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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 피겨, 평창올림픽에서 들러리 설 것인가?

[취재파일] 한국 피겨, 평창올림픽에서 들러리 설 것인가?
29일 중국 상하이에서 2015 세계피겨선수권대회가 막을 내렸습니다. 올 시즌을 마감하는 마지막 대회였습니다. 여자 싱글에 출전한 박소연이 12위, 김해진이 19위를 차지했고 남자 싱글에 처음 나선 이준형은 19위를 기록했습니다. 3명의 선수는 어제 오후 나란히 귀국했습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피겨는 세계 정상급 수준과의 현격한 격차를 절감했습니다.

남자 싱글 우승자인 하비에르 페르난데스(스페인)의 합계 점수는 273.90점으로 이준형보다 무려 70점 이상이나 높았습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금메달을 따낸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러시아)의 합계 점수는 210.36점으로 박소연보다 50점 가까이 많았습니다. 육상 100m로 치면 9초대 선수와 10초대 선수의 차이로 '피겨 여왕' 김연아의 은퇴 이후 한국 피겨스케이팅이 처한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입니다.

가장 아쉬운 선수는 당연히 '포스트 김연아'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박소연입니다. 꼭 1년 전인 2014년 3월 세계선수권에서 박소연은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 스케이팅 합계 점수에서 개인 최고점(176.61점)을 작성하며 당당히 9위에 올랐습니다. 17살의 나이에다 처음 출전한 무대에서 거둔 성적이었기에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청신호를 켰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이대로 차근차근 성장하면 김연아 수준까지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나름 정상급 선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의 3월의 박소연은 발전은 커녕 오히려 후퇴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본인은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포츠는 결국 결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 대회 합계 점수는 160.75점으로 지난해보다 오히려 15점 이상이나 뒤졌습니다.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돼온 '프로그램 구성점수'(예술점수)도 나아진 게 없습니다. 틈틈이 김연아의 지도까지 받았지만 심판들의 채점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박소연이 고개를 숙인 가장 큰 이유는 전략상의 실수입니다. 올 시즌 내내 쇼트 프로그램에서 두 번째 점프는 '트리플 러츠'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트리플 플립'으로 변경했습니다. 세계선수권을 준비하는 훈련 과정에서 '트리플 플립'의 성공 확률이 더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판단은 결과적으로 틀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박소연은 '트리플 플립'을 시도하다 크게 넘어지는 실수를 범했고 여기에서 수행점수가 2.10점이나 깎였습니다. 톱10 진입 무산의 결정적 요인이 된 것입니다. 훈련과 실전은 엄연히 다릅니다. 더군다나 세계선수권은 올림픽 다음으로 가장 큰 대회입니다. 긴장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방상아 SBS 피겨 해설위원도 이 실수를 특히 아쉬워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못해도 그만이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해 성적이 좋았다. 그런데 올해는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1년 동안 해온 숙달된 프로그램이 있는데 플립이 더 편하다고 바꾼 게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킨 것 같다. 박소연은 좋은 선수이지만 국제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선수는 아니다. 본능적으로 연기가 이뤄져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주춤하면서 타이밍을 0.01초라도 놓치면 바로 실수가 나온다. 트리플 플립에서 큰 실수만 없었다면 충분히 톱10에 진입할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쉽다." 

남자 싱글에 출전한 이준형은 최선을 다했지만 합계 197.52점으로 자신의 최고점(203.92점)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남자선수들은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뛰지 못하면 중위권 진입도 쉽지 않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됐습니다. 이준형의 경우 트리플 점프도 완벽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준형의 라이벌로 불리는 김진서가 출전했어도 순위는 별로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본적으로 월드 클래스와의 수준 차가 너무 크다는 얘기입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지난해 12월 대한체육회에 제출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목표'에 따르면 피겨 스케이팅은 메달을 따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했습니다. 현실적으로 틀린 예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차피 메달을 따지 못할 것이라 예단해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국내 피겨인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국인 코치 영입을 비롯해 빙상경기연맹이 여러 방법으로 최대한 지원할 경우 홈 링크의 이점을 고려하면 여자싱글에서 5-6위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유망주를 집중 육성한 러시아가 지금 그 열매를 거두고 있는 것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이런 경기력으로는 3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은 커녕 톱10 진입도 요원한 상태입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를 배출하며 지난 7-8년 동안 세계의 주목을 한국 피겨가 정작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남의 잔치'에 들러리를 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 당국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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