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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살아만 돌아오라 빌었는데" 애타던 생모 '절망'




계모의 학대 끝에 숨진 신원영군(7)의 친모 A(39)씨는 "원영이가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빌었는데, 제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A씨는 11일 인터뷰에서도 "지난 4일 경찰관이 찾아와 원영이가 입학하지 않아 수사 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며 "제발 살아만 돌아와주기만 기도한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A씨가 원영이와 떨어져 살게 된 건 3년여 전 남편 신모(38)씨와의 이혼소송에서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협의 이혼하기로 하고 살던 아파트와 친권ㆍ양육권을 엄마인 A씨가 맡기로 했으나 남편이 정식 이혼소송을 내고 아파트를 줄 수 없다고 나오자 A씨는 원영이와 누나(10)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A씨는 "마땅한 직업이 없이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건 무리였기에 고민 끝에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하기로 했다"며 "원영이 아빠는 그래도 수입이 탄탄하고 아파트도 있어 나보다는 아이들을 잘 키우리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혼 후 친정 식구들과 함께 살고 있는 A씨는 그러나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그 결정이 너무나 후회된다"고 가슴을 쳤습니다.

이혼소송이 끝난 2014년 4월, A씨에게 남은 것은 2주에 한번씩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권이 전부였습니다. A씨는 신씨와 계모 김모(38)씨로부터 당시 평택 모 지역아동센터장이던 박향순(67·여)씨가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기적으로 찾아가 만났습니다.

A씨는 "아이들을 키우겠다던 아빠는 '아이들을 돌볼 사정이 안 된다'는 말만 남기고 갔으며 자신은 "계모보다는 한동안이라도 아이들이 '할머니'라고 부르던 센터장님 집에 있는게 낫겠다 싶었다."고 당시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A씨는 2주에 단 한번, 토요일 오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주어진 시간 동안 아이들과 꼭 붙어 지냈습니다. 원영이와 누나가 실컷 뛰어놀 수 있는 키즈카페로 가 낮시간을 보냈고, 친정으로 데려와 좋아하는 피자를 원없이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주에 한 번 돌아오던 원영이 남매와의 만남도 전 남편 신씨가 아예 전화를 받지 않으면서 그해 8월부터는 불가능해졌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A씨는 아동센터를 수소문해 찾아가 아이들을 만났다가 신씨로부터 갖은 욕설에 시달렸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는 "'허락없이 아이들을 만나면 용서하지 않겠다. 아이들을 시설에 보내버리겠다.'는 신씨의 말과 함께 폭언과 욕설이 쏟아졌고 아이들까지 혼을 내는 바람에 주눅이 들어버렸다"고 울먹였습니다. 이어 "당시 아이들은 내앞에서도 계모를 '엄마'라고 불러 새엄마와 생활에 적응한 줄 알았다"며 "지난해 들어서는 아이들이 평택시내 할머니댁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들어 더 이상 간섭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때부터 A씨는 자신의 권리인 면접교섭권을 행사하지 못해 사실상 1년 넘도록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고, 그 사이 원영이는 실종됐습니다.

A씨는 "잘 살고 있는 아이들을 괜히 간섭하는 것 아닌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한 내 잘못"이라며 "처음부터 친권·양육권을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무 후회된다"고 토로했습니다.

A씨는 원영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기 전 11일 "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며 "아이들에게 줘서는 안 될 상처를 준 만큼 앞으로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도록 세 식구가 다시 모여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또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며 친정 식구들과 원영이 전단 4천장을 직접 만들어 평택 지역 곳곳에 밤낮으로 배포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원영이가 이미 지난달 1일 계모의 학대끝에 숨져 암매장됐다는 비보를 12일 새벽 접하고 망연자실할 뿐이었습니다. A씨는 지난 10일 수원지법 평택지원에 친권자 및 양육자 변경신청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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