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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레이더 잘할게요"…보이스피싱 조직원 메신저창 내용 공개

"넵, 레이더 잘할게요"…보이스피싱 조직원 메신저창 내용 공개
"팀원 전부 도착하면 바로 실시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잘 부탁드립니다."

"넵, 레이더 잘할게요"

이달 2일 아침 '공희발재(부자가 되라는 중국 인사) 안전제일'이란 이름의 단체 채팅방에서 진행된 대화는 업무 개시를 앞둔 회사원들의 대화를 연상케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실상 중국에 본거지를 둔 것으로 추정되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었습니다.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으로 사기 피해금을 어떻게 빼낼지를 모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의 위챗 대화 내역을 공개했습니다.

'평안365'란 아이디를 쓰는 총책은 "내일부터 같이 할 제 동생입니다"라며 '배우' 역할인 박 모(30)씨를 동료에게 소개했습니다.

'배우'는 급전이 필요한 서민을 속여 은행에서 사기 피해금을 인출하도록 하는 현금인출책을 뜻하는 은어입니다.

박 씨는 이달 2일 오전 10시 송파구 가락동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경남 창원에서 올라 온 통장주 이 모(32)씨와 접촉했습니다.

이 씨는 처음에는 대출을 해주는 줄 알고 상경했으나, 나중에는 보이스피싱 사기란 사실을 알고서도 돈을 받을 속셈에 같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하지만, 이날 '영업'은 처음부터 삐걱거렸습니다.

통장주 이씨가 개인 볼일을 본다며 인근 우체국에 가버리면서 조직원 전체가 하릴없이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씨 곁에 있던 박 씨는 일정이 지연돼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했고, 인출책 감시겸 망보기 역할인 '레이더'들은 "괜찮습니다 배우님 편하게 하세요, 우리는 배우님 부근에 대기하고 있습니다"라며 박 씨를 다독였습니다.

사기 피해금 3천700여만 원이 입금될 것이란 소식은 낮 12시 50분 전달됐습니다.

커피숍 안팎에서 대기하던 조직원들은 일제히 활동에 나섰습니다.

박 씨는 "(은행에서 현금을) 찾고 보안팀에 넘기고 (이 씨랑) 같이. 맞죠"라고 물었고, 총책은 그에게 "같이 다른 은행에 가서 또 인출하고"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삐걱댔던 범행은 결국 파탄으로 귀결됐습니다.

통장주인 이 씨의 계좌가 정지된 상태여서 총책이 피해자의 예금을 이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알고보니 이 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포통장을 넘겼다가 열흘 전 금융거래 제한 조치가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다른 은행 계좌는 여전히 사용 가능할 것으로 잘못 알고 범행에 가담한 것입니다.

격분한 이 씨는 "항의하러 간다"며 인근 은행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박 씨의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틀째 죽치고 앉아 이상한 언동을 보이자 커피숍 직원들이 "수상한 사람들이 있다"며 이들을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있던 '레이더'들이 메신저로 "경찰이 왔다"고 알렸지만 박 씨는 도망치지 못했고, 은행에서 돌아온 이 씨도 현행범으로 체포됐습니다.

총책은 곧바로 박 씨를 단체 채팅방에서 추방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의 메모지에서 확인된 피해자들은 보이스피싱에 속아 계좌번호와 일회용 비밀번호(OTP) 등을 불러준 상태였다"며 "피해자 계좌에서 이 씨 계좌로 곧장 예금을 빼낼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송파경찰서는 박 씨와 이 씨를 사기미수 등 혐의로 구속하고, 통화내역 등을 토대로 공범들의 행방을 쫓고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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