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 정보요원 암살표적으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카라 무르자
러시아 정보당국이 이례적으로 미국 영토 내에서 러시아 반체제 인사를 암살하려 시도한 정황이 법원 문서에서 드러났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정보당국은 미·소 냉전 시절부터 서로 상대국 영토에서는 암살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일종의 신사협정을 지켜왔는데, 이번 사태로 이 같은 불문율이 깨졌다고 이 신문은 소개했습니다.
가디언 보도와 미 법무부가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뉴욕 남부연방지검은 지난 15일 테러 자금 조달 및 청부살인 공모 혐의로 전직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대령 유리 흐라메예프(63)와 그의 아들이자 현역 FSB 장교인 키릴 흐라메예프(27) 등 5명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검찰이 이들 5명의 신병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궐석 상태에서 미 법무부는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공소사실을 공개했습니다.
러시아 정보체계(RIS) 네트워크에 속하는 이들은 전 세계의 러시아 반체제 인사와 우크라이나 지원국을 겨냥한 암살 및 사보타주(파괴 공작)를 모의한 혐의를 받습니다.
검찰은 특히 이들이 미국 워싱턴DC에 거주하는 저명 러시아 반체제 인사를 감시하고 암살하기 위해 지난 7월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베네수엘라 국적자를 포섭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미 법무부는 해당 인사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가디언은 암살 표적이 러시아 야권 운동가 블라디미르 카라 무르자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습니다.
언론인 출신인 카라 무르자는 러시아에서 복역 도중 지난 2024년 미국과의 수감자 교환 프로그램으로 풀려난 인물입니다.
흐라메예프 등은 이 미국 거주 반체제 인사를 암살하는 대가로 4만 달러를 주겠다고 베네수엘라 국적자에게 제안했지만, 그가 암살 제안은 거절했다고 검찰은 설명했습니다.
가디언은 러시아 정보당국이 미국 영토에서 암살을 모의한 것은 냉전 이후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러시아 정보당국 요원들은 미국 본토에서는 암살 작전을 펼치지 않았고, 미국 정보당국도 러시아 땅에서 유사한 규칙을 지켜왔다는 게 가디언의 설명입니다.
이 같은 암묵적인 신사협정은 냉전 시기부터 오랜 기간 이어져 왔는데, 법무부의 기소 내용은 최근 러시아가 이 같은 금기를 깬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미 정보당국 고위직을 지낸 크리스토퍼 코스타 국제스파이뮤지엄 관장은 가디언에 "미국과 소련은 서로 공격적인 첩보 활동을 펼쳤지만, 특정 영역에서 암묵적인 한계선이 있었다"며 "만약 미국 영토에서 감시와 암살을 지시한 혐의가 사실로 증명된다면 전통적인 첩보활동과는 매우 다른 것이며 선을 넘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유 러시아 재단의 나탈리아 아르노 대표도 "우리는 크렘린궁이 미국 영토에서 그런 대담한 짓을 저지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판도가 바뀌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 법무부가 용의자 신병을 확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번 사건 공소장을 갑자기 공개한 것도 일반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미국 대테러 연구기관 수판센터의 니키 류바르스키 연구원은 미국의 공소장 공개 시점에 대해 "연방 하원이 대러시아 제재안을 의결하고,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러시아를 방문한 시점과 일치하는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종의 긴장 고조가 막후에서 진행 중일 가능성이 있다"며 "그것은 러시아의 이란에 대한 정보 공유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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