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7일 방송된 '응답하라, 자유와 도전!'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H.O.T. 토니안, 배우 한소은, 개그우먼 김효진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사랑은 인터넷을 타고
때는 2003년 2월 23일. 부천에 사는 22살 이시언 씨는 늦은 오후 신촌 번화가를 걷고 있었어. 몇 주째 이날 만에 손꼽아 기다려온 시언 씨는 평소보다 헤어스타일도 신경쓰고 가장 멋진 옷으로 깔끔하게 차려입었어. 어딘가 모르게 긴장한 모습이야. 지금 시언 씨 뭘 하러 가는 걸까?
화려한 간판 시끌벅적한 거리를 지나 발걸음을 멈춘 곳은 한 2층짜리 술집. 계단을 올라 2층에 다다르자 한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쫙 모여있어. 시언 씨, 우물쭈물 다가가서 인사를 해. 그러자 너나 할 것 없이 시언 씨를 반갑게 맞이하는데, 시언 씨는 어쩔 줄 몰라 해. 왜냐? 이 사람들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거든.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시언 씨 손에는 술잔이 들려있어.
그때 누군가 "이제 다들 모인 것 같은데 슬슬 시작해야지"라고 말해. 그리고 어디선가 케이크가 나오고, 생일 축하곡을 다같이 불러.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쌍둥이~ 생일 축하합니다~"
"얘들아, 우리 모두 생일 축하한다!"
아니, 스무 명이 모였는데 쌍둥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여기 모인 스무 명, 그리고 시연 씨까지 전부 다 오늘이 생일이야. 게다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스물 두 살 동갑이야. 1982년 2월 23일 생인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인 거지.
"그때는 쌍둥이라고 얘기를 많이 했어요. 82년 2월 23일 생인 친구들. 말 그대로 쌍둥이들. 재밌었던 게 서울에만 국한되지 않고 부산에 있는 친구, 창녕에 있는 친구, 구미에 있는 친구. 다양하게 각지에 있었던 것 같아요."
-이시언, 820223 쌍둥이 모임 회원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무려 스무 명이나 모였어. 이 사람들 대체 어떻게 만나게 된 걸까? 시언 씨가 쌍둥이들을 어떻게 찾았는지 알려줄게.
추억의 컴퓨터. 바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거야. 시언 씨는 컴퓨터를 하다가 우연히 이 커뮤니티를 발견했어. 커뮤니티 이름은 '82년 2월 23일 태어난 쌍둥이'. 회원 수가 무려 200명이야. 수줍음 많은 시언 씨는 한참 온라인 상에서 대화만 나누다가, 22살 생일날 용기를 내서 처음 모임에 나갔어. 난생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도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금세 친해졌대.
한참 재밌게 놀고 있는데, 건너편에 앉은 한 여성에게 자꾸 눈길이 가. 이름은 박상미. 나이는 똑같이 22살. 상미 씨는 이 모임에 참석하려고 경북 구미에서 새벽부터 올라온 열혈 멤버야. 동그란 얼굴에 긴 곱슬머리가 너무 귀엽고 성격도 아주 발랄하더래. 완전 이상형이었던 거야. 상미 씨에게 첫눈에 반한 시언 씨. 그 뒤로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기 시작해. 오직 그녀를 보러 부천에서 구미까지 서슴없이 달려가.
"그냥 좋았어요. 그 친구 딱 보는 순간. '이 친구가 있으면 계속 평생 즐겁게 살겠다' 마음에 딱 들어서요. 적극적으로 왔다 갔다…"
-이시언, 820223 쌍둥이
이 둘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두 사람은 결국 결혼에 골인했어.
"저희 2003년도에 만나서 연애하고 그리고 결혼해서 지금까지 23년 살고 있습니다."
-아내 박상미
"말 그대로 운명 같아요. 제 인생에 어떻게 보면 신기함을 갖고 살고 호기심이란 걸 갖고 살고, 그걸 아이들한테도 얘기를 많이 해요. 운명은 언제든 겪어볼 수 있는 일이다."
-남편 이시언
"항상 사람들 만나면 자랑하죠. 우리는 자랑거리예요."
-이시언-박상미 부부
소중한 쌍둥이 친구들과 지금의 아내까지 커뮤니티에서 만나게 된 거야. 시언 씨에게 온라인 커뮤니티란 어떤 존재인 것 같아? 이제는 사실 우리 모두 인터넷이랑 때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잖아. 불과 3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
▲ 응답하라 PC통신
지금은 90년대 후반. 서울의 용산 전자상가야.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미국인이 소리치고 있어.
"이 그래픽카드를 컴퓨터에 넣으세요. 신세계가 펼쳐질 겁니다!"
전자상가 곳곳을 누비면서 영업을 펼치는 이 사람. 너도 아는 사람일 거야. 바로 세계 최대 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야.
그런데 왜 미국인인 젠슨황이 용산에서 컴퓨터 부품을 팔고 있는 걸까? 이 모든 건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됐어.
To. 젠슨 황. 제게는 한국을 위한 비전이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비전입니다. 저는 한국의 모든 국민을 초고속 인터넷으로 연결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모두가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젠슨황.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From. 이건희.
"저는 누군지 몰랐던 이로부터 그 편지를 받았습니다. 아주 아름답게 적힌 글이었습니다. 편지에는 '나에게는 비전이 있습니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한국을 위한 비전이 있습니다'라고요."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우리 아버님 이건희 회장님이 보내신 편지였어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 회장의 편지에 감명 받은 젠슨 황이 직접 한국을 찾아왔던 거야. 젠슨 황은 한국에서 아주 특이한 풍경을 하나 보고는, IT 산업의 미래를 꿈꾸기 시작해. 바로 한국만의 PC방 문화. 세계적으로 독특한 PC방 문화가 시작된 게, 90년대 후반이야. 당시 유행하던 게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스타크래프트 게임, 그리고 하나는 이거야.
이건 컴퓨터를 온라인에 연결하는 모뎀이야. 이것을 컴퓨터에 연결하면, 파란 바탕에 하얀 글씨가 뜨는 화면이 나와. 바로 PC통신이야. PC통신은 전국의 모든 곳에서 온라인으로 대화를 할 수 있게 연결해주는 서비스야.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사람들은 PC통신에 푹 빠져 살았어. PC통신에 접속하면 모르는 사람과 채팅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거든. 이걸 소재로 만들어 대박난 영화가 배우 한석규와 전도연 주연의 '접속'.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고, 내가 쓴 글이 전국에 퍼져 인기를 끌고. 이게 얼마나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었는지. 하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었어.
"이번 달 전화비가 왜 이렇게 많이 나왔어? 너 컴퓨터 작작하라 그랬지 아빠가!"
PC 통신은 전화선을 통해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방식이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썼다간, 전화 요금 폭탄을 맞는 거야. 또 다른 문제는 전화와 PC 통신을 동시에 사용할 수 없었어. 누군가 통화하는 동안에는 PC 통신에 아예 접속이 안돼. 마음대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던 시절이었지.
▲ 닷컴 열풍의 시작
그러던 1998년. 우리나라에 초고속 인터넷 시대가 열려. 집집마다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온라인 세상도 달라졌어.
파란 바탕에 흰 글씨 뿐이던 화면에 이런 알록달록한 웹사이트들이 펼쳐진 거야. 당시에 초고속 인터넷이 뜨면서 같이 떠오른 키워드가 있거든. 바로 '벤처'. 지금으로 치면 스타트업 같은 거야.
너도 나도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겠다고 창업에 뛰어들면서, IT 벤처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거지. 이른바, '닷컴 열풍'이 불기 시작한 거야. 당시 인터넷 사이트 주소를 '.com' 형태로 짓는 게 유행하면서 생겨난 말이야. 근데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냐면, 지금 주식시장에서 반도체 기업들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지? 그때 닷컴 기업들이 그 정도였어.
"웹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고 다음, 한메일, 그리고 네이버. 정말 다양한 기업들이 그때 당시에 회사를 창업했던 것 같아요. 대기업에 다니던 훌륭한 인재들이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했던 그런 가능성도 엄청 넘쳐나던 시기였죠."
-김지현, IT 전문가·테크 라이터
"코스닥 시장이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습니다. 연속 16일째 상승이라는 진기록을 수립한 것입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 수상한 회사와 천재 CEO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99년. 25살의 대학생, 최소현 씨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어. 졸업 직전 대학생의 제일 큰 고민은 취업이지만, 소현 씨는 그런 걱정이 없었어. 일단 학벌이 좋아. 서울대 산업디자인과생이야. 게다가 이미 입사하기로 한 회사가 있어. 그때나 지금이나 평생 직장이라 불리는 대기업, 삼성에 철석 붙은 상태야. 미래가 창창해 보이지.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에게 전화가 왔어. 후배는 얼마 전에 새로 생긴 한 IT 벤처 회사에 들어갔는데, 이 회사의 명함을 만들어야 해서 산업디자인과생인 소현 씨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야. 소현 씨는 흔쾌히 일을 도와주기로 했어. 그런데 회사 이름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해. 회사 이름이 뭔가 이상하거든. 당시 상황을 소현 씨한테 직접 들어볼게.
"당시는 일단은 굉장히 다양한 IT 기업들이 막 올라오기 시작했었을 때라, 이미 이런 회사들이 많이 생기고 있구나라는 트렌드는 알고 있었을 때고. 다만 비단 명함 정도밖에 안 만드는 거지만, 이 회사 이름은 왜 '자유와 도전'인가. 굉장히 단순하구나... 처음엔 조금 촌스럽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고. 자유와 도전이 뭐예요…"
-최소현, 현 네이버 디자인부문장
자유와 도전. 어떤 회사 같아? 소현 씨가 후배한테 "너네 회사는 뭘 하는 회사야?"라고 물었어. 그랬더니 후배가 이렇게 말해.
"아, 그거는 지금부터 생각을 해봐야 돼요."
이게 무슨 소리야? 황당하지? 그런데 소현 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대. 그런데 며칠 뒤 그 후배가 또 연락을 해와. 일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회사 대표가 한 번 만나자고 했다는 거야. 며칠 뒤에 소현 씨는 이 자유와 도전이라는 회사로 향했어. 서초에 있는 작은 빌딩 안에 사무실이 있어. 문을 열어보니까 크기도 작고 직원도 몇 명 없어. 한쪽에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더니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있어. 바로 이 사람이야.
자유와 도전의 대표이사 이름은 전제완. 근데 이 사람 이력이 장난 아니야. 서울대 경영학과에 삼성물산 출신이야. 근데 삼성물산에 근무하던 시절 엄청 유명하던 사람이었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사건이 하나 있었거든.
때는 1988년.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이 엄명을 내려. "우리 회사에 왜 젊은 피, 젊은 인재가 없어? 훌륭한 인재들을 좀 데리고 와봐"라고. 그때 삼성 인사팀으로 발령받은 사람이 바로 전제완이었어. 전제완이 인재를 뽑기 위해 향한 곳은 바로 대학교. 수많은 대학교를 발로 뛰면서 인재 발굴에 나섰어. 근데 하루에 만나는 학생들만 100명이 넘어. 워낙 만나는 사람이 많다 보니까 누굴 만났는지 특징이 뭔지 잘 정리가 안 되는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체계적인 인사관리 전산 시스템이 없던 거야.
그때부터 전제완은 컴퓨터를 독학하기 시작해. 장장 5년에 걸쳐 새로운 인사관리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버려. 그리고 그가 만든 이 성과물로 삼성그룹 전체의 인사 시스템이 바뀌었어. 그 공을 인정받아서 '제1회 자랑스러운 삼성인상'까지 수상해.
당시 삼성에서 PC 최고 전문가이자 IT 천재로 불린 사람이 바로 이 전제완이었던 거야. 그러던 1997년. IMF 외환위기로 많은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시작해. 삼성그룹 역시 구조조정을 하고 있었어. 다들 회사에서 잘리지 않으려고 노심초사 하는데, 삼성을 제 발로 박차고 나온 사람들이 있었어.
그 중 한 명이 이해진. 지금의 네이버를 만든 사람이야.
그리고 김범수. 지금 국민 메신저 카카오의 총수가 됐지.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바로 전제완이었어. 이때 나와서 만든 회사가 바로 자유와 도전인 거야. 이런 사람이 대표로 있는 회사 어떨 것 같아? 소현 씨와 마주 앉은 전제완 대표. 이렇게 말해.
"소현 씨, 삼성 가기로 했다면서? 물론 대기업 좋지. 그런데 기계적으로 일을 하는 것보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유롭게 일을 해보는 건 어때?"
소현 씨를 지금 스카우트 하려는 거야. IMF의 여파가 이어지던 시기. 안정적인 대기업 입사를 앞두고 있는 소현 씨야.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저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그런 느낌을 처음 받았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약간 헷갈렸죠. '큰 기업도 좋고 다 좋지만 너만의 문제를 너의 자유로움을 가지고 너의 생각대로 한번 해결해보는 건 어떻겠냐' 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너무너무 멋있는 그렇게 화두를 던지셨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약간 '이런 벤처라는 게 뭘까?', '이 대표님이 만드시는 회사가 뭘까?'라는 고민을 이제 머릿속에 조금 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최소현, 현 네이버 디자인부문장
이 알 수 없는 끌림에 결국 소현 씨는 결정을 내려. 대기업 삼성이 아닌 작은 IT 벤처 '자유와 도전'을 선택한 거야. 그때부터 소현 씨는 자유와 도전의 디자인팀에서 일하기 시작해. 그런데 이거 뭐 어떻게 해야 될지 감도 안 와. 명색의 IT 기업인데 디자인팀 그 누구도 인터넷 서비스 디자인 경험이 없었던 거야. 소현 씨가 전 대표를 찾아가 이야기를 했어.
"대표님 이대로는 답이 안 나오는데, 좀 괜찮은 선배 한 명만 데려다 주시면 안 돼요?"
며칠 뒤 전 대표가 회사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데, 한 남성이 따라 들어와. 소현 씨가 가만 보니까 대학교 과 선배야. 그 이름은 조수용.
훗날 네이버와 카카오의 디자인 혁신을 이끌고, 카카오 공동대표가 되는 사람이야.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시절부터 전설로 통하는 엄청난 실력자였대. 산학협력으로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 활동도 했어. 그러던 중 전 대표가 26살이었던 조수용을 디자인팀 총괄로 스카웃을 해온 거야. 이렇게 서울대, 그리고 삼성으로 연결된 선후배들이 하나 둘 '자유와 도전'으로 모이게 돼.
▲ 자유와 도전
그런데 이 회사, 뭐 하는 회사라고 했지? 이제부터 생각을 해봐야 된다 그랬잖아? 직원들이 대표에게 물었어. "근데 대표님, 저희 뭐 하는 회사죠?"라고.
"처음에 '자유와 도전은 뭔가요?'부터 '그래서 무슨 서비스를 어떻게 만들고자 하시는 거예요?' 이런 얘기들을 나눴을 때. '결국 사람이 모이면 뭐든 할 수 있어'라는 거, 그럼 과연 인간은 모여서 뭘 하기를 원할까? 그러면 기술은 인간의 삶에 무슨 문제를 해결해줘야 될까? 이거를 정말 정말 매일 말씀을 하셨던 것 같고요."
-최소현, 당시 자유와 도전 디자인 팀장
"그때 웹은 그냥 'Just Online'이었어요. 이메일, 채팅, 검색, 그 안에서 끝나잖아요. 그런데 대표님이 '결국 인터넷도 사람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람이 모이는 건 모임이고, 그 모임의 영역을 웹으로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결합시켜야 된다…"
-신승식, 당시 자유와 도전 마케팅 팀장
전 대표의 이야기는 이거야. 동호회, 동창회 같은 오프라인 모임을 온라인에서 할 수 있게 하자는 거야. 사람과 사람을 온라인으로 연결해주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만들자!
그때 여기 회사 분위기는, 아주 그냥 자유분방했대. 복장도 남녀불문 반바지에 슬리퍼야. 이때가 1999년이잖아. 보수적이었던 당시 시대상과 비교해, 말도 안되는 회사 분위기지.
"저희 마케팅팀에서 엔지니어팀으로 이동할 때 킥보드 타고 이동하고. 우리끼리도 '야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할 정도로 재밌었어요."
-신승식, 당시 자유와 도전 마케팅 팀장
"저 야식 담당이었거든요. 킥보드에 봉투 하나 걸고 야식 배달 가고. 아마 '배민'의 전신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최소현, 당시 자유와 도전 디자인 팀장
전 대표는 직원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대.
"다 사람이 하는 일이야. 두려워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전 대표는 PC 최고 전문가, IT 천재라고 불렸던 사람이잖아.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직원들의 도전을 물심양면 지원했어.
"엔지니어 분들과 대화할 때 밀리지 않으셨어요. 기술적인 백그라운드가 본인이 공부해서 있었고."
-신승식, 당시 자유와 도전 마케팅 팀장
"기세도 그렇고 뭔가를 설득하는 기질도 그렇고. 영역을 확장해가는 것들, 그리고 그 이유가 너무나 분명했던 것들. 저는 테크 시대에 태어난 나폴레옹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최소현, 당시 자유와 도전 디자인 팀장
회사 이름처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마음껏 도전할 수 있었던 직원들. 매일같이 밤을 새며 일을 해도 너무너무 즐거웠대.
▲ 프리챌 닷컴
마침내, 2000년 밀레니엄 시대가 열렸어. 그리고 2000년 1월 1일 0시 0분, 인터넷 세상에 자유와 도전의 야심작이 첫 공개돼. 바로 이거야.
"아아, 알려드립니다. 마을회의는 인터넷으로 합니다. 주소는 프리챌 컴 다 아시죠?"
사이트 이름, '프리챌'. 자유와 도전을 영어로 하면, Freedom(프리덤)과 Challenge(챌린지) 잖아. 그래서 프리덤 앤 챌린지. 프리챌인거야. 당시 프리챌의 정체성은 바로 로고였어.
모자이크처럼 작은 네모 조각들이 모여서 프리챌 로고를 만들어. 그러니까 여러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서 하나가 된다는 뜻이야. 조수용 디자인 총괄의 작품이야. 당시 다른 사이트들의 초창기 모습은 이랬어.
그에 비해 프리챌은 디자인이 다르지?
보기도 편하고, 다양한 정보가 있는데 심플하게 돼 있어.
"사람들이 몰려서 와글와글하는 서비스일 것이기 때문에, 차가운 기술의 냄새는 최대한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게 기능이긴 하지만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이런 얘기를 저희 디자인 팀끼리도 엄청 많이 나눴고, 대표님도 그걸 원하셨던 것 같고요,"
-최소현, 프리챌 디자이너
▲ 커뮤니티 전성시대
여기서 '커뮤니티 만들기' 버튼만 누르면 전 국민 누구나 쉽게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다 공짜였다는 거야. 커뮤니티 몇백 개를 만들든, 사진을 몇만 장 올리든, 전부 다 무제한인 거지. 이용자들 반응은 어땠을까? 그야말로 대박이야. 프리챌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오픈 3개월 만에 회원 수 100만을 넘어서고, 3만 5천여 개의 커뮤니티가 생겼어.
그 중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한 커뮤니티가 있었어. 대한민국에서 옷 꽤나 입는다는 패셔니스타들이 패션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모인 커뮤니티, 이 커뮤니티의 이름은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 줄이면 '무신사'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패션 플랫폼 무신사, 그 전신이 바로 프리챌 커뮤니티였던 거야.
"제가 프리챌을 알게 된 건 중1 때 여름 이때부터 들어갔던 거 같아요. 패션이나 신발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그때 형들 따라서 많이 활동했던 거 같습니다. 그때는 거기가 패션위크였죠. 좋아하는 애들끼리 모여서 우리끼리 얘기하고 향유하고 이런 게 있었는데, '대박이다 어떻게 조그맣던 게시판 하나가 이렇게까지 커지지?'라는 그런 신기함이었던 거 같아요."
-신현우, '무신사' 커뮤니티 유저
그 외에도 이 세상에 없던 재미있고 특이한 커뮤니티들이 마구 생겨나. 그 중 하나가 바로 '팔사모' 커뮤니티. 회원 수가 무려 8000명이었던 커뮤니티야.
"제가 좋아하는 게 팔씨름이었는데, 저만 좋아할 수 없다, 다른 사람도 분명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막연한 호기심에 프리챌에 커뮤니티를 개설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가입을 한 거죠 전국적으로. 연령대도 굉장히 다양했어요. 10대부터 40대, 50대까지."
-한준희, '팔사모' 회장
"10대 때부터 팔씨름을 너무나 좋아했던 사람인데, 한의원 하다가 바빴는데 우연하게 너무 팔씨름이 생각난 거예요. 혹시나 팔씨름 좋아하는 사람도 혹시나 모여 있을까? 이런 데도 있을까? 우연하게 생각해서 팔씨름을 쳐봤더니 모임이 있는 거예요."
-김경호, '팔사모' 회원
"놀라움의 연속이었죠,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아침에 눈 떠서 커뮤니티에 접속해보면 회원수가 갑자기 100명이 늘어나있고. 또 자고 나면 100명이 늘어나있고. 그런 날의 연속이었죠."
-한준희, '팔사모' 회장
팔씨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야. 팔사모엔 매일같이 이런 글들이 올라왔어.
"저는 강원도 동해 사는데 팔씨름은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드래요."
"이야 반갑구먼유. 저는 충남 사는디 팔씨름으로는 제 적수가 없구먼유."
다들 자기 동네에서 팔씨름을 져본 적이 없다는 거야. 그러던 어느날, 팔사모에 공지가 하나 올라와.
"드디어 창과 방패의 대결이 열릴 예정입니다. 전국에 숨어 계신 고수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팔사모 회장 한준희 씨가 거국적으로 팔씨름 대회를 연 거야. 전국 방방곡곡에서 팔씨름 강자들이 모여들었어. 얼마나 재밌었으면 1박 2일동안 잠도 안자고 계속 팔씨름을 했대.
"정말 덩치 좋으신 제주도에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그분이 올라오셨다가 여러 사람한테 지고 가셨죠. 하하하. 1박 2일동안 팔씨름을 계속 하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연결될 수 있는 고리가 아예 없었어요. 각 지역별로 센 사람들끼리 다만 몇 사람끼리나 있었지. 공통분모라는 거를 프리챌이 만들어준 거죠."
-김경호, '팔사모' 회원
세상에 나 혼자인 줄 알았던 사람들도 온라인 커뮤니티 덕에 모이고 또 교감하게 됐어. 어떤 커뮤니티는 대부분의 회원들이 30대 초반 여성들로 구성돼 있었어. 이건 어떤 커뮤니티일까? 직접 들어볼게.
"저희가 그때 '노처녀 통신'이라는 동호회를 만들었는데, 그 이름 들으면 느낌이 오잖아요. 그 당시에 노처녀라고 불리는 저와 친구들, 30살, 31살, 28살에서 30대 초반 그 사이 친구들이 모여서, 우리가 노처녀라는 소리를 듣고 이렇게 구박을 받으면서 우울하게 살 일이 아니다, 우리끼리 뭉쳐서 즐겁게 살자. 주변에 더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더 잘 지냈어야 노처녀가 안 됐는데, 온라인 세상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쁨? 그런 게 온라인 동호회의 기쁨이었죠."
-최재경, 프리챌 '노처녀 통신' 운영자
이 노처녀 통신에선 특별한 정기모임을 열었어. 이름은 '재활용 파티'야. 뭘 재활용했을까? 나랑 잘 될 일 없는 남성 지인들을 데려와서, 다른 회원에게 소개시켜주는 단체 미팅이야. 완전 로테이션 소개팅이지. 결전의 날, 한 카페에 모인 노처녀통신 회원들이 문 쪽을 바라보고 일렬로 쭉 앉아있어. 잠시 후 남자 3명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일렬로 쭉 앉아있는 여자들을 보고 그대로 나가버린 거야. 이 '웃픈' 에피소드, 지금까지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해. 빨리 누굴 만나 결혼해야 한다는 조바심보다,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난 즐거움이 더 커졌대.
▲ 프리챌의 독주
이렇게 다양한 취미와 사연을 가지고 프리챌에 모인 사람들. 커뮤니티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쌓아갔어. 닷컴 열풍 속, 프리챌이 인기를 끌면서 회사는 승승장구해. 직원들도 삽시간에 늘었어.
"직원이 겁이 날 만큼 늘었어요. 내선 번호 백몇십 번까지는 다 외웠는데, 150명 넘어가고 나서부터는 못 외우겠더라고요. 우리 진짜 여기서 대박 나는 거야?"
-최소현, 프리챌 디자이너
그리고 프리챌은 미국 GE 캐피탈에서 투자까지 받아. GE, 제너럴 일렉트릭. 발명왕 에디슨이 설립한 당시 세계 최대 기업이었어. 지금의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어마어마한 영향력이 있었던 미국의 대표 기업, 그 제너럴 일렉트릭의 금융 자회사가 바로 이 GE 캐피탈이었어. 그런 회사에서 대한민국의 신생 벤처 회사에 투자를 한 거야.
그뿐만이 아니야. 한 남자가 프리챌 사무실에 찾아왔어. 프리챌이 투자 받을 때 기업 조사를 했던 GE 캐피탈 담당자야. 그가 프리챌에 입사하고 싶다는 거야.
"그분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프리챌이 너무 매력있다고 판단해서 GE 캐피탈을 퇴사하고 프리챌에 입사했습니다. 전 그거 보고 '진짜 우리 회사 대단한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신승식, 프리챌 마케팅 팀장
사실 GE 캐피탈이 더 큰 회사인데. 프리챌의 위상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이지? 프리챌에서 만들어진 커뮤니티는 최대 110만 개, 회원수는 천만 명을 달성했어. 2000년대 대한민국 인구가 4600만 명 정도 됐거든. 다섯 명 중에 한 명은 프리챌 커뮤니티에 가입했다는 거지.
▲ 사이좋은 세상
그런데 이 모습을 누구보다 부러워하던 한 IT 벤처 기업이 있었어. 이 기업이 만든 사이트 이름은 '사이좋은 세상'. 사이좋은 세상은 프리챌의 커뮤니티와 비슷한 '클럽'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했어. 하지만 반응은 처참했어. 회원수가 많은 프리챌 쪽으로 사람들이 계속 몰렸던 거야. 게다가 사이좋은 세상은 사이트 디자인부터 투자 비용까지 프리챌과 비교하면 너무 아마추어 같았던 거지.
"거기(프리챌)는 프로고 우리는 아마추어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오 저렇게 하는 거야?' (프리챌은) TV 광고도 하고 그랬으니까. 우리는 부러웠죠. '이야 저렇게 질러야 되는데'."
-이동형 대표, 사이좋은 세상
"프리챌은 기본적으로 자금력과 투자도 많이 받고 제대로 전략이나 이런 걸 잘 세워서 치고 나가고. 그런 부분에서 완전히 확연하게 차이가 났죠."
-이정태 이사, 사이좋은 세상
이 사이좋은 세상은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못 주는 상황이야. 폐업의 문턱에서 대표는 이 사이트를 살릴 마지막 도전을 하기로 해. 전 직원 앞에서 이렇게 얘기했어.
"지금부터 남자와 여자로 나눠서 신규 서비스 하나씩 가져와. 조건은 딱 두 개다. 하나, 사이가 좋을 것, 둘, 돈을 벌 것."
며칠 뒤 남자팀과 여자팀의 발표가 시작돼. "사람들이 사이가 좋으려면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한다"며 남자팀이 가져온 건 바로 채팅 서비스였어. 타 사이트에 이미 넘쳐나던 채팅 서비스는 딱히 신선하지는 않았어. 이어 여자팀의 발표가 시작돼.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으려면, 우선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죠. 사람들끼리 만나게 하려면, 먼저 온라인 상에 나라는 정체성이 생겨야 한다"는 거야. 남자팀과 여자팀 중 누가 이겼을까?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들을 관찰해서 서비스를 디자인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딴 사람하고 사이 좋으려면 나의 정체성이 어딘가 있어야 하잖아요. 우리 그룹 커뮤니티는 그게 없었던 거예요. 이제 이쪽(여자팀)이 이긴 거죠. 여기(남자팀)도 사이 좋게 되긴 하는데, 이거(여자팀)만큼 사이 좋은 것 같지는 않아. 기본적으로 우리 철학이 여기 맞는 거예요. 그 프로젝트가 미니홈피 프로젝트고, 그게 성공해서 싸이월드가 살았죠."
-이동형 대표, 사이좋은 세상
자신만의 이야기와 사진으로 미니홈피를 꾸밀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싸이월드. 사이좋은 세상이라는 철학으로 만든 사이트였어. 벼랑 끝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서비스가 바로 이 미니홈피. 말 그대로 사람마다 하나씩 주어지는 작은 개인 홈페이지야. 쉽게 말하면 온라인 상의 방을 하나씩 분양을 해 준 거야. 나만의 방을 마음껏 꾸며서 나라는 존재를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거지.
싸이월드는 미니홈피 개발에 사활을 걸었어. 그리고 2001년 9월, 드디어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세상에 공개돼. 지금은 싸이월드 서비스가 중단돼서 추억의 미니홈피를 만날 수가 없어.
미니홈피에선 대문 사진부터 자기소개, 방 꾸미기까지 모든 걸 내 맘대로 할 수 있어. 싸이월드만의 야심작이 있어. 바로 '일촌' 서비스. 일촌을 맺은 사람들끼리는 서로 미니홈피에 짧은 글을 남길 수가 있어. 그리고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있지. 바로 BGM. 업계 최초로 선보인 서비스, 그야말로 혁신 중에 혁신이었지.
그리고 미니홈피를 꾸미려면 '도토리'가 필요해. 싸이월드 안에서 사용하는 사이버 화폐야. 방도 꾸미고 친구한테 선물도 하고, 그런 용도였지. 근데 왜 하필 도토리였을까?
"제 고향이 경상북도에 있는 소백산 밑이거든요. 저는 도토리가 익숙해요. 그걸로 딱지치기 했던 기억도 있고. 화폐가 되려면 흔해야 되고, 둘째 친근해야 되고. 결정적으로 100원보다 비싸면 안 되고. 도토리가 화폐해야 되는 이유를 찾았죠. 사이 좋게 하기 위해서."
-이동형 대표, 사이좋은 세상
미니홈피, 싸이월드 대표의 마지막 희망이었다고 했잖아. 반응은 어땠을까? 장난 아니었지. 미니홈피부터 BGM, 도토리, 싸이월드가 처음 시도한 모든 게 다 대박을 치기 시작한 거야.
"지금 인플루언서들은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내 일상의 모든 것들을 예쁘게 꾸며서 사람들한테 알리려고 노력하잖아요. 미니홈피는 바로 그 내 아이덴티티, 나의 자아성을 주체성을 그대로 고스란히 만들 수 있게끔 축적할 수 있게끔 해준 거죠. 본질적으로 커뮤니티를 바꾼 거죠. 어떻게? 공동의 공간이 아닌, 찾아가는 게 아니라, 나의 공간 속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혁신적인 새로운 서비스로 리포지셔닝하면서, 대한민국의 네이버, 다음 버금가는 형태의 서비스로 거듭나게 되죠."
-김지현, IT 전문가·테크 라이터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욕구도 바뀌어. 수천 명이 모인 커뮤니티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나만의 공간에서 내 얘기를 하는 걸 더 선호하는 분위기가 된 거야. 그 변화의 중심에 있던 게 바로 싸이월드. 한국형 SNS 시대의 시작이었어.
▲ IT 전쟁의 시대
이를 지켜보고 있는 프리챌.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해.
"되게 위협적으로 봤고. 우리 대표님이 되게 그때 좀 화도 많이 내셨고 신경질적이셨어요. 대표님 생각은 '우리가 디자인도 기술도 다 쟤네보다 잘하는데, 쟤네들은 다 따돌릴 수 있어'."
-신승식, 프리챌 마케팅 팀장
프리챌 역시 시대에 발맞춰서 이런 서비스를 내놨어.
프리챌의 신규 서비스 '마이홈피'. 이름도 비슷해. 사실 당시에 IT 벤처끼리 서로를 모방하는 서비스 경쟁이 치열했어. 다음에서 카페 서비스를 출시하자 네이버에서도 똑같은 이름의 카페 서비스를 내놓은 일도 있었어. 그런데 싸이월드에서 미니홈피는 어떤 존재야? 벼랑 끝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만든 서비스잖아. 프리챌의 마이홈피를 보고, 싸이월드에서는 어떤 마음이었을 것 같아? 싸이월드와 프리챌은 표절 여부를 두고 소송전까지 벌여. 하지만 싸이월드의 패배였어. 왜? 법원의 판단은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를 어느 한 기업이 독점할 수는 없다는 거였어.
싸이월드가 패배로 주눅들었던 그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와. 프리챌에서 커뮤니티 개설자에게 월 3천원씩 돈을 받겠다고 한 거야. 프리챌의 가장 큰 장점이, 커뮤니티를 몇 개를 만들든 무조건 무료였잖아. 그런데 갑자기 유료화를 선언한 거야. 물론 싸이월드에서도 도토리를 사야 미니홈피를 꾸밀 수가 있었잖아. 그런데 이건 개념 자체가 약간 달라. 도토리는 안 사도 미니홈피 쓰는 데는 문제가 없어. 그런데 프리챌은 돈을 안 내면 커뮤니티 운영 자체를 못하게 한 거야. 그럼 이용자들은 어땠을까?
"뭐 일단 너무 충격적이었고 배신감이 들었고, '그러면 우리가 돈을 내고서 이거를 해야 되는 거냐' 화가 많이 났던 것 같아요. 되게 분노하고. 게시판에도 막 욕이 올라왔었거든요."
-신현우, '무신사' 커뮤니티 유저
"'따르지 않을 시에는 운영 권한을 축소하겠습니다' 약간 협박 아닌 협박이 섞인 그런 공지였던 걸로 기억을 해요. 그래서 많은 운영자분들이 굉장히 불쾌했을 겁니다, 그 당시에."
-한준희, 프리챌 '팔사모' 커뮤니티 회장
민심이 폭발했어. 심지어는 프리챌 직원들도 반대했어. 유료화는 전제완 대표 개인의 결정이었거든. 대체 왜 그는 이런 결정을 한 걸까? 프리챌 유료화 사태를 두고 국회에서는 공청회까지 열려. 그때부터 프리챌의 분위기는 어수선해지기 시작했어. 이용자가 빠지면서 110만 개였던 커뮤니티는 순식간에 40만 개로 줄어들고 말아. IT 업계가 시끌시끌하던 그때, 프리챌에 제대로 한 방을 날린 곳이 있었어. 바로 싸이월드.
"여러분 저희 싸이월드는 약속한대로 평생 무료입니다. 저희는 여러분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프리챌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전부 싸이월드로 가기 시작해.
"그때는 '인터넷이라는 서비스는 무조건 다 기본적으로 무료다' 이게 딱 박혀 있었기 때문에."
-이정태, 당시 싸이월드 이사
"그래서 잘 하면 우리한테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이좋은 세상 우리가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이동형, 당시 싸이월드 대표
싸이월드는 그때부터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았어. 훗날 전 국민의 절반인 2500만 명이 사용하는 대한민국 대표 SNS로 자리매김해.
시간이 흘러서 2010년. 닷컴 기업들은 예상치 못한 흐름에 직면하게 됐어.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린 거야.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등장을 하면서, 인터넷 사이트들은 점점 이용자들을 잃게 돼. 찬란했던 닷컴 시대가 막을 내리기 시작한 거지.
"인스타그램이나 엑스(옛 트위터) 혹은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는 찾아오고 찾아가는 게 아니라 콘텐츠가 나한테 옵니다. 그걸 피드라고 해요. 미니홈피는 그 공간으로 찾아오는 거고, 이거는 피드가 나한테 오는 거고. 그래서 기존에 웹에서 잘 나가던 서비스가 그대로 스마트폰에서 이어지기는 어려워요. 서비스의 기본적인 구조가 바뀌거든요 완전히."
-김지현, IT 전문가·테크 라이터
잘 나가던 싸이월드 역시 외래 SNS에 밀려나기 시작했어. 프리챌 역시 변화하는 시대 속에 살아남지 못하고 2013년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돼.
그 후 싸이월드 창업자들은 IT 관련 강의, 스타트업 컨설팅을 하는 등 새로운 시대에서 활약하고 있어. 프리챌에서 뿔뿔이 흩어진 직원들은 우리나라 IT 산업을 이끄는 거목들로 성장해. 프리챌의 디자이너 최소현 씨, 지금 네이버의 디자인 부문장을 맡고 있어. 디자인 총괄 조수용 씨는 대한민국 대표 IT 기업 카카오 대표이사를 역임해. 누군가는 청와대 소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전 세계를 사로잡은 콘텐츠 브랜드 '핑크퐁'을 만든 대표가 됐다고 해.
▲ 프리챌 대표의 근황
근데 중요한 사람이 빠진 것 같지 않아? 이 모든 인재들을 한데 모아 그 시절 인터넷의 흐름을 바꿔놓은 사람. 1세대 벤처 CEO이자 IT 천재라 불리던 프리챌의 전제완 대표. 그는 지금 뭘 하고 있을 것 같아? 어떤 모습일지, 그를 찾아 강원도 양양으로 갔어.
"네, 맞습니다. 제가 전제완입니다. 지금 잔디가 많이 자라서 깎고 있거든요. 쓰레기도 버려야 되고, 그다음에 자쿠지에 물도 받아야 되고. (펜션에서 일하는지 묻자) 예 그렇습니다. 청소가 제 전공이고요. 좋은 말로 하면 정원관리사. 거름도 줘야 되고 풀도 뽑아야 되고 잔디도 깎고. 뭐 이게 제 주전공인데…"
-전제완, 전 프리챌 대표
전제완 대표는 양양의 한 펜션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어.
"사업을 하다가 이게 어려워지는 그 고통은, 사실은 인생이 거의 파탄 지경에 이르는데. 시름을 잊어야 되니까 여기 와서 청소하고 있는 거예요. 한군데 집중을 해야 되거든요. 그래도 자꾸 생각이 나는 게, 그거는 그만큼 제가 마음을 못 비운 거죠. 그게 금방 비워지나요 제가? (프리챌 오픈) 1년 만에 국내 TOP3로 진입을 시킨 구조를 가졌으니까. 회원 천만 명이란 건 사실 우리나라 인터넷 다 쓰는 거하고 똑같잖아요. 그 마음을 다 비울 수 있다면 제가 해탈하는 사람이죠. 머리만 없지 제가 중 같은 수도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잘 안돼요."
-전제완, 전 프리챌 대표
모든 사람들과 연을 끊고 지금은 펜션 청소, 대리운전을 하며 살고 있다고 해. 한때 대한민국 벤처업계에 한 획을 그었던 사람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IMF 구조조정 시기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 야심차게 프리챌을 만든 전제완 대표. 처음에 프리챌이 잘 나갔을 땐 세상 두려울 게 없었다고 해.
"시청률 한 50% 가보세요. 우리 PD님, 감독님, 촬영감독님들이 잠 안 자죠. 재방송 보느라고 그거 자겠어요? 그냥 비슷한 거예요. 간이 침대에 있고 막 자빠져 자고 의자 붙이고 자도, 그냥 다들 즐거웠던 거예요. 일하는 것들이. 사용자 엄청 늘지 그러니까 재밌을 수밖에 없었죠. 다 재밌게 일했던 것 같아요."
-전제완, 전 프리챌 대표
▲ 닷컴 버블 붕괴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용자 수가 많아질수록 회사는 계속 적자가 나. 서버 유지비부터 하드웨어 비용, 네트워크 사용료까지 서비스가 커질수록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대. 회원 100만 명 정도의 서비스를 운영하려면 하드웨어 비용만 한 달에 30억 원이 들었대. 이렇다 보니 GE캐피탈에서 받았던 투자금은 금세 떨어졌어. 거기다가 또 큰 문제가 하나 생겼어. IT 관련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한 거야.
"묻지마 투자에 주가가 치솟던 코스닥 시장은, 떨어질 때도 기록적이었습니다."
"코스닥 시장의 대폭락에 국내 벤처기업들이 몰려있는 테헤란 밸리도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중
이른바 '닷컴 버블 붕괴'. 기대만큼 실적이 따라주지 못하니까 IT 벤처기업들의 거품이 한순간에 꺼져버렸대. 이때 모든 벤처기업이 휘청이기 시작했어. 싸이월드는 한창 잘나가던 시기에 대기업 SK에 매각돼. 전제완 대표는 투자자를 찾아서 백방으로 뛰어다녔어. 프리챌의 가능성과 인터넷 산업의 미래를 설명했어.
"이 바닥에서 1등만 하면 시가총액 1조는 거뜬히 넘을 겁니다."
"이 양반이 벤처하더니 정신이 나갔나? 지금 삼성물산 시총이 얼마인 줄 알아?"
2000년대 말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은 약 3조였어. 그러니까 투자자들 입장에서 전제완 대표의 말, 어떻게 들렸겠어?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IT 산업의 잠재력을 가늠하지 못했던 거야. 그런데 2026년, 네이버 시총이 30조야.
겉으로는 화려했던 프리챌. 안에서는 벼랑 끝에 몰리고 있었어. 그래서 선택한 불가피한 방법이 바로 유료화였던 거야. 전 대표는 유료화를 앞두고 프리챌에 이런 편지를 올렸어.
"안녕하세요. 프리챌 대표이사 전제완입니다. 갑작스러운 프리챌 커뮤니티 유료화 발표로 많은 당혹감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사과를 올립니다. 프리챌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하기 위하여 회사에 운명을 걸고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프리챌은 가장 좋은 소프트웨어와 시설 인프라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한 커뮤니티 유료화였음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한 달에 3천 원을 받는 대신 사이트에 광고도 없애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어. 우려와는 달리 보름 만에 20만 개의 유료 커뮤니티를 확보했어. 이대로라면 프리챌 문제없이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아.
▲ 몰락과 실패
그러던 2002년 12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벤처 업계를 뒤흔든 사건이 벌어지고 말아.
"검찰은 어제 전 씨에 대해 주금가장납입과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회사 유상증자 과정에서 수십억 원대의 주식 납입금을 가짜로 내고 120여억 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중
전제완 대표가 갑자기 구속된 거야. 실제로 납입하지 않은 자본금을 납입한 것처럼 꾸민 혐의와, 주식 대금을 회사 돈으로 지급한 횡령 혐의였어. 전 대표는 고의가 아니라고 주장했어. 회사 자금 사정이 어려워서 불가피하게 내린 경영상의 판단이었을 뿐, 개인적인 이득을 취할 목적은 아니었다는 거야. 하지만 그는 결국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게 돼.
"그러니까 (경영상) 위기 관리가 생기니까 역시 제대로 된 판단을 못했어요. 내가 결국은 거기(위기 관리)에 적합하고 거기에 맞는 구조를 못 짠 거죠. 그러니까 실력이 부족한 거야. 부족했어.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 와서 본다면, 프리챌 유저들한테는 제가 이 자리를 빌려서, 끝까지 데이터를 지켜주지 못한 게 죄송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릴게요."
-전제완, 전 프리챌 대표
그렇게 전 대표는 2년의 형기를 마치고 2004년 출소해. 한참 시간이 흘러서 2016년, 싸이월드 창업자들은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게 돼.
"SK가 싸이월드를 더 이상 갖고 있기에 그렇게 미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싸이월드 팀을 분사시켰거든요. 그래서 잘 안 됐어요. 안 되고 있는데 어느 날, 프리챌 사장이 같이 하기로 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처음에 귀를 의심했죠."
-이동형, 전 싸이월드 대표
"일종의 적군의 수장이잖아요. 적의 수장이 갑자기 어느 순간, 싸이월드 대표가 된다고? 이게 뭐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전확렬, 전 싸이월드 이사
그런데 지금 전 대표, IT와는 전혀 상관없는 생활을 하고 있잖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싸이월드가 가지고 있는 그 데이터의 역사성, 중요성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거지 나는. 그게 보존이 돼야 하는 데이터라고요. 좀 어렵지만 끊임없이 해 나가서 진짜 나중에 다 살아나면 고객들이 '열심히 해서 이렇게 만들어줬구나 잘 쓰고 있어' 그런 일들을 해보고 싶었어요. (싸이월드) 열심히 했어요. 돈도 한 300억 이상 투입을 해서 개발을 하다가, 코로나19 딱 터지면서 더 이상 진행을 못 하겠더라고요. 잘 가다가 9부 능선에 갔는데 왜 마지막 발을 디디는데 거기가 낭떠러지인 거야 이게. 뭐 첫째는 제가 실력이 없는 것이겠죠. 그러니까 잘 하지 못한 CEO가 경영자가 못 한 게 첫 번째 잘못이고. 두 번째는 사업은 실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고 운이 좀 있어야 되는데. 예기치 않은 어떤 특수한 상황 때문에 두 가지(프리챌, 싸이월드) 다 무너진 걸 보고, 저는 사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죠. 나로 인해서 시작된 일에 대해서 내가 그걸 연연하면 미래가 없어.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단 말이에요."
-전제완, 전 프리챌 대표
싸이월드 개발에 필요한 투자를 한창 받으러 다니던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진 거야.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투자가 뚝 끊겨. 임금 체불과 횡령 혐의로 형사처벌까지 받게 돼. 싸이월드도 살리지 못했던 거지. 1세대 벤처 신화를 이끈 사업가이자 우리나라 IT 산업의 성장에 한 획을 그었던 전제완. 결국 자연으로 낙향해 살게 됐어.
1세대 벤처 기업들은 시대의 뒷문으로 사라졌지만, 그 시절 벤처의 꿈을 품었던 사람들은 지금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고 해.
"열정만으로 살았던 시기인 거 같아요. 내 일 회사 일 안 가리고. 정말 열정으로 똘똘 뭉쳐서 일했던 거 같고."
-신승식, 전 프리챌 마케팅 팀장
"마음껏 상상하고 할 수 있는 거 다 꺼내놔 보고. 저에게는 자유와 도전이 가능하게 했던 첫 번째 운동장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최소현, 전 프리챌 디자인 팀장
"저는 싸이월드가 감성적으로 말하면 내 딸 같거든. 진짜 농담이 아니고 딸처럼 느껴져요."
-이동형, 전 싸이월드 대표
"지금도 싸이월드 창업 멤버라고 하면 사람들이 일단 좋게 봐주고. 최고의 레퍼런스다."
-전확렬, 전 싸이월드 이사
"저에게는 젊음입니다, 젊음. 내 젊음이라고 생각하면 싸이월드를 같이 떼려야 뗄 수 없죠."
-이정태, 전 싸이월드 이사
그들의 도전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IT 강국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어. 그 시절 온라인 커뮤니티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현실만큼이나 따뜻한 공간이었어.
"우리가 지나간 옛날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면 드는 그런 기분처럼, 나의 진정한 어떤 부분을 거기에 남겨두었는데 내가 그대로 문을 닫았다는 느낌…"
-최재경, 프리챌 '노처녀 통신' 운영자
"그냥 일기장이니까, 언제라도 난 꺼내볼 수 있는 게 있었는데, 이제 그 서랍 자체를 드러낸다 그러니까 많이 많이 아쉬웠죠."
-신현우, '무신사' 커뮤니티 유저
'꼬꼬무'가 이번 방송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있어. '잊고 싶지 않다'는 것. 소중한 기억들이 담긴 이 일기장을 꼭 지키고 싶다는 거지. 그 마음은 언젠가 우리의 추억을 되찾는 열쇠가 되어줄 거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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