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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프가니스탄 최초 여성조종사 닐루파 라흐마니의 슬픈 사연은?

[취재파일] 아프가니스탄 최초 여성조종사 닐루파 라흐마니의 슬픈 사연은?
중동여성 특유의 짙고 검은 눈썹과 커다란 눈이 아름다운 닐루파 라흐마니.
 
올해 23살인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공군 조종사입니다. 2년 전 그토록 염원했던 조종사 꿈을 이뤘을 때 라흐마니는 세상을 전부 얻은 듯 기뻤습니다. 각고의 노력으로 마침내 조종사가 된 자신이 스스로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펼쳐질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슴은 벅찼습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란 타이틀을 얻은 직후 시작된 나날은 장미빛이 아닌 악몽이었습니다. 조종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극단적인 이슬람 남성우월주의자들의 무시무시한 협박은 처음에는 전화나 편지의 형태였지만 곧 테러의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이들은 수시로 집을 공격했고, 그녀의 남동생은 총격과 차량 뺑소니를 당했습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금기시하는 풍토 탓에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잘못 키웠다며 직장에서 극심한 따돌림을 받아 결국 직장을 나와야 했고, 그녀의 언니는 동생 때문에 남편에게 이혼까지 당했습니다.
 
닐루파를 괴롭히는 이들의 논리는 "이슬람교에선 여성에게 미국 등 서방과 협력하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라흐마니가 이를 어겼다"는 겁니다. 그저 자신의 꿈을 향해 정진했을뿐인 닐루파는 극단적인 남성 우월주의자들의 테러로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의 안위와 행복도 앗아가는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그녀가 가장 최근에 한 언론에 털어놓은 심경을 이렇습니다.
 
"저는 정말 진심으로 군대에 있고 싶었습니다. 진심으로 멋진 공군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전 계속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절규에 가까운 마음을 읽는 순간, 최근 서울의 한 공립학교에서 일어난 끔찍한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들이 떠올랐습니다. 아프간 최초 여성조종사의 비극적 상황을 보고, 한국의 성추행 피해 여교사가 떠오른다는 것이 난데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닐루파의 상황은 여성인권이 열악한, 한국에서 아득히 먼 정말 남의 나라 얘기니까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닐루파가 감내하고 있는 정신적 고통이 한국의 성추행 여교사들의 그것과 어떤 면에서는 매우 동질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건 바로 닐루파의 심경에 장소만 바꾸면 한국 성추행 피해 여교사들의 토로한 심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말 진심으로 '학교'에 있고 싶었습니다. 진심으로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전 계속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닐루파가 겪은 상황과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교사들의 상황은 표면적으로는 아주 상이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상당히 유사합니다. 닐루파나 여교사들이나, 인간을 그 자체로 존엄하게 보지 않는 이들의 폭력적인 행위에 고통받은 희생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닐루파에게 테러행위를 하는 이들이, 여교사들에게 성폭력을 일삼은 이들이, 피해자가 자신만큼이나 소중한, 어떤 경우에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되는 인격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기만 했어도 비극적인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여성혐오가 극에 달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생각이 '정상적 사고'로 받아들여지는 아프간과, 학교 설립을 주도한 남 교사들이 휘두르는 '제왕적 권력'이 지배하는 성폭력 학교에서, 닐루파와 여교사들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하는 것은 물론 신체적으로 생생하게 다가오는 위협에 얼마나 무섭고 참혹한 심정이었을까요?
 
얼핏 매우 달라 보이는 두 케이스가 결코 무관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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