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럼프 "선거 이기면 1인당 $5000"…얼마나 급하면 [이브닝 브리핑]

이브닝브리핑
"공화당이 상∙하원 선거를 모두 이기면 모든 시민에게 5000달러 배당금을 지급하겠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외친 말입니다. 현지시간 지난 9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의 중간선거 전당대회는 이른바 '트럼프쇼'였습니다. 공화당이 공식적인 당무 의결이나 후보 선출 없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당대회를 연 것은 사상 처음입니다. 순전히 트럼프 대통령 이 주도한 '정치쇼'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려 2시간에 걸쳐 연설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글머리에 소개한 '돈 살포' 공약을 꺼내 들었습니다.
공화당 중간선거 전당대회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

대놓고 '매표'를 하는 셈인데 법적 처벌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총선 등을 앞두고 저런 발언을 했다면 '탄핵각'입니다. 우리 공직선거법은 제9조와 85조에 대통령 등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확고히 규정하고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제113조에서는 선거구민에게 금전, 물품 기타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약속하는 행위를 '기부행위'로 엄격히 규제합니다. 나아가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을 통해 "대통령은 정치인 이전에 최고의 공무원으로서 선거에서의 엄격한 중립의무를 부담한다"고 분명하게 판시했습니다. 그럼 미국은 어떨까요?

미국도 연방법에 '투표 등록이나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는 대가로 금전이나 물질적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안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투표를 유도하거나 보류하도록 금전을 지출하거나 약속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처벌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우선 매표죄의 경우 '개별 유권자가 투표하는 대가로 직접 돈을 수령하는 명확한 대가 관계'가 입증돼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입법과 예산 편성을 전제로 한 '거시적 정책 공약'의 형식이라 이런 조건에 딱 맞지 않습니다. 또 해당 공약은 상·하원의 법안 통과가 필수적입니다. 미국 법원은 따라서 입법부의 선거 승리를 전제로 한 정당의 '재정 정책 제안'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조 보호 범위에 속한다는 게 미국 판례입니다.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한 금전 지출이나 약속을 금지'하는 법규도 이번 사항에 적용하기 힘들다는 평가입니다. 미 연방대법원은 "정치인이 유권자에게 일반적인 재정적·경제적 이익을 약속하는 공약은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를 받는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즉 개별 유권자에게 비밀리에 금전적 이익을 주거나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 정책상의 재정 환원 공약은 사법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정치적 공방의 장'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미국 대통령은 소속 정당의 실질적 수장으로서 모금, 찬조 연설 등의 선거운동에 직접 개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치, 사회적 배경 때문에 우리와 달리 유권자들에게 재정적 혜택을 공약으로 내거는 행위가 훨씬 자유롭다는 분석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

트럼프, 얼마나 급했으면?

다만 법적 처벌 가능성이 낮다는 뜻일 뿐 정치적 비판과 책임은 엄존합니다. 미국에서 트럼프의 공약에 대해 '극단적 포퓰리즘이자 공적 자금을 이용한 사실상의 선거 유인'이라는 비판이 들끓습니다. 공적 재정을 정파적 승리의 대가로 거래한다는 점에서 고도화된 '제도권 내 합법적 매표'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 미국 민주당은 정치적·도덕적 프레임으로 공격하며 선거 무기화 하는 모습입니다.

비판보다 더 뼈아픈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서 매우 불리한 처지임을 공약을 통해 자인한 셈이라는 점입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노골적인 매표 행위까지 강행했겠냐는 지적입니다. 가장 큰 위협은 유가 급등과 끈질긴 인플레이션입니다.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등 에너지 수송로의 불안이 국제 유가를 끌어올렸습니다. 유권자들의 제1 체감 지표인 휘발유 가격이 폭등하는 것은 물론 식료품 등 장바구니 물가로도 전이되고 있습니다.

고금리의 장기화도 아픕니다. 물가가 잡히지 않자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면서 모기지 금리와 차입 비용이 높은 수준에 묶였습니다. 미국인들의 가계 부채 부담이 극에 달해 민심 이탈의 핵심 동인이 됐습니다. 이란 전쟁의 정치적 부담도 갈수록 커집니다. "선거 전 종전"이 "선거 직후 해결"로 바뀌면서, 트럼프의 핵심 지지 기반인 'MAGA' 유권자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결국 또 다른 중동의 끝없는 전쟁에 발을 담근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퍼지고 있습니다.

현재 공화당 내에서도 "하원은 민주당에 넘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고, 상원마저 초박빙"이라는 비관론이 팽배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을 들였던 공화당 전당대회에 존 튠 등 일부 공화당 지도부와 경합주 후보들이 불참하거나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트럼프와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배경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미국-이란

중간선거에서 지면 어떤 재앙이 닥치길래?

만약 민주당이 하원을 탈환하거나 상원까지 장악하는 '여소야대'가 현실화할 경우, 트럼프의 집권 후반기는 극심한 레임덕과 사법적 포위망에 갇히게 됩니다. 하원 법사위, 감독위를 중심으로 트럼프 일가의 각종 의혹, 관세 집행 과정, 이란 전쟁 결정 등에 대한 상설 특위가 가동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원의 세 번째 탄핵 소추가 추진될 수도 있습니다. 입법과 재정권은 국회에서 차단됩니다. 국민에게 '5천 달러' 배당금을 주기는커녕 감세 연장법안, 관세 권한 확대 등이 의회에서 올스톱될 게 뻔합니다. 예산안 합의 실패로 인한 연방정부 셧다운 정국은 상례화될 것입니다.

이란 전쟁을 비롯한 대외 정책도 180도 변할 소지가 있습니다. 민주당 주도로 이란 군사작전에 대한 자금 지원 삭감과 철군 촉구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대통령의 단독 군사지휘권에 제동이 걸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 내부의 리더십도 균열이 불가피합니다. '트럼피즘' 책임론의 대두가 명약관화합니다. 2018년, 2022년에 이어 2026년 중간선거까지 패배하면 공화당 내 차기 대권 주자 가운데 J.D. 밴스 부통령을 비롯한 온건·비주류 진영이 힘을 얻게 될 전망입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트럼프와의 결별과 조기 권력 승계 투쟁이 본격화됩니다.

결국 '5천 달러 배당금'은 선거 패배 시 닥쳐올 이 모든 정치적 파국을 막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입니다. 전통적 보수 재정주의를 완전히 버리면서까지 유권자의 경제적 불만을 무마하려 던진 마지막 극단적 승부수인 셈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미국은 근대와 현대 민주 정치 체제 발전을 이끈 나라입니다. 특히 전 세계 대통령 중심제 정체는 대부분 미국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민주정은 가장 모범적이고 선진적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격변들은 이런 우리의 믿음에 근본적 회의를 줍니다.
특히 '매표 행위'는 민주주의 후진국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가장 낙후된 병리 현상입니다. 미국에서 이런 시비가 불거진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낯섭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늘의 숏뉴스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