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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메르스…혼란을 막는 지름길은 '투명성'이 아닐까?

비밀주의가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의 출발점 아닌지 생각해봐야

[칼럼] 메르스…혼란을 막는 지름길은 '투명성'이 아닐까?
또 여지없이 "유언비어 유포자 엄단" 방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정말 누군가를 체포했다고 합니다. 허위 사실을 퍼뜨린 사람을 잡았다는 겁니다. 정부는 정말 바쁩니다. 메르스 방역도 벅찰 텐데, 그 와중에 국회법을 놓고 국회와도 싸워야 되고, 여당 지도부와도 싸워야 되고, 블로그나 SNS로 메르스 관련한 괴담을 퍼나르는 사람들과도 싸워야 합니다.

정부의 입장은 확고해 보입니다. 메르스는 정부가 철저하게 관리할 테니 공연히 어느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는지, 메르스 환자가 어느 어느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지 같은 정보는 굳이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걸 알면 공연히 더 불안해서 그런 병원에 가지 않거나 혹은 입원해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퇴원을 하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발생 지역을 공개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해당 지역이 마치 위험한 곳인 것처럼 낙인을 찍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정보를 공개하라는 요구도 적지 않습니다. 사실 '적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주 강력합니다.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고 일반 시민들도 어느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있는지, 어느 지역에서 발생을 했는지 등등을 궁금해 합니다. 특히, 정부가 워낙 비밀, 비밀 하니까 사람들이 더 불안해하는 것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얼마나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위험하길래 저렇게 철저하게 비밀을 강조할까 싶은 거죠.

하지만 애당초 이 일은 비밀이 유지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사자가 있기 때문이죠. 당사자와 주변 인물 등등 관련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입니다. 의료진들도 한 둘이 아니죠. 단지 공개적으로 발표를 하지 않을 뿐이지 이렇게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소문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SNS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소문이 퍼집니다.

이렇게 퍼지는 소문에는 항상 그렇듯이 살이 붙기 마련입니다. 어느 병원 응급실이 폐쇄됐다는 소문에다 관련된 병원 명단이 점점 많아지면서 엉뚱한 병원 이름들도 포함되기 시작합니다. 듣자하니 최근 주한미군이 페덱스를 통해 받았다는 탄저균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기 시작했다더군요.

그래서 일부 병원은 스스로 자기 병원을 환자가 거쳐갔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잘못된 소문을 바로잡았고, 임시로 문을 닫은 병원도 스스로 관련 내용을 공개합니다. 하지만 병원협회나 정부는 여전히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말인즉, 공개를 할 경우 생길 문제가 더 크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관련 정보를 공개하면 지금보다 더 혼란이 생길 거라는 얘기입니다.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이걸 틈타서 잘못된 정보가 퍼지면 그건 수사기관을 통해서 엄단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언론은 정부의 방침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아주 일부 언론만 병원과 지역을 공개했습니다. 이런 일종의 재난 상황에서는 정부 정책에 협조를 해 주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 독자적인 취재 보도를 통해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은 것도 영향을 줬을 겁니다. 공연히 이런 상황에서 앞장서 직접 취재를 통해 보도를 하다 문제가 커지기라도 하면 또 '기레기' 소리를 들을 테니까요.

SBS 보도국도 이런 정보를 공개할 것인지를 놓고 여러 차례 논의를 했는데 결국은 대세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들과 한국 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가 공동으로 정한 '감염병 보도 준칙'이라는 게 있더군요. 사실 이건 기자협회 차원에서 정한 준칙은 아닌, 일종의 특정 분야의 자치규정 비슷한 건데, 그래도 달리 기준이 없으니 거의 유일한 준거 규정이 되는 거죠. (아마 이번 기회에 기자협회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세월호 언론 참사를 거치고 '재난보도준칙'이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죠.)

이 준칙은 감염병 보도는 정확성을 기해야 하고, 예방법이나 행동수칙 등을 알려줘야 하고, 불확실한 보도를 하지 말고 추측이나 과장, 확대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나 낙인 효과가 생길 수 있으므로 환자나 감염자의 신상, 가족 등의 개인정보 보호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보도 과정에서 제목에 '패닉, 대혼란, 대란, 공포, 창궐' 등의 단어를 삼가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약간 논란 가능성이 있는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언론이 혼란을 초래하지 말고 피해의 확산 방지를 위해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는 합리적인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준칙 어디에도 메르스 확진자가 나온 병원이나 이들이 치료받고 있는 병원을 공개하면 안 된다거나, 환자가 발생한 지역을 아예 공개하면 안 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오히려 준칙은 '감염병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이나 장비 등을 갖춘 의료기관, 보건소 등의 기관과 자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확진자가 치료받고 있는 병원을 공개함으로써 메르스 의심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지 않고 곧바로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이 준칙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실제로 유사 증상이 있는 환자들이 검진 과정에서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는 바람에 공연히 SNS에 떠도는 병원 목록만 자꾸 늘어나는 상황이 발생한 것도 이런 비밀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성재 기자가 지적했듯이 (▶[취재파일] '트위터' 닫은 질병관리본부…'소통'은 어디에?) 질병관리본부는 그나마 갖고 있던 트위터 계정을 숨기고, 병원 정보는 공개하지 않으면서 메르스 관련 병원을 다녀온 사람은 예비군 훈련을 연기해 주겠다는 모순된 정책까지 나옵니다. 메르스 발병 지역은 공개하지 않는데 막상 메르스 때문에 휴교한 학교는 공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책들이 앞뒤가 맞지 않은 겁니다.

정부는 정보를 꼭꼭 틀어쥐고 있고, 언론 또한 이런 방침에 협조하고 있는데 SNS에는 별의별 얘기들이 떠돌아다니니, 결국 일부 시민들은 아예 관련 정보들을 모으고 스스로 검증을 해서 메르스 발생지와 관련된 병원 정보를 모은 인터넷 페이지를 만들고 나섰습니다. www.mersmap.com라는 페이지에서는 나름의 검증을 거친 정보를 토대로 발생지와 병원 정보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가끔 접속이 안 되는 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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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번 메르스 확산 상황에서 초기 대응에서부터 부실한 대응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정부의 안이한 대응을 질타했습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대부분의 언론은 대통령이야말로 메르스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만약 모든 정보를 통제하면서 "정부만 믿고 따르세요"라고 하려면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를 제대로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했어야 하는 조치들은 제대로 취하지 못하면서 정보 통제에는 열을 올리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어색합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호 학습효과도 좋지만 시청자와 독자를 절대적인 계몽과 교육,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접근법은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는 물론 언론마저 기본적인 정보 제공을 거부하면 결국 시청자, 독자는 스스로 정보 수집과 유통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이른바 '제도권 언론'이 정보의 수요자인 시청자, 독자로부터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 스스로 자신을 드러낸 병원 이름마저 정부 방침을 내세워 익명으로 처리하는 자세는 정말 놀라운 자제력입니다. 감염병에 관련된, 자칫하면 혼란을 부를 수도 있는 사안에서 언론이 선정적 보도 태도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이런 모습은 매우 신선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민주주의 사회 운영에 필요한 정보 수집과 전달이라는 점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시청자, 독자를 주인으로 생각하는 관점에서 지금의 보도를 평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청자, 독자는 과연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면 무질서하고 과잉 반응을 보임으로써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게 될까요? 제대로 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솔직하게 협조를 요청하면 수용하지 못하는 수준일까요? 언론은 정부의 관련 정보 비공개 원칙을 따르는 것만으로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자부해도 될까요?

시간이 지나면 메르스 관련 혼란은 진정이 되겠지요. 과연 투명성과 비밀주의 사이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정부는 차치하고 언론 내부에서부터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유언비어가 나도는 상황은 정상적인 정보 유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 [카드뉴스] 유언비어에 공식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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