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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먹튀' 론스타 "5조 원 내놔라" 소송

[월드리포트] '먹튀' 론스타 "5조 원 내놔라" 소송
● 5조 원대 소송 시작
 
지난 2003년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해 9년 만에 4조 6천억 원이란 어마어마한 매각 차익을 내고 우리나라를 떠나면서 이른바 먹튀 논란에 휩싸였던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기억하실 텐데요. 이 론스타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5조 원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제기해 그 재판이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시작됐습니다.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지연해 2조 원이 넘는 손해를 봤고, 면세 대상인 자신에게 거액의 세금을 매긴 것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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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5일) 첫 심리는 현지시각 오전 9시 워싱턴 D.C. 월드뱅크 건물 안에 있는 중재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열렸습니다.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 정부의 계약위반으로 피해를 봤다며 제3의 기관에 권리보호를 요청하는 것이 투자자-국가소송(Investor-State Dispute)인데 ICSID가 이 소송을 중재하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특이한 것은 일반적인 소송절차인 항소와 상고 같은 불복 기회 없이 재판부의 단 한 차례 결정으로 결론이 나기 때문에 양측 모두 사활을 걸고 소송에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진다면 천문학적인 배상액을 혈세로 물어줘야 합니다.

오전 8시쯤 론스타 측과 법률 대리인들이 먼저 도착했습니다. 여행용 가방을 트렁크에서 꺼내 나오는데 얼핏 봐서는 그냥 여행객 같았지만 론스타 측 변호사가 아니냐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법정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어 한국 정부 대표단과 법률대리인들이 도착했습니다. 정부는 론스타가 중재 신청 움직임을 보일 때부터 국무조정실과 기재부, 외교부, 법무부, 금융위, 국세청 등 유관기관을 망라해 태스크포스를 꾸려 대응해왔습니다. 주무과장인 김철수 법무부 국제법무과장을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전 전화통화에서도 그랬듯이 소송과 관련해 말을 아꼈습니다. 다만 국내 일각에서 론스타가 1조 원의 중재안을 우리 정부에 제시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부인했습니다. 참고로 김철수 과장과의 문답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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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응 전략은?
=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정부 측은 최선을 다해 준비해왔고, 오늘 첫 날이니까 기선을 제압하는 측면에서라도 오늘 잘하려고 준비해왔습니다.
 
- 증인 신문 일정은?
= 구체적 일정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 두 가지 큰 쟁점이 있는데?
= 그런 부분은 말하는 게 적절치 않습니다.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 론스탄 중재안은 사실인가?
= 일반론적으로 타협 가능성은 있지만 구체화된 것은 없습니다. 정부 국무조정실장 의장으로 하는 관계부처 TF가 공식 창구인데 받은 적 없습니다.

- 한덕수 전 총리 등이 증인인데?
= 증인 중요한데 언급하지 않습니다. 증언 잘하는 게 중요합니다.
 


● 매각 승인 지연으로 손해?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외환은행의 매각 승인을 우리 정부가 지연시켰다는 부분입니다. 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 3천834억 원에 사들인 뒤 2010년 11월 최종 인수자인 하나금융과 계약을 맺기까지 두 차례나 매각이 무산됐는데, 우리 정부의 매각 승인 지연 때문이라며 책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2006년 3월 국민은행에 이어 2007년 9월 영국계 HSBC와 6조 원에 외환은행 지분을 매각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금융당국이 승인 결정을 미뤄 결국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그해 9월 HSBC가 인수를 포기하면서 손해를 봤다는 것입니다.

당시 금감위는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들인 의혹과 관련한 배임사건과 외환은행-카드 합병 관련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사법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재매각을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론스타는 '먹튀 논란'이 일 만큼 막대한 차익을 남겼지만, 한국 정부 때문에 큰 이익을 챙기지 못했다고 소송을 낸 것인데 그들이 요구하는 금액을 보면 더욱 기가 막힙니다. HSBC가 인수를 포기해 2조 원가량의 손해를 봤고 여기에다 지금까지 이자 등을 감안해 3조 3천800억 원을 물어달라고 한 것입니다.
 
● 부당 과세?

또 다른 핵심 쟁점은 세금 문제입니다. 론스타는 벨기에에 스타홀딩스란 회사를 세운 후 2001년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를 인수하고 또다시 벨기에에 자회사를 만들어 2003년 외환은행을 사들였으며, 이들 회사는 극동건설과 SKC사옥, 동양증권 빌딩 등을 매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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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들인 건물과 지분들을 매각해 론스타는 4조 6천억 원의 이익을 챙겼습니다. 그러고도 한국과 벨기에 간 투자보장협정(BIT)상 세금을 면제해준다는 조항을 제시하며 한 푼도 세금을 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처음부터 벨기에에 자회사를 세워 한국 자산을 사들일 때부터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계산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세금을 내지 않는 데 대한 ‘먹튀’ 여론이 비등해졌고, 결국 국세청은 8천500억 원을 징수했습니다. 이 징수금액이 정당한지가 두 번째 핵심 쟁점인데요. 론스타는 벨기에 자회사들이 페이퍼 컴퍼니가 아닌 실체가 있는 회사이며, 설령 페이퍼 컴퍼니라고 인정해도 한국-벨기에 간 조세협약엔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예외조항이 없는 만큼 면세 적용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세금으로 낸 8천500억 원과 그동안 이자 등을 포함해 1조 7천억 원을 돌려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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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벨기에 법인은 페이퍼 컴퍼니이고 실질적 의사결정과 이익을 취득한 것은 모회사라며, 세금 부과는 정당하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 한국 법원이 한국의 디엠푸드를 인수한 후 동원그룹에 되팔아 이익을 챙긴 벨기에 페이퍼 컴퍼니 코리아데어리홀딩스에 세금을 부과한 것은 정당하다며 국세청 손을 들어줬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론스타는 디엠푸드 판결은 한국 법원의 판단일 뿐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와는 관계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과세의 정당성이 이번 재판에서 가장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되는 부분입니다.
 
● 재판 결과는?

5조 원이 걸린 거액의 재판이란 점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와 외국 투자자 간 분쟁의 시험대란 점에서 이번 소송결과는 큰 파장이 예상됩니다. 패소할 경우 손해배상뿐 아니라 외국투자자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 금융제도나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 평가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소송이 된 만큼 당시 금융당국 수장이었거나 경제 부문 총책임자였던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이 증인으로 나서서 매각 승인 지연의 정당성을 주장할 예정입니다.

론스타가 이긴다 해도 청구한 5조 원을 다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지난 2012년까지 국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해 받아낸 손해배상액은 청구액(23억 달러)의 1% 정도인 2천300만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론스타가 1조 원 밀약설을 우리 정부에 제시했다는 주장에 대해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일반론으로 중재는 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최종 판결 전에 금액 조절도 또 하나의 결론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25년간 투자자와 정부 간 국제중재재판에서 결론이 난 141건을 분석한 결과 정부가 승소한 경우가 54건이고 투자자가 승소한 경우는 42건, 합의로 끝난 것이 45건으로 나타나 모두 엇비슷한 승률을 보입니다. 이번 소송으로 소송비용만도 1천만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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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소송대리인은 법무법인 태평양과 미국 '아널드 앤드 포터'입니다. 론스타 측은 미국계 다국적 로펌 '시들리-오스틴'과 법무법인 세종입니다. 시간당 자문료만 500~700달러가량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간에 합의하지 않는다면 결론이 나는 데 1년가량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이겨야 하겠지만 어떤 결론이 나든 FTA뿐 아니라 TPP 가입도 검토 중인 정부로서는 ISD의 위험을 줄이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전문 통상인력을 확충하며 규제도 국제 수준으로 맞춰야 할 것이란 지적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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