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제주에서 사라지는 중국인들

'30일 무비자' 악용… 각본 짜인 중국인 밀입국 실태

[취재파일] 제주에서 사라지는 중국인들
제주도가 중국인을 빨아들이고 있다. 깨끗한 공기와 아름다운 경관에 이끌려, 지난해만 290만 명 넘는 중국인이 제주를 다녀갔다. 상하이에선 비행기로 1시간, 베이징에선 2시간 반이면 제주공항에 올 수 있다. 이 섬에 들어올 때, 중국인만큼은 비자가 면제다. 정부는 2006년부터 제주 관광 활성화를 위해, 30일간 무비자 관광을 허용했다.

아름답고 가까우며, 편리하게 드나들 수 있는 섬. 관광객 급증과 함께, 중국인의 이민과 투자 역시 나날이 늘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돈을 쓰러 온 중국인의 모습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런 편의는 의도치 않은 문제를 낳기도 한다. 우리는 하루 1만 명에 육박하는 제주 속 중국인들의 이면까지 알고 있는 걸까.
[취재파일] 제주에
[취재파일] 제주에
● 中 관광객만 30일 무비자…사라지는 중국인 청년들

중국 노동절 연휴인 지난 1일부터 사흘 동안, 제주 관광업계는 중국인 관광객만 2만 6천 명 넘게 제주도를 다녀갔다고 추산했다. 연휴 기간 성산 일출봉 입구는 인산인해였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버스가 주차장을 완전히 점령한 상태. 누구보다 호황을 누리는 사람들은 단체 관광 가이드다. 양국 언어구사가 가능한 중국동포 출신이 많다. 중국인 관광객이 제주 관광을 편리하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다른 걱정부터 털어놨다.

중국인 관광객을 인솔하는 가이드 사이에선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많을 땐 40명 남짓한 팀 관광객을 이끌어야 하는데, 유독 20~30대 젊은 남성에게 신경이 쓰인다는 거였다. 이들 가운데 1명씩 불쑥 사라지는 일이 잦다는 거다. 사라지는 사람은 중국동포가 아닌 중국인이라고 했다. 한국말도 못하고, 제주는 물론 한국에도 처음 온 젊은 남자가 갑자기 팀을 이탈한다는 얘기다. 이런 실종 사건은 꽤 빈발하고 있다.

여러 번 이런 일을 겪었다는 40대 중국동포 출신 가이드를 만났다. 그는 "작정하고 여권 들고 도망간다. 그런 사람이 안 걸리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중국동포인 다른 30대 여성 가이드는 이런 일이 생길까 봐 늘 조마조마 하단다. 그는 무단이탈 방지 매뉴얼을 숙지하고 있었다. "저녁에 딱 봐서 이 사람이 행동이 조금 이상하거나 그러면, 여권을 다 받아서 가이드가 가지고 있거나 인솔자가 가지고 있도록 한다."라는 거였다.
[취재파일] 제주에

무단이탈자는 어디로 가나

무단이탈자들은 하나같이 20~30대 남성에다, 중국동포가 아닌 한족 등 중국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취재팀은 중국인이 많이 찾는 제주시내 전통시장에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곳에서 만난 상인은 유독 비 오는 날, 중국인이나 중국동포가 시장에 많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중국인은 대부분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나 이른바 함바집 보조 등 단순노무직을 얻은 경우가 많다. 때문에, 건설 일을 못하는 날이 쉬는 날이란 거다.

제주도엔 건설 붐이 한창 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유명 연예인이 신혼집을 차렸다는 신제주 지역을 찾았다.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 신도시처럼 대규모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신축 빌라가 무섭게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인부들은 모두 내국인이었다. 종종 일자리를 찾아 육지에서 내려온 내국인을 만날 순 있었지만, 중국인을 만날 수는 없었다.
[취재파일] 제주에
제주도 내 인력소개소 사장과 인부들 얘기를 종합하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만 해도 한족 등 중국인 노동자를 쓰는 하도급업체가 여럿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한다. 대부분 불법체류자인 이들은 하루 임금을 2~3만 원 적게 받기 때문에, 이들만 고용하는 업자가 있었다는 거다. 하지만, 고용 당국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지금은 중국인을 찾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중국인 불법체류자가 제주도 안에 체류하는 일이 늘자, 단속이 심해졌다는 얘기다. 그럼 이들이 관광객 무리에서 사라진 중국인이란 건가.


● 관광객, 불법체류자 그리고 밀입국자

취재팀은 지난달 19일 제주해양경비안전서에 붙잡힌 36살 중국인 남성의 이야기에서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를 만난 곳은 제주해경 유치장. 180센티미터는 족히 넘는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모습의 그는, 션 씨라는 성을 썼다. 거무튀튀한 피부에 피곤한 듯 쌍꺼풀이 두꺼워진 채 나타났다. 그의 표정엔 체념이 묻어 있었다.

그가 제주도에 도착한 건 지난해 6월. 단체관광객 틈에 섞여 제주공항을 나온 그는 이내 무단이탈을 감행했다고 한다. 30일을 넘기자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 그는, 제주 도내 건설현장을 돌아다니며 집 짓는 일을 했다. 무려 10개월. 그동안 어디서 묵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한국인 사장이 차로 늘 머물 곳을 옮겨 다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여관이나 민박집으로 쓰인 것 같은 민가에서 여럿이 함께 묵었다.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는, 그를 도와준 동료가 있을 걸로 해경은 추정했다.
[취재파일] 제주에
하지만, 이런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섬에 불법체류자 단속 바람이 거세게 분 것이다.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하자, 그는 건설현장 동료의 솔깃한 제안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바다 건너 한국 육지로 밀입국을 시켜주는 조직에 돈을 내고 함께 가자는 유혹이었다. 그 유혹에 빠진 대가로 그는 구속돼, 지금은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제주해경은 지난달 19일 제주항 제6부두에서 완도행 여객선을 기다리던 택배 차량을 발견했다. 지난 3월 이 택배 차 짐칸에 중국인들을 실어, 육지로 밀입국을 시도한다는 첩보를 확인한 터였다. 새벽 6시쯤 해경은 택배 차를 몰던 40살 중국동포를 붙잡았다. 압수한 차는 제주해경 주차장으로 끌고 왔다. 짐칸을 여니, 그 안에는 션 씨 등 5명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상태였다. 이들 모두 션 씨처럼 중국 단체관광 상품을 구매하고, 그 틈에 끼어 제주에 들어온 무비자 관광객이었다. 무비자 제도를 악용해 밀입국을 시도한 혐의. 재판을 거쳐 빠르면 이번 달 안에 이들은 추방될 것이다.
[취재파일] 제주에
[취재파일] 제주에
●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은 한배를 탄다

취재할수록 궁금증은 쌓여갔다. 어떻게 한국말은커녕 영어도 모르는 중국인이 서로 한자리에 모여 밀입국을 도모할 수 있는 건가. 심지어 이들은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다.

션 씨와 함께 붙잡힌 30대 옌 모 씨는 19일 새벽 이들을 처음 봤다고 말했다. 택배차량에 몸을 숨기러 가는 길에, 관광용 렌터카 승용차에서 처음 봤다는 얘기일 것이다. 옌 씨가 말하는 밀입국 시도 경위는 이렇다. "4월 18일 오전 11시 30분에 제주도 도착해서 모텔에서 자고, 그 다음 날 새벽 6시 30분에 이쪽 사람들이 나를 데리러 왔다." 범행 전날 관광객처럼 제주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어느 모텔로 사라졌고, 다음 날 운반책을 만나 제주항에서 밀입국을 시도했다는 진술이다.
제주 중국인 관광객
제주 중국인 관광객
그가 묵은 모텔은 제주항 부두 부근 사라봉 근처 여관촌에 있었다. 6차선 대로 양옆으로 여관이나 여인숙에 가까운 모텔이 어림잡아 스무 곳은 된다. 모텔 주인은 2대째 모텔 사업을 해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원래는 제주도 사람만 이용하던 곳이었는데, 5~6년 전부터 육지 건설노동자들이 주 고객이 됐다고 한다. 건설 경기가 달아오르면서, 섬엔 일손이 달렸고, 장기 숙박을 하면서 현장 일을 하는 인부가 부쩍 많아졌다.

많은 투숙객 가운데 모텔 주인은 옌 씨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옌 씨는 처음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남자와 함께 투숙했다. 주인이 그들을 기억한 건, 다른 손님 같지 않은 행동 때문이었다. 그들이 묵은 곳은 1인용 침대가 놓인 방이었다. 보통 남자 2명이 투숙하면 추가로 이불을 요구하는 데, 그들은 그런 얘기가 없어 이상했다는 거였다. 그리고 잠시 뒤 둘 중 한국말을 못하는 남성이 내려와 라이터를 빌려달라는 몸짓을 했다고 한다. 그는 옌 씨였다. 그가 진술한 대로 그는 19일 새벽 모텔을 떠났고, 곧바로 해경에 검거됐다. 모텔 주인은 그가 묵은 방엔 잠을 잔 흔적이 없었다고 했다. 오직 피다 만 담배 2개비만 재떨이에 구부러져 있었다고 한다.

옌 씨는 그날 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처음부터 밀입국할 의도로 제주 관광객 틈에 섞였다. 그리고 도착 19시간 만에 대한민국 형법상 처벌이 필요한 피의자가 됐다. 그와 함께 구속된 6명은 유치장에서 함께 첫 식사를 했다. 하지만, 대부분 제대로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고 한다. 한 가정의 가장이거나, 아들인 그들은 몹시 괴로운 표정으로 조사를 받았다. 무엇보다 당장 하루아침에 큰돈을 잃은 처지가 됐다는 게, 매우 속 쓰릴 거라고 담당 수사관은 말했다.

밀입국을 계획하고 실행해주는 대가로 1명이 낸 돈은 450만 원 정도. 중국에서 임금 수준이 가장 높은 상하이의 사무직 평균 월급과 비교해도, 서너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이다. 하물며 교육 수준이 낮고, 취업이 어려웠던 이들에게 450만 원은 온 가족이 함께 마련한 큰돈이었을 것이다.
[취재파일] 제주에

● 스마트폰으로 지시하고 점조직으로 따돌리고

모든 서비스엔 원가가 있다. 법을 어긴 서비스에도 나름의 인건비가 책정돼 있다. 중국 내 '이 사장'이란 인물이 만든 450만 원짜리 밀입국 패키지엔 고정된 인건비가 잡혀 있다. 그는 우선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등 공공장소에 홍보 포스터를 붙인다. 중국어로 "한국에 가서 취업하실 분 모집"이라고 쓰인 문구다. 대부분 농촌지역에 교육 수준이 낮은 젊은 남성이 공략 대상이다. 대화는 중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스마트폰 메신져 QQ를 통해 오간다.
[취재파일] 제주에
450만 원은 어떻게 나뉘는가. 차량을 준비하고 운반하는 운반책은 100만 원을 받는다. 출발지인 제주도와 육지에 각각 1명씩 가담한다. 나머지는 제주 도내 알선책과 이 사장이 나눠 가진다. 알선책은 제주도 내에 이들이 묵을 모텔을 예약한 뒤 방 배정을 해준다. 운반책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차가 준비되면 이들에게 연락을 돌리는 역할을 한다. 모텔 이름을 QQ로 알려주면, 밀입국자들은 택시를 타고 각각 집결한다. 관광객인 척 택시를 타고, 모텔 이름을 말하거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보여주면 끝이었다.

이들이 검찰에 송치되던 지난달 24일, 중국동포 출신 운반책이 기자에게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모집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제주도에서만 15년 넘게 살았다는 그는, 택배 차량 운전기사로 일하다가 빠져선 안 될 유혹에 빠졌다고 자책했다. 그 역시 QQ를 통해 이 사장을 알게 됐고, 그의 꾐에 빠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사당국 입장에선, 제주도 안에서 활동 중인 알선책이나 운반책을 아무리 많이 잡아도 몸통을 쫓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QQ로 꾀어낼 점 조직원은 얼마든지 새로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파일] 제주에

지난해 제주에서 사라진 중국인만 1,409명

지난달 19일 해경이 그가 택배차량으로 밀입국을 시도한다는 첩보를 확인하고, 급습하지 않았다면, 옌 씨는 지금쯤 육지 어딘가에서 불법체류자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가려던 전남 완도는 배로 4시간 거리. 중국을 떠난 지 만 하루 만에 그는 밀입국자로 제2의 인생을 살았을지 모른다.

이들의 범행은 실패했지만, 수많은 중국인이 이런 수법으로 밀입국하고 있다고, 해경은 보고 있다. 그들은 숨을 수 있는 짐칸 어디든 밀입국 통로처럼 악용할 수 있지만, 해경이나 해양수산부 직원이 여객선에 실린 화물차를 모두 열어볼 순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해경은 해체됐고, 경찰이 아닌 국민안전처 아래로 편입됐다. 여객선 안전관리 강화가 조직의 제1 목표가 됐다. 각 지방 해경마다 수사 인력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밀입국 첩보를 수집하고 추적하는 업무는 소홀해졌다. 심지어 아예 손을 놓았다고 말하는 해경 수사관도 만날 수 있었다. 현행범 체포를 제외하고, 범죄를 종전처럼 인지했을 때, 해경 수사관들은 경찰에 첩보를 이관하는 게 원칙이다. 직접 수사결과물을 내놓고 평가받고 포상하던 시절과 견줘보면, 밀입국자를 쫓을 동기부여가 될 리 없다.
[취재파일] 제주에
얼마나 많은 중국인이 남해를 건너 밀입국에 성공한 걸까. 법무부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는 지난해 제주에 들어온 뒤 나가지 않은 불법체류자가 1,409명이라고 집계했다. 취재 도중 만난 수사당국 간부는 3년간 2,500명 넘는 중국인 관광객이 이렇게 사라졌다는 비공식 집계가 있다고 말했다.
[취재파일] 제주에
(내국인이 여러 차례 밀입국을 도와주다 구속된 사건, 신분증까지 공급하는 밀입국 조직 등 보다 자세한 실태와 중국인 밀입국자가 늘어나는 근본 원인은 추가 취재를 통해 기사화할 예정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