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380억 주고 산 산불 헬기, 미군이 쓰던 중고 헬기였다? [취재파일]
(2편) 업체 말만 믿었나? 계약 변경 타당했나? [취재파일]
(3편) 흔들리는 3,200억 계약 핵심은 '인증'…받을 수 있나? [취재파일]
(4편) 군 시절 사고 이력 불분명…사업 추진 이대로 괜찮나? [취재파일]
앞선 취재파일 내용에서도 언급했듯, 산림항공본부가 강조한 논리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내세운 명분은 '국익'이었습니다. 계약을 해지하면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법적 문제와 경제성 등을 고려해도 국익을 위해서는 계약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산림항공본부가 2025년 7월 작성한 내부 보고서 '대형 헬기(M234SP) 도입 심의위원회 검토 보고'를 보면 자세한 내용이 나옵니다. 다음은 해당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서 쓴 내용입니다.
"계약 변경 시 조속한 헬기 확보를 통해 2026년 봄철 산불 조심 기간부터 즉시 임무 투입 가능해 즉각적인 대응 체계 구축 가능. 계약 해지 후 신규 계약 체결 시 2028년 납품으로 2년간 산불 대응력 공백 발생 → 조속한 헬기 확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공공 이익 실현의 최우선 요소임."
"계약 해지 시 담수 능력 확보를 위한 국외 임차 헬기 사업 불가피하여 이로 인한 추가적 재정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 (신품에서 군용 재제작 헬기로) 계약 변경 시 기존 구매 가격 대비 27% 저렴한 금액으로 구매 가능. 동일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을 보다 낮은 비용으로 확보하는 것은 재정 건전성과 공공 책임성 측면에서 바람직함."
"계약 해지 시 헬기 전력 공백은 산불 대응 역량 악화로 이어져 사회적 신뢰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음. 기존 계약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은 정책 일관성과 대국민 신뢰 확보에 기여할 것. → 공적 기능의 안정적 수행은 국가 재난 대응의 신뢰 기반 구축에 필수적."
이러한 논리는 SBS 취재진이 산림항공본부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언급됐습니다. 주요 발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초 계약하려 했던) 신품 헬기 (생산에) 문제가 생겨서 그거에 대해서 우리가 어차피 재제작품으로 항공기를 계속 구매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걸 계약 해지하는 것보다는 재제작품으로 기종을 변경하는 게 경제적으로나 여러 가지 공익적 목적을 달성한다고 판단해서 계약을 변경한 거고요. 저희가 계약을 변경하기 전에 법적 문제, 경제성, 성능, 안정성, 공익적 가치까지 다방면으로 검토해서 이게 결국은 국익, 국가 이익이 된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계약 변경을 한 상황입니다."
- 이성관 산림항공본부 항공정비과장
이러한 산림항공본부의 주장에 대해 따져보겠습니다.
우선, 앞선 취재파일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신품 헬기를 군용 재제작 헬기로 계약을 변경하면서 납품 기한이 2027년 6월로 연장됐고, 첫 계약 당시 납기일(2025년 12월 말)보다 1년 6개월 늦춰졌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인증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고, 언제 해결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 사이 지난 봄철 산불 조심 기간에 임시 투입된 헬기는 잘 아시다시피, 미국 업체 소유의 헬기였습니다.
다음은 경제성 문제입니다. 산림항공본부는 미국 업체 측 변경 요청에 따라 기종을 바꿨고, 당초 첫 계약 금액보다 10%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변경해 달라는 업체 요청을 받아들여 생산된 지 40년도 더 지난 군용 헬기의 재제작품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경제성을 따져보기 위해선 변경된 군용 재제작 헬기가 해당 금액에 맞는 성능과 안전성을 갖추고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그래야 신품 헬기보다 10% 낮은 금액이 적정한지, 혹시 너무 비싸게 사는 건 아닌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림항공본부는 "계약 변경 시 기존 구매 가격 대비 27% 저렴한 금액으로 구매 가능하다"고 했지만, 이렇게 계산한 근거는 '산림항공본부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2년 동안 구매한 대형 헬기 평균 계약 금액보다 미국 업체가 제시한 변경 금액(10% 깎인 25,398,000달러)이 27% 더 저렴하다'는 거였습니다. 동일한 성능과 조건을 갖춘 기종에 대한 비교 분석이 아닌, 대형 헬기 사업의 평균 계약 금액과 비교한 것입니다.
경제성을 따져볼 때 중요한 건 미국 업체가 납품해야 할 군용 재제작 헬기의 안전성과 인증 가능성입니다. 산림항공본부는 기체가 확정된 1~3호기의 과거 군용 시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사고이력부, 정비 기록 등)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인증 문제 역시 미국 업체 측 전망에 의존했습니다. 인증 절차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고, 단기간에 풀리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산림항공본부는 감사원과 당시 기획재정부에 법률 검토를 받을 때에도 이러한 인증 리스크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산림항공본부는 '계약을 해지하면 산불 대응에 공백이 생기게 되고 이는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릴 것이며, 기존 계약을 변경하는 형식으로 유지하는 게 정책의 일관성이나 국민 신뢰 확보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미국 업체 측조차 "납품 기한을 맞추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인정하는 상황에서 산림항공본부가 국민 신뢰 확보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국가 계약이나 항공 인증 분야 전문가, 국회 소관 상임위에서는 산림항공본부의 의도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계약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왜 이렇게 된 건지, 산림항공본부는 책임이 없는 건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객관적인 면밀한 분석 없이 계약 금액을 10% 감액해 준 거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업체 요청대로) 납품 기한을 1년 6개월 연장했을 때 결국은 (첫 납품 기한을 맞추지 못한 데 대한) 지체 상금 상한 30%를 전액 면제해 주는 것과 다름없는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게 국내 업체랑 비교해 봤을 때나 정책적인 필요성을 고려하더라도 분명히 좀 과도한 부분은 있는 것 같습니다."
- 강두원 변호사(국가계약 및 항공산업)
"(산림항공본부가 확보한) 문서들이 우리나라 감항당국에서 인정할 수 있는 기관에서 발급한 문서인지, 그리고 그 기관이 우리가 신뢰할 만큼의 어떤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또 그런 자료들을 다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등 여러 가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되기 때문에 지금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지금 (산림항공본부가 확보한) 정도 수준만 가지고는 감항당국에서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되고요. 더군다나 이제 민간 감항당국 간이 아니고. 군 감항당국도 있기 때문에 더 어려운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최용훈 항공안전기술원 항공인증본부장
"가장 큰 문제는 납품 가능성과 국내외 인증 여부를 철저히 검증하지 않은 채, 계약 조건을 완화해 줬다는 점입니다. 신품 제작이 불가능해지자 재제작품으로 변경하고 납기일마저 18개월이나 연장해 주면서 인수 전 대금의 70%를 선지급했습니다. 산불 대응의 시급성을 빌미로 혈세 낭비와 전력 공백을 자초한 셈입니다. 산림청은 계약 변경으로 국가가 얻은 실익이 무엇인지 명백히 밝혀야 합니다."
- 윤준병 국회 농해수위원(민주당) 인터뷰
만약 인증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미국 업체가 납품 기한을 맞추지 못하게 된다면 산림항공본부는 "계약대로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업체와 맺은 계약 조건대로 납기일이 늦어지는 데 대한 지체상금을 물리고 순차적으로 계약 해지까지 검토하겠다는 겁니다. 산림항공본부 내에서는 업체 측 책임을 왜 우리가 지느냐는 분위기도 읽힙니다. '업체가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못하는 게 왜 우리 책임이냐'는 겁니다. 실제로 산림항공본부 관계자들은 SBS 취재진과 만나 "업체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해지하면 그만"이란 입장을 거듭 밝히기도 했습니다.
국가 예산이 3천260억 원 넘게 투입되는 사업입니다. 그것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키겠다고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대안이 없었고, 계약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건 업체의 책임이라는 말로 넘기기에는 사업의 규모나 성격이 무겁습니다. 대형 산불이 터지면 국회로 찾아가 예산을 따내려고 했던 그 노력만큼이라도, 막대한 예산을 어떻게 제대로 쓸 수 있을지 검증하고 확인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없었을 것입니다.
2022년부터 시작된 초대형 헬기 사업, 이제 4년이 다 되어 갑니다. 2029년 2월까지 납품받아야 할 헬기는 7대인데, 그 중 한 대라도 제때 들어올 수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미국 업체 책임으로만 돌리기에는 산림항공본부의 책임은 없는 건지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지난 7월부터 국민권익위원회는 산림항공본부 부패 행위 신고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감사원 역시 산림청에 대한 정기감사 항목에 초대형 헬기 사업을 포함시켰습니다. 신품 헬기 사기로 해놓고 40~60년 넘게 운용된 군용 재제작 헬기로 바꾸는 과정이 적절했는지, 구매 가격은 적정했는지, 업체 측에 특혜나 편익을 주지는 않았는지가 쟁점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갈수록 대형화하는 산불에 대응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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