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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민연금, 결국 철학의 문제다

‘철학’보다 ‘돈’이 먼저인 복지부의 가벼움

[취재파일] 국민연금, 결국 철학의 문제다
결국, 공무원 연금개혁안의 4월 국회 처리는 무산됐습니다. 이해 당사자가 합의한 최초의 개혁, 그 거창한 수식어도 얽히고설킨 여야 이해관계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본회의 문턱 앞에서 돌발 변수가 된 건 공무원 연금이 아니었습니다. 국민연금, 정확히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문제였습니다.

말이 좀 어렵습니다. 소득대체율은 벌었던 돈 대비 받는 연금의 비율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만일 생애 평균 월급이 100만 원이었는데, 국민연금으로 40만 원을 받아간다면 소득대체율은 40%가 됩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올해를 기준으로 소득대체율이 46.5%인데, 장기적으로 40%로 줄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2060년에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걸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는 지금껏 소득대체율을 내리는 방식으로 개혁을 해왔던 까닭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소득대체율은 ‘명목’ 기준입니다. 국민연금 최대가입기간이 40년이니까, 40년 동안 꼬박 보험료를 냈을 때를 가정한 겁니다. 사실 40년 간 국민연금에 가입해 받아가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습니다. 보통 국민연금의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은 20% 안팎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100만 원을 월급으로 받으면 20만 원 안팎을 받아가는 게 현실이란 얘기죠. 연금이 아니라 용돈이란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가 이번 개혁의 변수가 된 건 야당과 공무원 단체가 공무원 연금개혁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대대적인 개혁은 일반적으로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 논리가 반영됩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만 하더라도 보수와 진보 진영의 색채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공무원연금개혁 관련
하지만, 공무원 연금개혁은 애초 ‘진영 논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하루에 100억 원씩 혈세가 나간다고 주장하며 공무원이라는 ‘이익집단’과 고용주인 ‘국민’을 대립시키는 프레임을 내걸었고, 이런 전략은 먹혀들었습니다. 공무원에게 상황은 불리하게 돌아갔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야당과 공무원 단체는 ‘진영 논리’가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진보 진영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던 ‘공적연금 강화’는 연금 개혁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는 괜찮은 명분이었습니다. OECD 국가 가운데 노인 빈곤율이 최하위인 상황, 국민연금 수령액이 터무니없다는 점을 공무원 연금과 연계시켜가는 거죠. 진보 진영을 아군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는 정치적 판단도 있었겠지만, 명분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일단, 합의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여당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 문제를 마냥 거부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받아주기로 합의했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주느냐 그 방식을 놓고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쉽게 말하면 야당은 50%라는 수치를 법적으로 명확히 하자는 거고, 여당은 50%가 목표치인 만큼 굳이 표기할 필요가 있겠냐고 반박했습니다. 결국, 여야는 의견을 좁히지 못했고, 공무원 연금개혁 처리도 덩달아 좌절됐습니다.

누구 책임일까요. 언론마다 스탠스는 다릅니다. 보수 언론은 야당 탓, 진보 언론은 여당 탓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이지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문제를 지나치게 기술적으로, 거래의 대상으로만 접근하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이 문제는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2007년 국민연금 개혁 당시부터 소득대체율 50% 문제는 적어도 연금 학계에서는 쟁점이 된 사안이었습니다.

국민연금의 핵심은 노후 소득 보장이지만, 더 깊이 보면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습니다. 떼어가는 비율은 개인이 4.5%, 사업주가 4.5%로 고정돼 있지만, 받는 연금은 소득대체율 대로 받아가지 않습니다. 국민연금은 최근 3년간 가입자 평균 소득을 중요한 지표로 삼고 있습니다.

복잡한 예외도 있지만,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가령, 40년 간 평균 월급이 500만 원을 받은 사람은 실제 평균 월급을 500만 원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최근 3년간 국민연금 가입자 전체의 평균 소득을 합쳐, 또 그 평균을 계산합니다. 최근 3년간 가입자 평균 소득이 200만 원이라면 이 사람은 500만 원과 200만 원의 평균인 350만 원이 이 사람의 실제 소득이 되는 겁니다. 여기서 소득대체율이 40%라면 매월 국민연금은 140만 원입니다. 반대로, 평균 월급이 100만 원인 사람을 생각해보죠. 최근 3년간 전체 가입자 평균 소득이 200만 원이므로, 평균 소득은 150만 원이 됩니다. 그럼, 여기에 소득대체율 40%를 적용하면 60만 원이 되는 셈입니다.

결국, 500만 원을 월급을 받은 사람과 100만 원 월급을 받은 사람은 월급이 5배가 차이나지만, 받는 연금은 각각 140만 원과 60만 원으로 2.3배 정도 차이로 그 격차는 줄어듭니다. 소득이 높은 사람은 자기가 받을 수 있는 연금보다 덜 받고, 소득이 낮은 사람은 받을 수 있는 연금보다 더 받는 구조인 셈입니다. 소득대체율 올리면 소득이 낮은 사람은 더 많이 챙겨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국민연금은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시장 논리’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노후 생활을 걱정하는 ‘복지 논리’가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돈이 없다고 무상급식, 무상보육을 무작정 폐기할 수 없듯 말입니다.
그래픽_국민연금 보
반론도 있습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개개인이 내는 보험료는 덩달아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금을 장기 체납한 자영업자나 더 나아가 무직자들의 부담도 자연히 커집니다. 더군다나 사업주는 근로자의 월급의 4.5%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부담하고 있는데, 공장 임대료도 제대로 내지 못내는 영세 사업주 입장에서는 이게 또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을 국민연금 체계 밖으로 쫓아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소득 재분배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을 양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소득 재분배에 앞서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 지점이 바로 보수 진영의 논리입니다. 역시 설득력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요즘 뜨거운 이슈인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논란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보편성을 통해 선별성을 흡수할 것인지, 혹은 선별성을 전제한 뒤 보편성으로 확대시킬 것인지, 이건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에서 많이 봐왔던 복지 철학 논쟁의 쟁점이었습니다. 다만, 급식이냐, 보육이냐, 연금이냐 재화의 성격이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복지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문제를 지나치게 기술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여야가 공무원 연금을 합의한 바로 다음날, 복지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면 2083년까지 1669조 원이 더 지출된다는 식의 자료를 뿌렸습니다. 공무원 연금개혁으로 절감되는 333조 원과 은근 슬쩍 비교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거죠. 여기에는 매년 걷히는 국민연금 연금보험료 40조 원을 계산하지도 않고 지출 비용만 따져서 계산한 결과입니다. 다음 날 언론에는 “공무원 연금 ‘혹’ 떼려다 국민연금이란 ‘더 큰 혹’을 붙였다.”, “333조 원 아끼려다 1669조 원 더 나가게 생겼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습니다. 국민 복지를 책임지는 복지부가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깎아내버리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은 이제부터입니다. 100만 공무원이 받게 될 연금도 이 정도였는데, 2000만 명이 받게 될 연금 문제는 그 파장이 훨씬 클 수밖에 없습니다. 복지부가 국민연금을 지금처럼 재정문제로만 접근하는 건 스스로를 복지 논란에서 소외시킬 뿐입니다. 복지부는 돈 보다는 철학부터 먼저 고민하는 게 맞습니다. 돈 걱정은 일단 기획재정부에서 해 줄 겁니다. 그게 복지부의 존립 이유이며, 그래야 논란도 좀 더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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