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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훈민정음 해례본의 몸값?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교과서에서 한 번쯤 읽었을 이 문구,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 예의편 첫머리에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이 국보급 문화재인 해례본을 둘러싸고 말이 많습니다.

1,000억을 주면 훈민정음 해례본을 주겠다는 남자, 배 모 씨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사건의 발단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한 권의 훈민정음 해례본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었습니다.

간송미술관에 있는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입니다.

그런데 2008년, 경북 상주의 한 집에서 또 다른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됐습니다.

이른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입니다.

학계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기존의 훈민정음 간송본에 없는 내용인 소리의 표기방법, 사용방법 등의 창제원리가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훈민정음 상주본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조 모 씨입니다.

조 씨는  배 씨가 자신의 고미술상에서 훈민정음 상주본을 훔쳐갔다고 주장했습니다.

형사재판까지 갔지만 배 씨는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훈민정음 상주본의 소유권이 배 씨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범죄인 절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인정받았지만 배 씨가 훔친 것이 맞느냐 아니냐를 가리는 형사 재판이 아니라, 상주본의 소유권자가 누구냐를 가리는 민사재판에서는 조 씨가 이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5월, 조 씨는 훈민정음 상주본의 소유권을 문화재청에 기증했습니다.

여기서부터 국가와 배 씨 간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배 씨가 훈민정음 상주본을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곳에 숨겨버린 겁니다.

문화재청이 배 씨의 집을 수차례 압수수색 했지만, 상주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 3월, 배 씨의 집에 큰불이 나 골동품과 고서가 거의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배 씨의 집에 숨겨진 것으로 추측됐던 훈민정음 상주본 또한 상태가 어떤지 불분명한 상황.

그런데 지난 19일, 갑자기 배 씨가 "1,000억 원을 정부가 보상하면 훈민정음 상주본을 내놓겠다"고 말한 겁니다.

상주본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가 1조 원 정도 되니, 그 중 1할(10%)에 해당하는 1,000억을 달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배 씨는 그 정도의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해례본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문화재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미 법적으로 소유권을 기증받은 해례본을 돈을 주고 다시 사들여야 하는 것도 어불성설인데, 오랜 시간 악조건에 방치되다가  화재 때문에 상주본 일부가 훼손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지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소유권을 인정받은 정부가 배 씨를 고발해 처벌할 수는 있지만, 문화재를 숨긴 죄로 3년 이상 징역을 받더라도 배 씨가 어디 있는지 밝히지 않고  징역 형만 살고 나오면 더는 강제할 수단이 없는 겁니다.

세종대왕은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 모두가 쓸 수 있도록 스물여덟 글자의 훈민정음을 펴냈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 애민정신의 정수가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누군가가 독차지한 뒤 거액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지만 세종대왕님 보기에 부끄러운 상황인 것은 분명합니다.

기획/구성: 임찬종, 김민영 그래픽: 이윤주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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