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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 '법적 공백'…해외는 별도 기준 세웠다 [취재파일]

[뉴스토리 575회] 계약서엔 사장님, 현실은 노동자?

플랫폼 노동 '법적 공백'…해외는 별도 기준 세웠다 [취재파일]
방송 다시보기 ☞ [뉴스토리 575회] 계약서엔 사장님, 현실은 노동자? (영상취재·편집 : 김태훈)

최근 국내에서 한 배달라이더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판결이 확정됐다. ( ☞ [취재파일] 배달라이더의 근로자성 첫 확정판결…판단 가른 '플랫폼 통제') 이번 판결로 모든 플랫폼 노동자가 곧바로 근로자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업체와 한 라이더 사이의 구체적인 노동관계에 대한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무엇을 따졌는지는 분명하다. 계약서에 '업무위탁'이나 '개인사업자'라고 적혀 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업체가 실제로 일감을 어떻게 배분했는지, 보수를 어떻게 정했는지, 업무 수행에 얼마나 관여했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노동자가 "플랫폼의 통제를 받았다"고 주장하려면, 실제 어떤 방식으로 일했는지를 뒷받침할 자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앱이 어떤 기준으로 일을 배정했는지, 평가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계정 제한이나 불이익은 어떤 기준으로 이뤄졌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는 대부분 플랫폼 내부에 있다. 노동자가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다. 결국 '실제 노동관계를 보라'는 원칙은 '그 실제를 누가 어떤 자료로 입증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해외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비슷한 고민이 이어졌다.
 

EU는 '누가 입증할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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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는 지난 2024년 플랫폼 노동 지침을 통해 계약서에 어떤 지위로 적혀 있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일했는지를 중심으로 보도록 했다. 자동화된 모니터링이나 의사결정 시스템이 사용됐는지도 함께 고려하도록 했다. 무엇보다 각국의 법과 단체협약·관행 등에 따라 플랫폼의 지휘·통제를 보여주는 사실이 확인되면, 일단 고용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도록 했다. 여기서 '추정'은 모든 플랫폼 노동자를 곧바로 근로자로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플랫폼의 지휘·통제를 보여주는 사실이 확인되면, 그다음부터는 플랫폼이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도록 했다. 노동자가 모든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낸 것이다.¹

그렇다면 플랫폼의 '통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 해외 법원들은 앱을 켠 뒤 실제 일하는 과정에서 플랫폼이 가격과 조건, 평가와 제재를 얼마나 좌우했는지를 따졌다. 영국 우버(Uber) 사건과 스페인 글로보(Glovo) 사건이 대표적이다.

2021년 영국 대법원이 판단한 우버 사건에서도 운전기사를 독립사업자로 볼 만한 요소가 있었다. 운전기사는 계약서상 독립사업자였고, 언제 앱을 켜고 일할지도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앱을 켜고 일을 시작한 뒤에는 사정이 달랐다. 운임과 계약조건은 우버가 정했고, 승차 요청 수락률과 평점도 우버가 관리했다. 운전기사는 수락률이 낮으면 경고를 받거나 일정 시간 앱에서 로그오프될 수 있었고, 평점이 계속 낮으면 우버와의 관계가 종료될 수도 있었다. 영국 대법원은 이처럼 앱을 켠 뒤 실제 일을 하는 동안 우버가 가격과 계약조건, 업무 수행을 얼마나 통제했는지를 봤고, 운전기사를 영국 노동법상 worker로 인정했다. worker는 employee보다 적용 범위가 넓은 법적 범주로, 최저임금과 유급휴가 등의 권리가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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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대법원이 2020년 판단한 글로보(Glovo) 사건도 비슷하다. 라이더는 자기 오토바이와 휴대전화를 사용했고, 앱에서 일할 시간대를 정하고 주문을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런 선택권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함께 봤다. 글로보는 라이더를 점수로 평가했는데 고객 평가와 최근 주문 수행의 효율성, 주문이 몰리는 시간대에 일했는지 등이 점수에 반영됐다. 평가 결과에 따라 이후 배정되는 일감과 보수도 달라질 수 있었다. 고객이 내는 요금과 라이더가 받는 보수, 지급 방식도 글로보가 정했다. 대법원은 이런 사정을 종합해 글로보와 라이더 사이에 고용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심재진 /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배달업체는 사람이 직접 지시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알고리즘을 만들고 변경하는 것 자체도 통제와 지시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앱과 알고리즘이 실제 업무를 어떻게 좌우했는지는 종속성을 판단할 때 살펴볼 수 있는 요소이고, 이번 국내 판결도 그런 흐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논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플랫폼의 통제 등을 포함한 실제 업무관계를 종합해 근로자로 판단되면, 기존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남는다. 즉 계약상 독립계약자로 일하더라도 플랫폼이 일의 조건을 정하는 경우에는 어떤 최소 기준을 적용해야 하나? 미국에서는 뉴욕과 시애틀이 이 문제를 별도의 규칙으로 다뤘다.
 

뉴욕·시애틀·호주는 '무엇을 지켜야 할지' 정했다

EU가 ‘누가 고용관계를 입증할 것인가’를 다뤘다면, 뉴욕과 시애틀은 독립계약자로 일하는 사람에게도 플랫폼이 지켜야 할 별도의 기준을 뒀다.² 뉴욕의 표준방식은 플랫폼이 두 가지 최소지급 요건을 모두 지키도록 한다. 먼저 개별 라이더에게는 일감을 수락한 뒤 배달을 완료하거나 취소할 때까지의 ‘배달 수행시간(trip time)’을 기준으로 최소지급액을 보장한다. 예를 들어 한 라이더가 한 정산기간 동안 배달 수행시간 10시간, 주문을 기다린 시간 5시간을 기록했다면, 이 라이더 개인에게 반드시 보장되는 최소금액은 배달 수행시간 10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나머지 5시간의 대기시간만큼을 이 라이더에게 별도의 시급으로 지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플랫폼 전체의 지급액을 계산할 때는 대기시간도 빠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체 라이더의 배달 수행시간이 700시간이고 주문 대기시간이 300시간이었다면, 플랫폼은 두 시간을 합친 1,000시간에 최소지급률을 곱한 금액 이상을 전체 라이더에게 지급해야 한다. 다만, 각 라이더가 기다린 시간만큼을 그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시급으로 지급하는 방식은 아니다. 개별 라이더에게 보장되는 최소금액은 배달 수행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하지만, 플랫폼 전체가 부담해야 할 최소 지급총액에는 주문 대기시간까지 반영되는 것이다. 이처럼 뉴욕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건당 노동에서도 어떤 시간을 보수 계산에 반영할 것인지까지 제도로 정했다는 점이다.

시애틀은 일감을 제안하고 거절하는 과정에 규칙을 뒀다. 플랫폼은 일을 제안할 때 보수와 이동 거리 등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미리 알려야 하고, 노동자가 제안받은 일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이미 수락한 일감도 취소할 수 있다. 앱에 ‘수락’과 ‘거절’ 버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실질적인 선택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를 받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알 수 없거나, 일을 거절한 뒤 불이익이 따른다면 형식상 선택권이 있어도 자유롭게 일감을 고르기 어렵다. 시애틀은 그래서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미리 제공하고, 일감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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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또 다른 방식을 택했다. employee-like worker, 즉 유사근로자라는 별도 범주를 둔 것이다. 유사근로자는 법적으로 employee가 아니라 계약자다. 다만 모든 플랫폼 계약자가 유사근로자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과의 교섭력이 낮은지, 비슷한 일을 하는 employee와 비교해 보수가 같거나 낮은 수준인지, 일을 언제 어떻게 수행할지에 대한 결정권이 적은지 가운데 두 가지 이상이 인정되면 유사근로자에 해당할 수 있다. 계약자로 일하고 있더라도 플랫폼과의 관계에서 독립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을 따로 구분한 것이다.

공정노동위원회는 이런 유사근로자에게 적용할 법적 구속력이 있는 최소기준을 정할 수 있다. 이 권한에 따라 2026년 8월 17일부터 주문형 배달 분야에 첫 최소기준 명령이 시행됐다. 기준은 보수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록 보관과 보험, 정보 공유, 중요한 업무조건을 변경할 때의 협의, 분쟁 해결 절차 등에 관한 내용도 포함됐다. 최소보수는 앱을 켜둔 전체 시간이 아니라, 일감을 수행한 것으로 앱에 기록된 시간인 engaged time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정산기간 동안 실제로 지급받은 금액이 이 시간에 따라 계산한 최소금액에 미치지 못하면 플랫폼이 부족분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그렇다고 유사근로자를 일반적인 employee로 바꾸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여전히 계약자로 남고, 어떤 일감을 언제 수락할지는 스스로 정한다. 보수와 보험, 정보 제공 같은 주요 업무조건에는 별도의 최소기준을 적용한다.³ 결국 호주는 플랫폼 종사자가 employee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데서 끝내지 않고, 계약자로 일하더라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플랫폼이 지켜야 할 별도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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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준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이번 국내 판결로 모든 플랫폼 노동자가 바로 임금 근로자로 인정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이들에게 적용할 별도의 보호 조치입니다. 기본적으로 보수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플랫폼 노동에서 근로자성 판단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계약서상 지위를 가리는 것만으로는 앱을 통해 이뤄지는 배차와 보수 결정, 평가와 제재의 실제 모습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이번 확정판결이 계약의 명목보다 업무관계의 실질을 보라는 답을 내놨다면, 이제 남는 문제는 그 실제를 확인할 자료와 절차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다.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도 문제는 남는다. 해외에서는 이를 근로자성 판단 밖에 그대로 두지 않고 최소지급, 정보 제공, 일감 선택, 분쟁 해결 같은 별도의 기준으로 다뤘다. 결국 앞으로의 쟁점은 ‘누가 근로자인가’뿐 아니라, 근로자가 아닌 플랫폼 종사자에게도 어떤 규칙을 적용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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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유럽연합(EU) 「플랫폼 노동의 노동조건 개선에 관한 지침」(2024/2831). 플랫폼 노동의 실제 수행 방식, 자동화된 모니터링·의사결정 시스템, 고용관계 추정과 반증 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회원국의 국내법 이행 기한은 2026년 12월 2일이다.
² 뉴욕시 배달노동자 최소지급 기준, 시애틀 앱 기반 노동자 최소지급 조례 등 관련 공식자료 참고.
³ 호주 공정노동위원회 ‘주문형 배달 유사근로자 최소기준 명령’, 2026년 8월.


참고문헌
심재진, 「플랫폼노동 관련 해외 판례 소개②: 2021.2.19. 영국 대법원 판결」, 노동자권리연구소 이슈페이퍼 2022-01, 2022.
윤애림, 「플랫폼 노동과 근로자성에 대한 최고법원 판례의 비교법적 검토」, 『노동법학』 제81호, 한국노동법학회, 2022
전형우, 「미국의 플랫폼종사자 보호와 노동법의 역할: 지방정부 입법과 연방법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석사 학위논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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