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프 핵심요약
한국은행 분석 결과 2022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줄어든 청년 일자리 28만 5,000개 가운데 94%가 AI 고노출 업종에 집중됐습니다.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오히려 23만 개 늘었습니다.
AI가 자료 정리, 초안 작성, 단순 코딩처럼 신입이 일을 배우며 숙련도를 높이던 초급 업무부터 대신하면서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과 경력 형성 경로 자체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AI는 초보 노동자의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릴 수도 있습니다. 관건은 AI를 사람을 줄이는 '자동화' 수단으로 쓸 것인지, 신입이 더 빨리 성장하도록 돕는 '증강' 수단으로 쓸 것인지에 있습니다.
1. 사라진 청년 일자리 28만 5,000개, 94%가 한곳에 몰렸다
최근의 청년 고용 부진에는 이전과 조금 다른 특징이 나타납니다. 한국은행이 2026년 8월 18일 발표한 BOK 이슈노트 '청년고용 위축, AI 탓인가? 변화하는 경력 사다리와 대응 과제'는 2022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청년 고용의 변화를 분석했습니다.
이 기간 15~29세 청년 일자리는 28만 5,000개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감소한 일자리 가운데 26만 8,000개, 94%가 AI에 많이 노출된 업종에 집중됐습니다. 정보서비스업의 청년 고용은 31.4% 감소했고, 출판업은 27.4%,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은 16.6% 줄었습니다. AI와 디지털 기술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업종들입니다.
더 흥미로운 건 연령별 차이입니다.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3만 개 증가했습니다. 이 가운데 17만 3,000개, 75.2%가 오히려 AI 고노출 업종에서 늘었습니다. 같은 AI 고노출 업종인데 청년은 줄고, 중장년은 늘어난 겁니다.
이것만으로 'AI가 청년 일자리 28만 5,000개를 없앴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코로나19 시기 IT 업종의 과잉 채용이 정상화된 영향, 기업의 경력직 선호, 재택근무 확산 등 다른 요인도 함께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에서 유독 청년 고용 감소가 집중됐다는 사실은 설명해야 할 새로운 현상입니다.
2. AI는 왜 중장년보다 청년에게 더 가혹할까
단서는 회사에서 신입과 경력자가 하는 일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신입사원은 보통 자료를 정리하고, 문서를 요약하고, 보고서 초안을 만들고, 기초적인 코드를 작성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 자체로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업무라기보다, 그 일을 반복하면서 조직과 업무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생성형 AI가 가장 빠르게 파고들고 있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경력자는 다릅니다. 조직의 맥락을 파악하고, 거래처와 관계를 조율하고, 예외 상황을 판단하고, 여러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결정을 내립니다. 문서로 완벽하게 매뉴얼화하기 어려운 '암묵지'와 경험의 비중이 큽니다.
따라서 똑같이 AI를 도입해도 경력자의 업무 전체를 대체하기보다 신입이 담당하던 업무의 일부를 먼저 자동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학력별 고용 지표에서도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챗GPT 출시 전인 2019년 1월~2022년 10월 대졸 청년과 전문대졸 이하 청년의 평균 실업률은 각각 8.2%, 8.0%로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챗GPT 출시 이후부터 2026년 6월까지 평균을 보면 대졸 청년은 7.0%, 전문대졸 이하 청년은 5.4%였습니다.
대졸 청년 실업률 자체도 8.2%에서 7.0%로 낮아졌지만 상대적인 위치가 달라졌습니다. 챗GPT 이전 0.2%p에 불과했던 두 집단의 실업률 차이가 이후 1.6%p까지 벌어진 겁니다. 생성형 AI가 육체노동보다 지식노동과 화이트칼라 업무에 먼저 영향을 미치는 특성과 맞물려 주목할 만한 변화입니다.
3. 들어가는 문은 좁아지고, 나오는 문은 넓어졌다
한국은행은 AI 고노출 업종에서 청년들이 얼마나 새로 취업하고, 얼마나 다시 미취업 상태로 빠져나오는지도 분석했습니다. 팬데믹 이전과 최근을 비교했더니 AI 고노출 업종으로 들어오는 청년은 월평균 3만 2,600명에서 2만 9,100명으로 약 11% 감소한 반면, 이들 업종에서 일하다 미취업 상태로 빠져나가는 청년은 월평균 3,700명에서 4,900명으로 약 32% 증가했습니다. 들어가는 문은 좁아졌는데, 나오는 문은 넓어진 셈입니다.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만 19~34세 재직·구직 청년 1,000명을 조사한 결과, 구직 청년의 63.8%가 앞으로 5년 안에 자신이 희망하는 직무가 AI로 대체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습니다. 재직 청년도 49.4%가 현재 직무의 대체·축소 가능성을 높게 봤습니다. AI 고노출 직무 종사자의 경우 58.4%가 대체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응답은 이겁니다. 65.6%가 "AI가 초급 업무를 대신하면서 고숙련 인력으로 성장할 기회가 줄어들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청년들이 두려워하는 게 단순히 '내 일을 AI가 빼앗아 갈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4. 일자리가 아니라 '경력 사다리'가 사라진다면
과거 신입사원이 하던 단순 업무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선배가 한 시간이면 할 일을 신입은 서너 시간씩 붙들고 있고, 초안은 고쳐야 할 곳투성이입니다. 하지만 조직 입장에서 보면 그건 단순한 저생산성 노동만은 아니었습니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산업을 배우고, 보고서 초안을 쓰면서 논리를 익히고, 선배에게 수정받으면서 판단 기준을 습득합니다. 오늘의 단순 업무가 몇 년 뒤 숙련 노동자를 만드는 훈련 과정이었던 겁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AI가 젊은 고학력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을 분석하면서 이들이 경력을 쌓기 위한 '디딤돌 일자리'를 얻기 어려워질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AI로 대체하기 가장 쉬운 업무부터 없애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기업이 그렇게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신입 10명을 뽑아 일을 가르치던 회사가 AI를 활용해 3명만 뽑는다고 가정해 보면 당장 회사의 생산성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런 선택이 여러 기업에서 동시에 일어난다면 사회 전체에서는 일을 배우기 시작할 자리 자체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5년, 10년이 지나면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신입을 키우지 않은 기업은 미래의 경력자를 어디서 구할 것인가. AI 시대 청년 고용의 진짜 위험이 단순한 '일자리 감소'를 넘어 경력 사다리의 단절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5. 그런데 AI는 초보자를 가장 많이 도와준다
흥미로운 역설이 생깁니다. AI가 신입의 일자리를 위협하지만, AI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도 신입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가 있습니다. 미국의 한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 고객지원팀 상담원 5,179명을 대상으로, 생성형 AI 도구 도입 전후의 생산성 변화를 추적한 연구입니다.(스탠퍼드대 에릭 브린욜프슨, MIT 대니엘 리·린지 레이먼드, NBER Working Paper No.31161)
결과는 상당히 극적이었습니다. AI를 사용한 직원들의 평균 생산성은 14% 높아졌습니다. 초보·저숙련 직원은 생산성이 34% 향상됐지만 숙련된 직원에게선 상대적으로 효과가 작았습니다. AI가 숙련자의 노하우를 초보자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디지털 코치' 역할을 한 것으로 연구진은 해석했습니다.
이 연구는 AI가 신입 채용을 줄인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는 아닙니다. 오히려 AI가 초보자의 학습과 생산성을 얼마나 빠르게 높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바로 그래서 새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신입 한 명이 AI를 이용해 과거 두세 명의 일을 할 수 있다면 기업은 예전과 같은 수의 신입을 뽑을까.
개별 청년에게 AI는 자신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강력한 도구지만 모든 청년이 AI를 사용해 생산성을 높인다고 해서 청년 전체의 취업 기회까지 늘어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에게 유리한 변화와 노동시장 전체에 유리한 변화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실제로 한경협 조사에서도 청년의 64.7%는 AI가 자신의 전문성과 커리어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고 AI 고노출 직무군에서는 이 비율이 74.4%까지 올라갔습니다. 동시에 67.7%는 AI 활용 능력 차이가 청년층 내부의 소득과 커리어 격차를 키울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6. 중요한 것은 AI를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
한국은행 분석에서 중요한 단서가 하나 나옵니다. AI가 사람 대신 업무를 수행하는 '자동화' 성격이 강한 업종일수록 청년 고용 감소가 크게 나타났습니다. 반면 AI가 사람이 하는 일을 보조하고 생산성을 높여주는 '증강' 형태로 활용되는 업종에서는 같은 정도의 고용 감소 패턴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의 존재 자체라기보다 기업이 AI를 무엇에 쓰느냐일 수 있습니다. AI로 신입사원이 하던 초안 작성을 없애는 방법도 있지만, AI가 작성한 초안을 신입사원이 검증하고 수정하고 실제 상황에 적용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목적이 비용 절감이라면 후자는 AI를 이용한 새로운 숙련 과정의 설계입니다.
청년들도 비슷한 해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경협 조사에서 가장 많이 선택한 정책 과제는 '청년 신규 채용 기업 지원 강화'(23.8%)와 '신입·초급 직무 경험 기회 확대'(23.7%)였습니다.
AI 시대의 청년 고용 정책 역시 단순히 '몇 명을 채용했느냐'에서 한 걸음 더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AI를 사용하면서도 실제 업무를 배우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경험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 기업에는 새로운 초급 직무를 설계할 유인을 주고, 청년에게는 AI를 활용해 더 높은 수준의 업무로 이동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는 반복됐습니다. AI도 결국 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일부 직업은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생기면서 노동시장이 적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성형 AI에는 이전의 기술 변화와 조금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사람이 일을 처음 배우던 영역부터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초안을 쓰고, 실수하고, 수정받는 과정은 비효율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AI가 가장 먼저 대신하기 좋은 일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 비효율은 어쩌면 사람을 숙련자로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기업들이 AI로 없애고 있는 것이 단순한 업무인지, 아니면 미래의 숙련 노동자를 만들어내던 훈련 과정인지 구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AI 시대 청년 고용을 둘러싼 질문도 조금 달라져야 합니다. "AI가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없앨까?"에서 "AI 시대에는 신입이 어디서 일을 배울 것인가?"로. AI가 경력 사다리의 첫 번째 계단을 없앤다면, 새로운 계단을 만드는 일 역시 기술이 아니라 결국 기업과 사회의 몫입니다.
Deep Dive Q&A
Q1. 청년 일자리 28만 5,000개가 AI 때문에 사라졌다는 뜻인가요?
A: 아닙니다. 한국은행 분석은 2022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감소한 청년 일자리 28만 5,000개 가운데 94%가 AI 고노출 업종에 집중됐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것만으로 AI가 일자리 감소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팬데믹 당시 IT 업종의 과잉 채용 정상화, 기업의 경력직 선호 등 다른 요인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청년 고용 감소가 유독 집중되고, 자동화 성격이 강한 업종에서 감소폭이 컸다는 점 때문에 AI가 청년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Q2. AI가 생산성을 높여준다면 청년에게 오히려 좋은 것 아닌가요?
A: 개인에게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고객지원 상담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AI를 사용했을 때 평균 생산성이 14% 증가했고, 초보·저숙련 직원은 34% 향상됐습니다. 문제는 개인의 생산성 향상이 전체 청년의 채용 증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업이 AI를 활용해 더 적은 수의 신입으로 같은 업무량을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신규 채용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AI를 신입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쓸 것인지, 신입을 더 빨리 숙련시키는 수단으로 쓸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Q3. 앞으로 신입사원은 어떤 일을 해야 하나요?
A: AI가 잘하는 일을 피하기보다 AI의 결과물을 판단하고 책임지는 역할로 초급 직무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신입이 보고서 초안을 처음부터 작성했다면, 앞으로는 AI가 만든 초안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오류와 편향을 찾아내고, 조직의 맥락에 맞게 수정하고,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을 맡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요구되는 역량도 달라집니다. 단순 문서 작성이나 정보 검색 능력보다 검증 능력, 비판적 사고, 맥락 이해, 커뮤니케이션, AI 활용 능력의 중요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Q4. 결국 AI를 잘 쓰는 청년은 오히려 유리해지는 것 아닌가요?
A: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경협 조사에서 청년의 64.7%, AI 고노출 직무군의 74.4%가 AI가 자신의 전문성과 커리어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여기에도 격차의 문제가 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67.7%가 AI 활용 능력 차이가 청년층 내부의 소득과 커리어 격차를 확대할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노동시장에서는 단순히 'AI에게 대체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AI를 활용해 더 높은 수준의 업무로 이동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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