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마른 저수지에 속타는 농심
"물 때문에 마을 사람들끼리 싸우고 전쟁이 따로 없습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불볕더위와 비 부족으로 전남광주 곳곳의 저수지가 메말라가면서 농민들의 속도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12일 곡성군 석곡면 방송저수지도 물이 차 있어야 할 자리에 누렇게 말라붙은 흙과 수초가 모습을 드러냈고 가장자리에 조금 남은 물이 있어 이곳이 저수지임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인근 농가 100여 세대에 농업용수를 대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였을 저수지는 수위가 낮아져 황량했습니다.
저수지가 말라붙으면서 이곳에서 물을 받아 농사를 짓는 당지마을과 월계마을 등 7개 마을의 농경지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논바닥은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졌고 곳곳에는 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깊은 틈이 생겼습니다.
지난 6월 모내기를 마친 벼는 푸른빛을 띠고 있었지만 정작 뿌리 아래 흙은 바싹 말라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방송저수지가 이처럼 바닥을 드러낸 것은 수십 년 만에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당지마을 이장 오 모(65)씨는 "논 한가운데까지 걸어갔다 왔는데도 신발과 바지에 물기 하나 없지 않냐"며 "이 정도면 논이 아니라 밭이나 다름없다"고 호소했습니다.
벼 이삭이 패기 시작하면서 10월쯤 정상적으로 벼를 수확하려면 충분한 물 공급이 이뤄져야 하지만, 저수량이 급감하면서 논에 물을 대는 것조차 어려워졌습니다.
심지어 저수지에서 약 4㎞ 떨어진 말단부 논은 이미 물을 공급받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물이 부족해지자 방송저수지 용수에 의존하는 마을 주민들의 분위기마저 뒤숭숭해졌습니다.
지난 5일 소나기가 내리자 주민들은 자신의 논부터 물을 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실랑이까지 벌였습니다.
저수지 물관리를 맡은 주민 이 모(57)씨는 "누구 논은 살리고 누구 논은 말릴 수도 없는 일 아니겠느냐"며 "물이 워낙 귀해지니까 평소에는 잘 지내던 사람들끼리도 언성이 높아지고 다투는 일이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방송저수지의 총저수량은 18만8천t이지만 이날 남아 있는 물은 1만3천800t에 그쳐 저수율은 7.7%까지 떨어졌습니다.
주민들은 양수기와 펌프를 동원해 주변 하천에서 물을 끌어오거나 남은 물을 아껴 쓰며 버티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올해 벼농사를 망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오 씨는 "논에 물이 없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물길을 살피고 있다"며 "몇 달 동안 키운 벼가 눈앞에서 말라가는 걸 보고 있자니 속이 타들어 간다"고 말했습니다.
곡성뿐 아니라 전남 곳곳에서도 가뭄 여파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부터 곡성·광양·구례·영광·장성·화순은 저수율이 '주의'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전남지역 저수지는 평소 이맘때 담겨 있어야 할 물의 68.2% 수준에 그치면서 평균 저수율도 44.1%까지 떨어졌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전남지역 저수지 1천50곳 가운데 145곳이 가뭄 '경계' 또는 '심각' 단계입니다.
폭염과 가뭄에 따른 농작물 피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이날까지 접수된 폭염·가뭄 피해 면적은 벼, 콩, 밭작물, 과수 등을 합쳐 93.64㏊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가뭄이 길어지면서 한국농어촌공사와 통합시도 말라가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가뭄 상황실을 가동하고 용수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물이 부족한 지역에는 인근 하천과 저수지를 잇는 간이양수장을 설치해 하루 최대 2천t의 물을 공급하고, 장성호와 담양호처럼 저수량이 비교적 많은 곳은 방류와 단수를 반복하며 한정된 물을 나눠 쓰고 있습니다.
하천마저 바닥을 드러낸 곳에서는 저수지에서 흘려보낸 물을 보에 가둔 뒤 다시 퍼 올려 농업용수로 활용하는 방식도 동원됐습니다.
한 방울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긴급 급수는 14개 시·군 210곳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급수차와 양수기를 투입하거나 하상을 굴착해 용수를 확보하는 작업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이날 오전에도 북구는 관내 농업용 저수지인 삼각제에 살수차 4대를 동원해 농업용수 64t을 긴급 지원했습니다.
가뭄의 여파는 농업용 저수지를 넘어 광주 지역 주요 상수원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날 광주 지역 상수원인 동복댐의 저수율은 49%, 주암댐은 38.9%까지 떨어졌습니다.
통합시는 추가 강우가 없더라도 9월 말까지는 용수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비가 계속 오지 않을 경우 제한급수, 대체 취수원 확보 등 대책을 마련할 방침입니다.
통합시 농업정책과 관계자는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으면서 농업용수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가용 장비와 수원을 최대한 활용해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피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대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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