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이 법 앞의 평등을 훼손하고 특권층의 보호구로 전락할 땐 특별사면도 범죄일 뿐이다”
대기업 회장이 유죄로 확정된지 열 달도 지나지 않아 특별사면을 받자, 수사 검사가 쏟아낸 말이다. 특별사면을 두고 법조인은 분노를 표출했지만, 일반 시민들은 분노를 넘어 법치주의에 대한 냉소를 드러내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특별사면① '평균 2년'…"반성할 시간도 주지 않는 특사" >, <특별사면②효과 'zero'…재범만 조장>, < 특별사면③청와대 들러리…사면심사위 >기사에서 연속 보도했듯 특별사면의 부작용을 막아야 하고, 시급히 개선이 필요한 이유이다. SBS데이터저널리즘팀<마부작침>은 대통령 특별사면의 남용을 막는 방법과 개선방안을 알아봤다.
● 고도로 집중된 권력 '사면권'…"남용은 본능적 유혹..견제장치 필수"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사면권은 부정할 수 없고 필요성도 존재한다는 점에 대해선 정치권이든 법조계든 모두 이견은 없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과 원칙에 따라 정의롭게 판결하더라도 구체적 사정에 의해 부정의하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헌법에 사면권이 명시돼 있다”고 사면의 존재가치를 설명했다.
사면 역시 사회정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데, 문제는 정부수립 이후 단행된 95차례 특별사면에서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다는데 있다. 한상희 교수는 “사면도 평등의 원칙, 권력분립의 원칙 등 헌법상 원칙을 준수하고 사법권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역대 사면은 그 반대였다”고 지적했다. 즉, 헌법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특사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권력의 필연적인 본능을 제어할 장치가 있어야 한다. 특별사면의 본질적 속성은 ‘대통령에게 고도로 집중된 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본능적으로 ‘남용과 오용’의 유혹에 빠질 수 있어 견제장치는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 비판여론에 사면 번복 美 대통령…"‘뉘우침 부족’ 사면 거부 獨 대통령
해외 국가에서도 헌법을 통해 국가수반에게 사면권을 부여하고 있다. 다만, 권력의 본능인 '남용'을 견제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권력이 생기면 견제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세계 최초로 사면권을 헌법에 규정해 특별사면의 모델로 언급되기도 했다. 이런 미국에서조차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수 차례 문제된 바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는 임기 종료 11시간 전인 2001년 1월20일, 범죄자 140명을 사면했는데 이 중엔 마약 소지로 처벌된 대통령의 이복형제 로저 클린턴, 사기죄로 기소된 다국적 기업(GERO VITA) 창업주 알몬 브루스월 등 기업인, 연방하원 의원 댄 로스텐코스키 등 정치인 등 권력층이 다수 포함돼 비판을 받았다. 최대한 사면권을 자제했다고 평가받는 조지 부시 대통령도 부통령 딕 체니의 전 비서실장 스쿠터 리비를 사면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만 사면 논란을 빚은 대부분이 형기를 마친 뒤 5년이 지난 사람들로 '판결문 잉크도 마르기 전 사면'을 받는 우리나라와 질적으로 달랐다. 특히 뉴욕 부동산 개발업자 아이젝 로버트의 경우 부시 대통령이 사면을 했지만, 반대 여론과 비판이 커지면서 사면 하루 만에 철회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은 특별사면을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인정하면서도 견제와 통제를 가능케 했다. 특별사면이 규정과 절차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이고, 이렇게 형성된 문화적 배경으로 대통령의 남용의 여지도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대통령 특별사면은 법무부 산하 사면검사국에서 실무를 담당한다. 대통령에 대한 강제력은 없지만 사면권 행사의 구체적인 절차를 미국연방규칙(Code of Federal Regulation, CFR)으로 정하고 있다. 통상 미국은 우리와 달리 사면을 원하는 사람이 청원을 하도록 돼 있다. 사면 신청자는 규칙(CFR)에 따라 구금이 종료된 날 또는 유죄선고를 받은 날로부터 최소 5년이 경과한 자로 제한된다. 집행유예나 가석방 중인 범죄자는 애당초 사면을 신청할 수 없다. 또 검사국은 사면대상자에 대해 연방수사국(FBI) 등 정부기관에게 조사를 지시하고, 피해자와 사건 담당 검사와 판사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법무부장관은 조사된 내용을 바탕으로 '대통령이 사면을 허용할지 거부할지에 대한 의견'을 명시해 문서로 대통령에게 추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군주의 은사권(恩赦權) 같은 제왕적 권한이 아닌 '견제와 통제'가 가능한 사면 절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 사면심사위원 다양성 확보…법률로 사면 제한 필요성
이처럼 해외 국가에선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을 존중하면서도, 한국과 달리 엄격한 절차와 견제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이는 사면권을 가진 대통령과 사회구성원 모두 특별사면을 헌법가치를 존중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도구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법조계는 다양한 특별사면 개선책을 제시하고 있다. 일각에선 헌법재판소가 사후통제 형태로 사면권 견제를 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헌재는 지난 1998년 9월 시민이 "전두환 씨와 노태우 씨에 대한 사면은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제기한 헌법소원을 각하한 바 있다. "두 사람에 대한 특별사면으로 청구인(시민)의 법적 이익 또는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볼 수 없어 심판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송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 내렸다. 스스로 사면권 견제 역할을 부정한 것으로, 헌재를 통한 사후적 통제 역할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또 사면심사위원들이 사면 발표 사나흘 전 모여, 3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정치인 경제인 수백 명과 교통사범 수천 명을 한꺼번에 검토하는 요식적 심사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위원회에 충분한 심사 시간을 보장하고, 수사기관에 사면 대상자에 대한 조사를 지시할 수 있는 실질적 심사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법원, 검찰, 피해자 등 사건 관계자로부터 의견 청취를 의무화하는 등 제대로된 심사가 가능하도록 사면법을 개정하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대통령 특별사면은 헌법에 명시된 권한인 만큼 존중돼야 하지만, 사면권도 엄연히 법치주의 질서 내에서 인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형벌제도의 한계로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를 구제해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게 대통령 특별사면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불행히도 특별사면은 역사적으로 법의 형평성을 깨뜨려 법치주의를 훼손했고, 사회적 갈등만 양산했다. 퇴임한 대법관은 법치주의에 대해 이렇게 정의 내린 바 있다. "법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법치주의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지켜본 시민들은 법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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