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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느 소녀 가장과의 우연한 인터뷰

[취재파일] 어느 소녀 가장과의 우연한 인터뷰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음성은 앳되었다. 앳된 음성엔 피곤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인터뷰를 하기로 한 시각에 나는 부천의 어느 지하철역 4번 출구 앞에서 기다렸다. 잠시 뒤 그녀가 나타났다. 밤늦게까지 수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새벽녘에 집에 돌아왔단다. 잠이 들어버려 조금 늦었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근처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의 얘기가 시작됐다.

사실 내게 필요한 건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아 본 사람의 짤막한 인터뷰였다. ‘고금리로 대출을 받으니 이런저런 점이 어렵더라’ 그 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1분 40초짜리 리포트에 들어갈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대화는 생각보다, 아주 길어졌다.

그녀의 부모는 IMF 외환위기 이후에 장사에 실패한 모양이었다. 아이들 양육을 포기하고 각자도생을 택한 듯 했다.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할머니는 자신을 버린, 자식의 자식들에게 그다지 따뜻하지 못했다.

“여동생은 저보다 할머니에게 더 많이 맞았어요”

그녀는 여동생을 데리고 할머니 집을 나와 독립했다. 어렵게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했다. 소녀 가장은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을 돌봐야 했다. 또 자신의 삶도 살아야 했다. 이듬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아르바이트는 계속됐다. 비로소 지난해 그녀는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다.

자신도 공부를 하다 하니 아르바이트할 시간은 줄었다. 벌이도 함께 줄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동생은 갑자기 아팠다. 당장 100만 원 정도가 필요했다. 은행 대출신청은 당연히 거부됐다. 지난해 9월 그녀는 처음으로 대부업체에서 3백만 원을 빌렸다. 그나마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해 오면서 급여를 받았던 통장 내역이 도움이 됐다.

대부업체는 영악했다. 100만 원만 대출받지 말고 3백만 원 한도까지 받으라고 강하게 권했다.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일단 많이 받아 놓고 나중에 갚으면 되지 않냐고 했어요”

대부업체는 3백만 원을 대출받아도 한 달 이자는 10만 원도 안 된다고, 심지어 첫 달은 이자를 면제해 준다고, 유혹했다.

그녀는 아침 일찍부터 오후까지 백화점에서 옷을 개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끝나면 대형마트로 갔다. 자세히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식품 판촉 아르바이트인 듯했다.

"솔직히 제 나이 또래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이거 드셔보세요, 저거 드셔보세요, 하는..."

앞으로 젊은 여성이 마트 시식 코너를 담당하고 있다면 아마 이 학생이 생각날 것 같았다. 마트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다시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단다. 일거리가 많을 때는 100만 원 조금 넘게 벌었지만, 없을 때는 20만원도 힘들었다.

수능이 다가오자 아르바이트 할 시간을 더욱 줄여야 했다. 수중에 돈도 더 빠르게 사라졌다. 연 34.9%로 받은 대부업체의 대출 이자는 더 버거워졌다.

“동생 밥은 먹여야 하잖아요. 하루에 우유 하나 먹고 한 달을 버텨야 했어요”

사실 그녀에게는 잊을 만하면 걸려오는 부모의 전화가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르바이트 하냐고 물어요. 모아놓은 돈 있으면 좀 달라는데...” 대화는 한동안 이어지지 못했다.

주변의 유혹은 솔깃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잘 갚아왔으니 조금 더 빌려도 된다” 는. 그 해 11월 그녀는 다른 대부업체에서 3백만 원을 더 빌렸다. 금리는 역시 34.9%. 그녀는 나중에 알게 됐다. 자신한테 추가 대출을 권한 사람들 역시 대부업체에서 빚을 진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어떤 대부업체들은 지인들에게 대출을 권해 성사되면 소개한 사람의 이자를 일정 기간 면제해 줬다. ‘대출추천=이자면제’라는 미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굴레에 얽어매는 것. 약탈적 대출은 다단계의 영업방식을 복사하고 있었다.

이자 내는 날이 다가오면 하루에 수십 번씩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면 끊겼다. 또 받으면 끊겼다. “대부업체에서 제가 핸드폰을 잘 받는지, 혹시 연락 끊고 튀어버린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었더라고요” 한번 굴레를 씌운 대부업체는 ‘고객’을 가만 두지 않았다. 고객관리는 나날이 강력해졌고, 그녀의 생활은 더 피폐해졌다. 

짧은 행복이 찾아왔다. 그녀 인생에선 매우 낯선, 그런 것이다. 대학 디자인 관련 학과에 합격했다. 또 한국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녀는 대부업체 대출을 먼저 갚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빚을 갚을 때조차 대부업체는 약탈적 유혹을 멈추지 않았다

. “원금 상환할 테니 계좌번호 알려달라고 대부업체에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뭐라는지 아세요? 이자를 한 달 면제해 줄 테니 지금 갚지 말고 천천히 갚으라는 거예요. 이자를 면제해 준다는 말, 그 유혹이 참 크더라고요”

유혹은 강렬했지만 이번엔 이겨냈다. 교수로부터 서민금융 제도도 소개받았다. 하루하루 삶에 쫓겼던 그녀가 알기 힘들었던, 그런 것이었다. 그녀는 미소금융재단 등을 통해 먼저 받은 대부업체 대출을 저리의 은행대출로 바꿀 수 있었다. 6개월 넘게 성실히 이자를 갚아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두 번째 받은 대부업체 대출도 일정 부분 갚았다. 이제 이자부담은 훨씬 줄었다.

“제가 기초생활수급자인데도, 변변한 일자리 없이 아르바이트만 했는데도 대부업체 대출은 나왔어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더 쉽게 받을 수 있겠죠. 그런데 실제 써 보니 다시는 손 대고 싶지 않아요. 이자 꼬박꼬박 갚아도 계속 스트레스를 줘요. 하루만 아르바이트를 못 해도 이자를 못 낼까봐 되게 불안해져요. 이자만 내는 것도 이런데 원금 갚기란...”

삶은 금세 바뀌는 게 아니었다. 교재비나 재료비가 많이 드는 디자인 관련 공부는 만만치 않았다. 무슨 색연필 한 세트가 수십만 원씩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휴학했어요. 학교를 다니면 실습도 해야 하고, 공부할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아르바이트를 못하겠더라고요. 동생도 있는데...”

얼른 빚을 갚고, 돈을 조금 모은 뒤 여유 있게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게 지금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금융위원회는 대부업 최고 금리를 34.9%에서 29.9%로 5%p 내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그러자 대부업 최고 금리를 인하하면 불법 사금융이 늘어나 서민들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반발이 일었다. 그럼에도 대부업 최고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른 부작용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을 제도권으로 포용하는 노력, 불법 사금융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노력으로 보완해야 한다.

9개 대형 대부업체의 광고 선전비는 2012년 347억 원, 2013년 704억 원, 2014년 924억 원으로 급증했다. 2013년 당기순이익의 263%에 해당하는 금액을 광고 선전비로 지출한 한 대부업체는 이듬해(2014년) 당기순이익을 3.6배로 늘릴 수 있었다. 대부업 광고는 더욱 강력하게 규제하는 게 맞다. 과도한 광고 선전비는 대부업체의 고금리로 전이된다. 또 가까스로 버티는 사람들을 더 많이 유혹한다. 그러나 그 유혹은 치명적이다.

이자 면제라는 미끼를 통해 대부업 대출로 유인하는 행위, 지인 대출을 소개할 경우 이자를 일부 면제해 주는 영업에 대해서도 강력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 교묘한, 그렇지만 사람 피를 말리는 채권추심에 대한 단속도 더 강화돼야 한다.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이 소녀 가장이 우유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할 날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대부업체의 강력한 유혹에 다시는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겠다. 살아 온 삶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밝았던 이 학생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왔다. 다음날 금융위원회의 ‘서민금융 지원 방안’ 발표에 맞춰 나는 리포트를 만들었고, 8뉴스에 방송됐다. 짤막한 그녀와의 인터뷰가 리포트 안에 들어갔다.

다음날 시청자라는 분이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강동구에 사는 분이란다. 성남 모란시장에서 장사를 하신단다. 방송을 봤다며, 자신의 집 옥탑방이 비어 있는데 그 소녀 가장에게 제공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곧 “그 학생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겠네요, 세상이 하도 험하니까. 부천이랑 강동구는 너무 멀기도 하고. 그러면 그 학생의 계좌번호만이라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내와 상의해서 금전적으로 돕는 쪽으로 생각해 볼 테니”라고 했다. 자신도 지속적으로 도울 형편은 안 된다며, 금액이 약소할 것이라며, 멋쩍어했다.

모란시장에서 장사를 하신다는 그 분이 어떻게 하실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학생이 말한 ‘여유 있게 다시 공부를 시작할’ 그 날이 언제 올지도 알 수 없다. 어쩔 수 없게 모든 제도는 완벽할 수 없다. 그 빈틈을 보완하는 게 관심과 연대임은 분명하다.  

▶ 대부업체 최고 금리 인하…서민 금융 22조 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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