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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는 왜 참사에서 배우지 못하나?

'희생양 찾기'에 급급한 '내재화'적 해결…제도 개선 뒤따르는 '외재화'는 요원

[취재파일] 우리는 왜 참사에서 배우지 못하나?
 세월호 침몰사고는 한국사회가 90년대에 경험했던 사고들과 너무 닮아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과거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서구 국가들이 200여 년에 걸쳐 이룬 산업화를 우리나라는 1960년 대 이후 50여 년 동안 빠른 속도로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압축적 근대화는 다른 나라들의 몇 배 되는 위험을 감수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은 물질만능주의, 결과지향주의, 생명경시, 강자우선, 약자경시, 속도지상주의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국의 경제 지표를 보면 휴대전화 세계시장 점유율 1위, 반도체 2위, 철강 1위, 석유화학 1위, 조선 1위 등 10대 무역 국가이지만, 질적 지표를 보면 낮은 삶의 만족도와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 그리고 산업재해율, 여기에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 소득 격차는 악화 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세월호 침몰은 ‘GDP’ 위주의 양적 -고속성장 지향 이면의 총체적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고라고 할 것입니다.

11월 12일 개최하는 SBS 제12차 미래한국리포트 '한국사회 재설계: 공공성과 착한성장사회'에서는 한국사회가 과거의 사고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한 원인을 이론적으로 규명하고, 앞으로 한국사회의 시스템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분석할 계획입니다. 행사에 앞서 취재파일을 통해서 그 내용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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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3월 경부선 구포역 탈선사고 78명 사망
            7월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66명 사망
            10월 위도 서해 페리호 침몰 292명 사망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32명 사망
                   충북 충주호 유람선 화재 30명 사망

1995년 4월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101명 사망
            6월 삼풍백화점 붕괴 502명 사망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화재 192명 사망
            6월 씨랜드 화재 23명 사망

2008년 1월 경기도 이천 물류센터 폭발, 40명 사망

2009년 11월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15명 사망

2013년 7월 태안 해병대 캠프 5명 사망

2014년 2월 경주마우나리조트 붕괴 10명 사망
            4월 세월호 침몰 295명 사망     
           10월  판교 환풍구 사고 16명 사망...

 세월호 참사 후 여러 번 되돌이켜봤던 우리 사회의 대형 재난 일지들을 다시 한 번 써봤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대형 사건사고에 반복적으로 노출돼왔는지 또 한 번 깨닫습니다.

1994년, 그러니까 20년 전 정부의 제1국정과제가 '후진국형 인재의 추방'이었는데요.여전히 우리는 후진국형 인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이중위험사회' 대한민국 = 과거형 위험 + 미래형 위험 공존

SBS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위험'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분석했습니다.

우리는 '이중위험사회'에 있다는 진단입니다.

보통 국가들이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발전할수록 과거형 재난의 빈도는 줄어들고 미래형 위험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경제의 외형은 성장했지만 여전히 과거형 재난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미래형 재난의 위협은 커져 두 가지 위험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까지 한국사회를 괴롭힌 주된 재난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묵인된 변칙과 탈법에 기인한 비정상사고들이었습니다. 과거형 재난의 특징은 '안전을 비용으로 인식해 속도에 집착하고', '집단과 제도간 조정의 실패로 발생하며', '정부의 조직실패로 긴급 구난체제가 없고', '기술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된 구조물에서 운영을 잘못해서 발생하며', '부패와 공적 신뢰의 붕괴로 인한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이런 과거형 재난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돼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구조화된 불확실성과 복잡성으로 인한 위험까지 증가하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은 늘어나고, 네트워크로 전부 연결되고,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적 생태계의 파괴 등으로 인해 점진적으로 경계가 소멸되는 것이 미래형 위험사회의 특징입니다. 대규모 화학공장, 핵발전소, 환경호르몬, 유전자 조작식품, 방사성 폐기물과 엘리뇨 같은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 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더 걱정되는 것은 사소한 인간적 오류와 복잡한 시스템이 결합해 파국적 피해를 낳을 수 있는 정상사고(normal accident)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선로전환기의 7mm 짜리 너트 하나 때문에 발생한 KTX탈선사고, 작은 고무링의 부식으로 인해 새어나온 연료가 점화돼 발사 직후 공중 폭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 등이 바로 복잡하고 단단하게 결합된 시스템에서 사소한 인간적 실수나 기계적 결함이 피하기 어려운 돌발적 재난을 만든 것입니다.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로 구성된 지하철, 고속철도, 통신망과 가스배관 등은 늘 돌발적 사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드러난 사고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대형 사고는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위험요인들이 축적되고 숙성된 결과입니다. 예외적 일탈이라기 보다는 피라미드 분포의 정점에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산업재해를 연구한 미국의 학자 하인리히는 한 번의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미 그 전에 유사한 29번의 작은 사고들이 있었고, 그 이면에는 300번의 이상 징후가 감지됐었다는 유명한 '하인리히 법칙'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취파
 이렇게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 인지하고 있고, 재난이 발생하면 여론의 질타 속에 정부는 대책을 쏟아내고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지만 사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그리 크게 변하지 못했습니다.

● 달랑 5권 뿐인 재난 백서…내용도 부실 

 대표적인 예가 사고 후 작성하는 '백서'입니다. 사고가 왜 발생했고, 수습과 구호 과정의 문제점은 뭐였는지 낱낱이 적시한 백서는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사고 후 대응을 파악하기 위해 찾아보니, 지난 20년간 백서는  6개 사고(서해페리호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씨랜드 천안함 대구지하철)에 대한 것밖에 발간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천안함은 북한 공격에 의한 사고라는 점을 감안해 제외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재난 백서는 5권에 지나지 않습니다.

개수가 적다면 내용이 충실한 걸 기대했는데요, 재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사고 백서가 선진국에 비해 향후 과제,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부분이 미흡해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다시 펴보고 학습하기보다는 먼지가 쌓여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의 활동위주로 작성돼 문제점을 어떻게 고칠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 그 문제점을 제대로 고쳤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6개 사고 백서에서는 ‘부실한 설계, 무리한 허가 유지 관리와 안전진단 미비 규정 위반 운행, 전문 인력 부족, 지도감독 미흡, 구조과정의 초동조치 미흡, 현장 지휘체계 혼선’ 등의 문제점이 빠지지 않고 반복해서 발견됐습니다. 반복되는 재난을 겪고도 그걸 통해 배우고 변화하지 못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책임자 엄중처벌, 재발 방지를 다짐한 정부 대책도 되풀이돼왔습니다.  
정부 대책은 '백화점식 종합대책'과 '위원회 구성'으로 요약되는데요.

해상안전사고 종합방지대책(서해페리호), 건설재해예방을 위한 종합대책(성수대교), 건설부실방지 및 건설산업경쟁력 강화대책(삼풍백화점), 지하철 운영과 방재에 관한 종합안전대책(대구지하철) 등 방대한 대책이 쌓여갔습니다. 때때마다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각계 전문가들을 모시고 회의를 거듭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 대책은 얼마나 지켜졌을까요?  

이미 서해페리호 사고 때  과적, 과승에 대한 엄격한 행정지도, 노후선박 교체 등을 선언했었고, 성수대교 사고 이후 부처별로 난립돼있는 재해업무 일원화와 응급신고체계 통합,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후 미국 국가교통위원회(NTSB)와 같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고조사 기관 신설 등은 거듭 거론됐지만 실현되진 못했습니다.

● 재난통합지휘무선통신망 사업 12년째 '표류'…세월호 참사로 다시 등장

대표적인 예로 재난 통합지휘무선통신망사업을 보면 정부 대책 실행의 난맥상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대구지하철 참사 때 경찰, 소방서, 지하철 공사가 서로 다른 무선통신방식을 사용해 구조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자 이건 고쳐야겠다 약속을 내걸었지만, 12년째 논의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최근 세월호 사고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다시 등장하자 국회에서 공청회를 여는 등 또 다시 논의를 시작했는데, 과연 이번에는 매듭을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실패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않는 것입니다. 사고 발생 하루 만에 현장을 물청소하고 덮어버리기에 급급했던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실무자 처벌과 희생자 위자료 지급으로 사건을 종결하려 했던 삼풍백화점식 대처방식은 곤란하다는 말입니다.

● '희생양 찾기 후 종결'…'내재화' 해결로는 변화 요원

과거의 실패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한 건 재난 후 우리사회의 학습 사이클에 큰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분발하여 더 열심히 노력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더 나은 결과를 얻습니다. 이것을 '단일순환학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노력해도 실패가 반복된다면, 그동안 당연시해 온 시스템의 전제와 가정까지 재검토해본 뒤에 목표와 전략을 수정하는 근본적 혁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이중순환학습'이라고 부릅니다.
취파
 어떤 위험원인이 있을 때 이를 가볍게 여기고 관용하게 되면, 정책이나 제도를 그냥 두거나, 오히려 안전관련 규제를 완화시키게 됩니다. 그럼 재난을 피하지 못하게 됩니다.

위험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고 할 경우 위험통제전략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내재화' 전략을 쓸 경우, 누구 탓인지 희생양을 찾는 노력에 집중하게 됩니다. 즉, 주무 장관의 사표를 받고 실무자를 처벌하지만, 정책은 종결되거나 백지화, 혹은 교착되고, 다시 재난은 반복됩니다. 삼풍백화점 사고 때 실무자를 처벌하고 세월호 참사때 유병언의 시신을 쫓는데만 집중하는 것이 '내재화'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안에서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시스템의 변화 없이 희생과 재난 간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셈입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위험통제전략을 '외재화'해야 합니다. 문제를 외부에 명백히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외부전문가까지 참여하여 재난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시스템이 전제해온 가정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조직의 전략과 체질까지 바꾸어야 합니다. 내부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면 다르게 지적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엽적인 문제에만 매달리지 않고 시스템적인 개선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 ‘외재화’적 해결이 필요한 이윱니다.

위험을 관용하지 않으려면 객관적 기준을 만들고, 안전에 드는 비용을 가격에 반영해야 합니다. 법 따로, 실행 따로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대로 된 규제가 되어야 하고, 부패에 대한 원천적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재난 시에 작동하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도나 부처이름만 바꾸어서는 안 되고, 현장에 가까운 부처에 자원과 권한을 대폭 넘기고, 부처 간 조정능력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  재난 때 가장 쉬운 건 '비난'…'정치적 공방으로 문제 본질 놓쳐'

그렇다면 우리는 왜 외재화에 번번이 실패하는 걸까요?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는 “정치적 이유가 가장 크다. 문제가 있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이 비난이다. 책임자를 찾아서 비난하려면 그 비난의 가정이 정치화가 된다. 정치화가 되면 책임을 추궁하는 쪽과 방어하는 쪽의 정치적인 공방이 돼버린다. 정치적 공방으로 가면서 문제의 본질 자체는 간과된다.”고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비난의 정치가 활성화되면 진짜 재난을 낳았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관심을 놓치고 방치되고 학습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이재열 교수는 또 "이렇게 볼 때 세월호 참사는 단일순환학습만 반복한 결과 나타난 ‘숙성형 사고’였다"며 "곳곳에 널려 있는 위험 징후들을 간과했고,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는 것을 기피했으며, 설령 개개인이 위험요소를 인지한다 하더라도 조직 차원에서 전체적인 양상을 종합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압축성장이란 과실은 일부 집단이 취하고 그 부작용으로 응축된 위험이 재난으로 터져 나오는 패턴은 이른바 '이익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되는' ‘비정상’의 전형입니다.

GDP가 늘어나는 양적성장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질적으로 성장한 선진국으로 거듭나려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반복되는 재난에도 배우지 못하는 비정상’이 정상화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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