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칼럼] 병원 공개도 우왕좌왕…위기 대응 매뉴얼 재점검해야

[칼럼] 병원 공개도 우왕좌왕…위기 대응 매뉴얼 재점검해야
메르스 확진 환자들이 거쳐 지나갔거나 확진을 받은 병원 명단이 공개됐습니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8일 만입니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습니다. 이미 SNS에는 관련된 병원 명단이 줄줄이 공개된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이미 해당 병원들 가운데는 소문이 퍼지면서 환자나 방문자가 크게 준 곳도 있고, 아예 임시로 문을 닫은 곳도 있습니다.

더구나 최경환 국무총리 권한대행의 공식 발표조차 예정된 시간에 맞춰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하루 전인 6일 이미 ‘정부 대응조치 발표’ 시간을 7일 오전 10시로 공지하고 발표 내용까지 일부가 공개되기까지 했습니다. 오전 10시에 맞춰 방송사들은 일제히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긴급 속보를 시작했는데 정부가 뚜렷한 설명도 없이 발표를 20분 연기하면서 속보도 내용 없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발표문안 작성이 마무리되지 않아 발표를 연기한다고 했는데, 정부 발표를 하루 전에 공지해놓고 시간에 맞춰 문안을 작성하지 못했다는 설명을 납득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결국은 발표 시간을 한 차례 더 늦춰 당초 예정보다 1시간 늦은 오전 11시에야 발표가 이뤄졌습니다.
메르스
우왕좌왕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정부가 24개의 병원 명단을 공개했는데 그 가운데서 오류가 발견된 겁니다. 1개의 의료기관 이름이 바뀌고 소재지 정보도 잘못된 내용이 드러난 겁니다. 병원 명단도 제대로 모르면서 정부가 통제는 제대로 하겠느냐는 비판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래도 중앙정부의 공식 발표인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여의도구’로 잘못 적는 것같은 초보적인 오류는 정부가 뭔가 허둥지둥 한다는 느낌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병원협회 쪽에서는 명단 공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막연하게 명단만 공개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메르스 접촉 경위와 시기, 조치 사항 등을 제대로 공개해야 할 것 아니냐고 반발했습니다. 제대로 감염원 관리를 하지 못해 지금의 사태를 부른 병원협회가 이런 반발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정부가 발표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은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게도 병원 이름 등을 공개하지 않을 이익이 더 크다던 정부가 왜 입장을 180도 바꿨을까요? 일부 정치권이나 언론, 시민단체 등에서 투명하게 메르스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그동안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실제로 SNS 등에서 관련 내용이 떠돌아다니고, 여기에 점점 살이 붙어서 사실과 다른 엉터리 정보들까지 흘러다녔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정보 공개가 아니라 유언비어 유포자 처벌 방침으로 맞섰습니다.

무슨 큰 일만 생기면 국민의 신뢰를 얻어 제대로 협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국민들 입을 막을 궁리만 하느냐는 비판을 자초했습니다. 국민들로서는 자기가 다녀온 병원에 어떤 위험이 있었던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 상태에서 흉흉한 소문만 무성하니 더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경환 국무총리 권한대행은 일요일 낮 공식 발표를 통해 “국민안전 확보 차원에서 병원 명단을 공개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메르스의 실제 감염 경로가 병원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서 해당 병원들에 대한 강력한 통제가 불가피하다”고 말했습니다. 다 좋은 말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일이 이렇게 커지기 전에 보다 신속한 조치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서울시가 나서서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더라도 정부가 이렇게 공개 방침으로 선회했을지도 의문입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김성수 감독의 ‘감기’라는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토리가 개연성이 부족하고 현실감이 떨어진다면서 혹평을 받았던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메르스 사태를 맞아 2년이 지난 영화가 포털의 영화 검색 순위 1위를 차지하고 VOD로 이 영화를 찾는 사람들도 줄을 잇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영화에 대한 네티즌 평점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번에 정부가 메르스에 대응하는 것을 보면서 ‘감기’의 리얼리티에도 점수를 주기 시작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지금 메르스 사태가 영화 ‘감기’가 묘사한 그런 참사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이뤄지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처럼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한 사안에서 정부가 모든 정보를 쥐고 알아서 하겠다는 생각은 바꿔야 합니다. 정부가 이런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기본적인 매뉴얼부터 재점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칼럼] 메르스…혼란을 막는 지름길은 '투명성'이 아닐까?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