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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쥐는 왜 메르스 사태의 원흉이 됐을까요?

[취재파일] 박쥐는 왜 메르스 사태의 원흉이 됐을까요?
이번 메르스 사태로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동물은 단연 ‘낙타’입니다. 낙타가 사람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를 옮긴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낙타 옆에서 마음 졸이며 머리만 긁적이는 동물이 또 있습니다. 바로 ‘박쥐’입니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원조 숙주’가 박쥐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흡혈박쥐’, ‘드라큘라’ 등 박쥐에 대한 나쁜 이미지까지 더해지며, 박쥐는 시쳇말로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습니다.
 
하지만, 기자이기 전에 수의사로서 이번 메르스 사태를 바라보면, 박쥐는 ‘가해자’가 아닌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됩니다. 박쥐는 거친 환경변화 속에 적응하며 수천만 년을 살아왔습니다. 그 시간 동안 인류는 사람을 포함한 다른 동물과 공존해왔습니다. 그랬던 박쥐가 왜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원흉이 됐을까요? 박쥐의 생태에 대해 알아보고, 메르스 사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날아다니는 유일한 ‘포유류’
박쥐를 ‘조류’로 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박쥐는 우리와 같은 ‘포유류’입니다. 포유류 가운데 유일하게 날아다닐 수 있는 동물입니다. 조류가 아니기에 ‘날개’도 없습니다. 날개로 알고 있는 부위는 해부학적으로 앞발(손)에 해당합니다. 당연히 손가락도 있습니다. 그것도 4개나 있습니다. 손가락은 얇고 팽팽한 피부 막으로 연결돼 있어 박쥐는 그 막을 이용해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박쥐가 이 손을 ‘날개’로만 쓰는 건 아닙니다. 엄지손가락 끝에 달린 작은 손톱은 이동하거나 먹이를 다룰 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손가락’이 없는 조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고난도 행위’입니다.
 
● 거꾸로 매달려 에너지 소비를 줄여
박쥐는 거꾸로 매달려 생활합니다. 날기 위해 다리 무게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다리뼈는 앙상해졌고, 결국 제대로 걸을 수도 없게 됐습니다. 대신, 거꾸로 매달려 사는 독특한 삶의 방식을 터득했습니다. 갈고리 모양의 발톱을 이용해 천장에 매달리면, 근육 수축에 에너지를 쓰지 않고도 편하게 매달려 있을 수 있습니다. 박쥐는 이렇게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줄여, 체구가 비슷한 쥐(2~4년)나 다람쥐(3~6년)보다 20년 이상 더 오래 살 수 있습니다.
 
● 지구 상에 ‘흡혈박쥐’는 3종뿐
박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박쥐’입니다. 이 흡혈 박쥐는 날카로운 앞니로 동물의 피부를 뚫어 피를 핥아 먹습니다. ‘독특한 앞니’ 덕(?)에 드라큘라의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흡혈박쥐는 지구 위에 존재하는 1,000여 종의 박쥐 가운데 고작 3종에 불과합니다. 이 가운에서도 1종만 포유류의 피를 먹고, 나머지 2종은 조류의 피를 노립니다. 그리고 다행히(?) 흡혈박쥐의 서식지는 남미 열대 지방에 한정돼 있으며 그 수도 많지 않습니다.
 
호주 하늘 박쥐 떼 켑쳐_500
● 박쥐는 유해곤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동물’
반면, 박쥐 대부분은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 박쥐’입니다. 식충 박쥐 한 마리는 하룻밤에 자신 몸무게의 1/3 에 해당하는 해충을 먹어치울 수 있습니다. 몇 시간 만에 수백 마리의 모기와 나방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여름철 극성을 부리는 모기떼도 박쥐 몇 마리만 있으면 싹 없앨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상당수의 박쥐는 작물을 해치고 질병을 퍼뜨리는 벌레를 없애 주는 우리에게 이로운 동물입니다.
 
● 5천만 년이란 긴 세월을 견뎌온 박쥐
박쥐의 가장 큰 특징은 종이 다양하다는 겁니다. 무려, 1,000종이 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24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쥐가 다양한 종으로 분화한 건 5천만 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신생대 오에세(5,480만~3,370만 년 전) 지구 평균 기온은 짧은 기간 7도가량 상승했는데, 이때 박쥐를 포함한 포유동물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곤충이 많이 늘어났고, 곤충을 잡아먹는 박쥐도 덩달아 많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됩니다.
 
하지만, 기온 상승이 박쥐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드넓은 지구의 새로운 주인이 된 포유류들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내부 경쟁을 벌였습니다. 몸집이 작고 뿔이나 강한 턱, 빠른 다리 같은 무기가 없던 박쥐는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존위기에 처한 박쥐는 어려운 결정을 내립니다. 처절한 경쟁을 피하는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새로 짠 겁니다.
 
박쥐는 동굴이나 숲 속 같은 음습한 곳에 서식하며, 다른 포유류들이 활동하지 않는 밤에 움직였습니다. 먹이도 곤충이나 꽃가루처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쥐는 환경에 맞춰 생김새와 서식방법이 다양해졌고, 여러 종으로 분화해 갔습니다. 만약, 박쥐가 다른 포유류들에 맞서 경쟁했다면 박쥐는 오래전 지구 위에서 사라졌을 겁니다. 과욕을 부리기보단 자신의 분수를 알고 환경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빛나는 대목입니다. 진정한 경쟁이란 남이 아닌 자신과 싸우는 거라고 박쥐는 말하고 있습니다..
 
● 인수공통 바이러스 최다 보유 동물
5천만 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치며, 박쥐들은 종마다 독특한 생존전략을 터득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생존전략엔 ‘바이러스에 대한 적응력’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지난 2013년,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콜린 웹(Colleen Webb) 교수팀은 박쥐에 감염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연구결과, 박쥐는 모두 137종의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으며, 이 가운데는 사람도 감염되는 ‘인수공통 바이러스’가 61종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사람에게 전염병을 쉽게 옮기는 것으로 알려진 쥐보다도 많은 수치입니다. 실제로 21세기 인류를 위협하는 인수공통전염병의 상당수가 박쥐에게서 인간으로 넘어왔습니다. ‘사스'(관박쥐), ‘에볼라'(과일박쥐), ‘메르스(이집트무덤박쥐) 모두 박쥐가 바이러스를 옮기는 '숙주 동물'이었습니다.
 
● 박쥐의 독특한 생활방식과 생리학적 특징
연구진은 박쥐가 ‘바이러스 최다 보유 동물’이 된 이유로 박쥐의 독특한 생활방식과 생리학적 특성을 꼽았습니다. 박쥐는 동굴이나 폐광 같이 폐쇄적인 곳에 여러 종이 모여 서식하기 때문에, 한 마리만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주변으로 쉽게 전파될 수 있습니다. 또, 박쥐는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몸에 열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 때문에 체온이 다른 포유류보다 높은 38∼41도를 유지합니다. 백혈구와 같은 체내 면역물질은 높은 온도에서 활성화되는데, 활성화된 면역물질 덕에 박쥐는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박쥐는 바이러스로 인해 DNA가 손상될 것에 대비해 돌연변이가 생긴 DNA를 복구하는 시스템도 발달해 있습니다. 결국, 오랜 시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박쥐는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이 덕에 체내에 들어온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한 겁니다.
 
메르스_640
● 문제의 시작은 박쥐가 아닌 ‘우리 인간’
박쥐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게 막는 건 불가능합니다. 박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긴 세월을 체내에 들어온 바이러스와 함께 생활해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사람이 박쥐와 접촉을 줄이는 게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업화와 자연개발, 기후변화 속에 박쥐의 서식지는 파괴됐습니다. 동물과 숲 속에서 과일, 곤충을 먹고 살던 박쥐는 서식지를 잃었고, 사람들의 생활터전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돼지나 낙타 같은 가축들이 박쥐가 가진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그 바이러스는 우리 사람에게로 넘어왔습니다. 결국, 문제의 시작은 박쥐가 아닌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 쿨파, 메아 쿨파, 메아 막시마 쿨파
지난 2004년, 미시간대와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최고경영자의 태도가 기업 주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기업들이 연말마다 발표하는 연차보고서를 21년 동안 분석해 보니, 최고 책임자가 자신의 잘못된 판단이나 준비 부족을 반성하는 기업의 주가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일관되게 높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문제의 시작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조직만이 생명력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박쥐에 대한 비판'이 아닌 '자아 성찰'인 것 같습니다.
 
가톨릭교회 미사에서 행해지는 고백의 기도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메아 쿨파, 메아 쿨파, 메아 막시마 쿨파).” 배가 가라앉아 고귀한 생명이 희생됐을 때도, 전염병이 돌아 전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도 우리는 ‘내 탓’이라는 말을 좀처럼 듣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배신’, ‘불신’ 같은 단어만 어지럽게 춤추고 있습니다.
 
5천만 년을 살아온 박쥐의 성공 요인은 ‘남을 탓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맞춰 자신을 스스로 먼저 되돌아본 ‘자아 성찰’에 있습니다. 박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님아, 남 탓을 하지 마오!” ‘박쥐’를 닮은 사람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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