창조경제센터를 통해 창업이나 벤처 생태계에 대한 육성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2016 창조경제혁신센터 페스티벌' 개막식 축사 (사진=연합)
대표적 간판 정책인 창조경제혁신센터는 2014년 9월 대구를 시작으로 전국에 18곳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최순실 한파로 창조란 단어만 들어가도 집중 포화 대상이 되면서 벌써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서울, 경기, 전북 등의 내년 예산이 전액 또는 대폭 삭감됐습니다. 청년층 창업 촉진, 벤처산업 인프라 확충, 일자리 창출이란 목적을 갖고 출범했지만 순수성을 의심 받고 예산도 줄어들면서 위기에 직면한 겁니다.

현재 상태가 궁금해 서울 창조경제센터를 취재하러 갔습니다. 창업 초기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에게 공간을 제공해주고 각종 노하우를 공유해 일정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 장소인데, 많은 청년 창업자들이 활발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송용준 서울창조경제센터 팀장은 "이번 사태로 많은 청년 창업자들이 지원이 끊길까 걱정이 많다"며 "창업을 육성한다는 긍정적인 취지로 많은 성과가 나고 있는데, 무조건 정치적인 접근을 하는 건 문제, 길게 봐달라"고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창조경제센터 외에도 미래창조과학부의 창업 관련 예산이 대폭 깎이면서 민간 창업보육기관에서도 창업 열기가 가라앉고 창업 생태계 자체가 위축되지 않을까 업계에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문제점은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이 창조적이지 못하게 진행됐다는 점입니다. 자유분방한 벤처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전국에 분배하듯, 기업에게 '도시 하나씩 맡아(일부 기업은 두 개씩)!' 라며 떠맡기듯 설치한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설립 방법은 70년대 느낌이 물씬 풍겼습니다. 또 이후 운영에 있어서도 예산 중복 투입과 투입 대비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려 하다 보니 벤처 외 목적과 다소 다른 창업자들도 지원하는 등 적절성 논란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고치더라도 청년 창업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전통 산업의 성장이 정체되고 서비스산업 혁신도 지지부진한 가운데 벤처와 창업은 거의 유일한 새 성장동력입니다. 청년들이 대기업이나 공무원에 목매는 나라로 계속 머물러서는 새로운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중국의 심천 등 이미 다른 나라들도 '창업'이 가져올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청년층 스타트업의 둥지 역할을 하는 것은 주목할 변화고, 실제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잘 봐야 합니다.

도대체 '대통령제'는 무슨 잘못이고, '창업'은 무슨 누명을 쓴 걸까요. 제도 자체의 잘못이 아니고 공사를 구분하지 못해 잘못 운영한 소수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란 점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창조'라는 말에서 오는 부정적 기운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다면 이름을 바꿔서 '창업' 지원을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이 밉다고 '녹색성장'의 흔적을 싹 지우면서 그 순기능을 이어가지 못한 우를 다시 범하지 않도록 이번 사태 후 '진짜 없애야 할 것'과 '아닌 것'의 구분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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