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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워싱턴에서 본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

[월드리포트] 워싱턴에서 본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
워싱턴에서 느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가 다른 곳도 아닌 동맹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칼부림을 당했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리퍼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상원의원일 때 의회에서 보좌관으로 일했고, 집권하고 나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외교정책을 보좌했다. 또 주한 대사로 지명되기 전까지 척 헤이글 당시 국방장관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그러니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 지인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수술 직후에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병실로 위로 전화를 걸었다.
 
백악관에서 리퍼트와 일하다 국무부 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토니 블링큰은 서울 방문 때 리퍼트 대사와 삼계탕 집에서 같이 식사를 했는데, 두 사람이 식당 앞에서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려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백악관 내 많은 사람들이 대선 때 뿐 아니라 그 뒤에도 리퍼트와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다며, 이번 사건은 "거칠게 표현하면 꽤 끔찍하다(scary)"고 기자들에게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백악관 NSC의 벤 로즈 부보좌관, 국무부의 젠 사키 대변인, 마리 하프 부대변인 등 오바마 행정부 인사들의 발언이나 트윗을 보면 정말 내 식구, 내 친구가 힘든 일을 당했구나 하는 느낌이 묻어났다.
 
● 차분한 대응…안전이 우선
 
그런 한편으로 이번 사건을 대하는 미국 정부의 태도는 의외로 차분했다. 미국 정부도, 언론도 우선 관심은 리퍼트 대사의 건강 상태, 그리고 안전과 경호 문제였다.
 
사건 발생 뒤 이틀이 지난 금요일(6일)에야 첫 브리핑이 열렸다. 때 아닌 춘삼월 폭설로 목요일엔 미국 정부가 하루 문을 닫았다.
 
국무부 브리핑 앞머리엔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임 때 사적 메일 계정만 사용했다는 이른바 '이메일 게이트'에 관한 질문이 끝 모르게 이어졌다. 자국 대사 피습 사건에 이렇게 관심이 없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30여 분이 지나자 봇물이 터졌다.
 
안전과 경호 문제에 대한 질문이 차근차근 또 날카롭게 쏟아졌다. 기자들은 정부가 외교 사절의 안전을 위해 적절한 사전 조치를 취했느냐고 캐물었다.
 
마리 하프 부대변인은 한국은 총기 규제도 엄격하고 안전한 국가라고 거듭 강조했다. 어떻게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과 평화로운 뉴질랜드 주재 외교관의 경호 수준이 똑같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 '테러'와 '공격' 사이
 
미국 정부와 언론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테러(terror)'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있다. 국무부는 오늘(9일) 두 번째 브리핑에서도 'attack' 즉 '공격'이란 표현을 썼다.
 
사건 직후 첫 국무부 성명에서는 'act of violence' 즉 '폭력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외교 수장인 존 케리 국무장관은 트위터에서 가족들을 위로하고 한국민들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면서 'senseless attack' 즉 '분별없는 공격'이라고 표현했다.
 
그 다음 나온 국무부 성명에서도 무분별한 폭력 행위(senseless acts of violence)라는 같은 표현을 이어갔다. 장관의 트윗을 통해 이번 피습 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리된 입장을 공표한 것이다.
 
국무부에 직접 물어봤다.
 
한국에서는 일부 언론과 정부 안팎에서 이번 피습 사건을 테러 행위로 보는 시각이 있다,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마리 하프 부대변인은 장관이 말한 그대로라면서 "끔찍한 폭력 행위"라고 거듭 답했다.
 
범행 동기나 당시 상황을 상세히 모르는데 어떻게 앞서서 규정을 하느냐고 반문했다.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한 기자가 스티븐스 대사 등 미국 외교관들이 무장 공격에 목숨을 잃은 리비아 벵가지 사태 이야기를 꺼냈다. 하프 부대변인은 이번 일은 완전이 상황이 다르다면서 벵가지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사실 무엇이 '테러'인가에 대해서는 국제법적으로 합의된 정의가 없다. 어느 학자는 테러의 정의를 내리려다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사건은 사건이되 ‘정치적 사건’, 즉 정치적 의도와 해석이 강하게 개입될 수밖에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에서는 9.11 테러나 보스턴 마라톤 테러, 여객기 납치 폭파 사건 등을 이론의 여지없이 테러로 규정하고 있다.
 
행위의 요소를 살펴볼 수밖에 없는데, 정치적 목적의 폭력 행위이면서 대중의 공포감을 유발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이 조용한 건 일단 테러로 규정하면 보복에 나서야 한다, 또 동맹국에서 발생한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는 건 미국 정부로서도 부담이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9.11 테러로 국민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대테러 전쟁까지 치르고 있는 미국에 이번 사건이 테러냐 아니냐 물은 건 좀 '실례'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테러의 잣대를 꼭 미국에 맞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문제는 보편성과 일관성, 그리고 남용의 우려다.
 
이성철 월드리포트
지난 6일자 워싱턴 포스트를 보면 리퍼트 대사 피습 소식이 국제면 10면에 크게 실렸다. 그런데, 국제면 8면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역시 큼직하게 실렸다. 중국이 제정하려고 하는 '반테러법'에 대해서 인권 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인권 단체들은 "국가가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면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이라며 신장 위구르의 분리 독립 세력이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테러 사건 관련 수사가 개시되면 중국 내 미국 기업들도 관련 정보를 사법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이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워싱턴 포스트 국제면 앞뒤로 실린 두 기사는 직접 관련이 없음에도 맥이 닿는다.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은 ‘반테러법’을 놓고 중국과 미국 정부가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 터진 고약한 사건인 셈이다. 이번 일이 중국이나 러시아 또 세계 각국의 이른바 '테러' 문제를 미국 정부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단면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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