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 실권자 빈살만 왕세자
이란 대리 세력들의 전방위 압박과 에너지 위기 앞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2018년 10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한때 외교적 고립 상태에 놓였던 이후 가장 큰 시련에 직면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예멘의 친이란 무장세력인 후티 반군은 지난 10일 홍해 연안의 주요 도시인 모카와 전략적 요충지인 페림섬을 점령하며 바브엘만데브 해협 장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홍해 입구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후 사우디 원유 수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온 곳입니다.
이곳마저 후티 손에 완전히 넘어갈 경우 사우디로서는 해상 수출길이 모두 막히게 됩니다.
바닷길뿐 아니라 지난 11일엔 북쪽에서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소행으로 추정되는 드론 공격으로 동서를 연결하는 사우디의 중요 송유관 가동이 중단됐습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지시간 15일 현재의 위기가 한때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이었던 사우디의 원유 공급 능력은 물론,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글로벌 투자 허브를 건설하려던 빈 살만 왕세자의 야심 찬 계획을 위협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런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닐 퀼리엄 연구원은 사우디 왕국이 2018년 당시보다 "훨씬 더 많은 측면에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현 상황은 "사우디 왕국 내 그의 리더십에 대한 시험이자 안보 및 경제적 도전"이라고 진단했습니다.
2015년 예멘 내전에 개입해 후티 반군에 대항하는 연합군을 이끌었던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4년 동안에는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는 예멘 분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후티로부터 원유 수출길을 직접 위협받는 상황에서 대응 수위를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글로벌 정치 리스크 자문 업체 유라시아 그룹의 중동 담당자 피라스 막사드는 FT에 "리야드는 정책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며 "군사적 압박 하에서 점점 더 거세지는 후티의 요구에 굴복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확대해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상대하는 상황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경우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생산량 가운데 절반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현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막대한 대가를 수반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유럽외교협의회(ECFR)의 중동 전문가 친치아 비안코는 CNN에 "사우디는 후티와의 분쟁에서 실제로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가지 선택지는 후티와의 대치를 격화하는 것이지만 이 경우 예멘 내전과 유사한, 끝이 보이지 않는 분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사우디와 후티 간 전면전은 이란을 끌어들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비안코는 이 경우 예멘 내 분쟁에 그치지 않고, 미·이란 전쟁의 확전판이 될 수 있으며 사우디 역시 미국 편에서 전쟁에 직접 뛰어드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사우디가 후티 반군과 협상을 타결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예멘 전문가이자 리스크 자문가인 모하메드 알-바샤는 CNN에 협상을 타결하더라도 사실상 후티 반군의 요구에 완전히 굴복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는 "매우 값비싼 굴복으로, 기본적으로 항복이나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
후티는 사우디에 그동안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의 공무원 급여 지급, 예멘 석유 수입에 대한 접근권 보장, 전쟁 피해 보상 등을 요구해 왔습니다.
사우디는 미국이 이번 사태에 개입해 주길 원하고 있으나, 분석가들은 워싱턴이 직접 개입할 가능성은 작다고 봅니다.
한 외교관은 사우디 정부가 미국의 공중 지원을 요청했으나, 워싱턴 측이 현재 이란과의 전쟁에 집중하고 있어 당분간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고 FT에 전했습니다.
앞서 CNN은 소식통을 인용해 빈 살만 왕세자가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두 차례 통화에서 후티에 대응해 미국의 공습을 촉구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거절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소식통들은 다만, 미국이 사우디의 군사 작전에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약 100명의 군사 고문을 현지에 파견했다고 CNN에 전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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