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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정부에서 군인 노릇 하기의 어려움 [취재파일]

한기성 육군 제1군단장이 예하 부대에 빈총 경계를 지시했을 뿐 아니라, 북한군 접근시 경고통신·사격을 자제하라는 지침도 내린 것으로 밝혀져 군이 야당으로부터 혼쭐이 났습니다. 앞서, 육군 제21사단은 위병소 근무시 소총 대신 삼단봉을 휴대하도록 수칙을 바꾼 사실이 발각됐습니다. 이재명 정부에서 군 기강이 느슨해졌다는 비판이 솔솔 나옵니다.

빈총 경계, 경고통신·사격 자제, 삼단봉 휴대와 은근히 연결되는 민군 관계의 성향이 있습니다. 진보 정부의 대북 인식은 친화적입니다. 이재명 정부 같은 진보 정부는 북한과 더불어 평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군은 본연의 공격성을 누그러뜨려야 하는 직간접적 압박을 받습니다. 남북 군사적 충돌을 꺼리는 정부 분위기에 군은 "방아쇠에 걸었던 손가락을 살짝 풀어야 하나"라는 갈등, 유혹에 빠집니다. 공격 본능 죽이랴, 눈치껏 머리 쓰랴 군인 노릇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울러 진보 정부의 군은 차포 떼놓은 장기판 위에 내몰립니다. 육사 출신 장성들에 대한 진보 정부의 뿌리 깊은 반감으로 인해 군 지휘부가 '육사 배제, 비육사 우대'의 원칙으로 구성되기 때문입니다. 우수한 장교를 무더기로 사장하는 격이라 비안보적, 비경제적, 비합리적입니다. 여기에 더해 육사는 이재명 정부에서 계엄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해체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진보 정부의 간섭과 통제…수세 강요받는 군


진보 정부의 대북 인식은 친화적입니다. 반면에 군은 언제나 북한을 적대적으로 바라봅니다. 민군의 대북인식 충돌입니다. 그래서 진보 정부는 군을 믿지 못 하고 작전지침 완화 같은 방법으로 군을 간섭·통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보 정부의 이런 경향은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문민통제가 개시된 이래 첫 진보 정부인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확연하게 표면화됐습니다.

제1연평해전 교전 중인 참수리 325호정(오른쪽). 이 함정은 제2연평해전에도 참전했다.

1999년 6월 제1연평해전과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시한 선제사격 금지 수칙이 적용됐습니다. 선제사격 금지 수준의 작전지침 완화는 군에 대한 정부의 가장 수위 높은 간섭·통제입니다. 2001년 6월 북한 대형 상선들이 잇따라 한국 영해를 침범했을 때 한국 해군은 검색, 승선, 정선, 나포 등의 교전규칙을 하나도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국방장관과 NSC의 승인을 받고 작전하라고 지시했지만 장관과 NSC는 별다른 지침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2003년 5~11월 북한 어선이 수시로 NLL을 월선하자 노 전 대통령은 "우발적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 "서해상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라"는 수세적 지침을 내렸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우발 충돌 방지 의지는 남북의 함정들이 국제상선공통망으로 교신하도록 규정한 2004년 남북 6.4합의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군은 못마땅했습니다. 해군은 2004년 7월 14일 NLL을 침범한 북한 함정을 경고사격해서 쫓아낸 뒤 교신한 사실을 은폐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공식화되지 않았을 뿐 작전지침 완화가 있었습니다. 지침 완화의 내용은 북한 도발을 정확히 파악한 뒤 대응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쪽에서 남쪽으로 사격을 했다면 한국군은 피탄 피해가 분명한지 확인한 다음에야 대응하는 식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군에 작전지침 관련 어떤 조치를 하달했는지 현재까지 드러난 바는 없습니다. 다만 1군단과 21사단에 식별된 빈총 경계, 경고통신·사격 자제, 삼단봉 휴대 등은 진보 정부에서 자의든 타의든 나타남직한 군의 행동 양태로 평가됩니다. 육군의 한 장성은 "만약 현재가 보수 정부 체제라면 1군단장이나 25사단장이 빈총, 삼단봉을 상상이나 했겠나"라며 혀를 찼습니다.
 

진보 정부의 육사 홀대


문재인 정부는 진보 정부 중에 육사 출신 홀대의 첫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2017년 8월 단행된 4성 대장 인사에서 육군 독식의 합참의장 자리에 공군참모총장이던 정경두 대장을 앉혔습니다. 참모총장, 연합사부사령관, 1·2·3군 사령관 등 육군의 5명 대장 중 두 자리를 학군, 3사 등 비육사 출신에게 내줬습니다. '비육사 약진'이라는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넉 달 뒤 준장 진급 77명, 소장 진급 30명, 중장 진급 2명 등 대대적인 장성 인사를 했습니다. 이전에는 비육사 출신이 20% 미만이었는데 30%대로 껑충 뛰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2020년 9월 학군 출신 남영신 대장의 육군참모총장 기용이었습니다. 51년 만의 비육사 출신 총장입니다. 남 총장은 한 오찬 자리에서 기자에게 "비육사 출신 장군 비율을 올려야 하니까 몇 달만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비육사 출신 중용에 힘을 썼습니다.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장성 진급 신고 및 삼정검 수치 수여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진급 장성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2.3 계엄을 딛고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육사 출신 배제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입니다. 국군의 전체 중장 중 3분의 2를 교체한 작년 11월 장군 인사를 통해 "진보 정부에서 육사는 찬밥"이라는 공식이 굳어졌습니다. 육군 중장 진급자 14명 중에서 비육사 출신은 5명에 달했습니다.

더 나아가 육사는 이재명 정부에서 해체될 운명입니다. 국방부와 민주당은 그동안 사관학교 통합의 목적으로 육해공 합동성 강화, 미래전 대비, 우수 자원 유치 등을 내걸었지만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사관학교 통합은 육사에 대한 단죄, 문책의 차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보수 정부의 과도한 자율 보장과 육사 우대


보수 정부와 군의 상호작용은 진보 정부 때와 정반대입니다. 보수 정부와 군의 대북 인식은 똑같이 적대적입니다. 보수 정부는 군의 작전을 통제할 이유가 없습니다. 군의 재량권을 백분 인정해서 자율성을 보장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 정부 시기의 2009년 11월 대청해전입니다. 북한 경비정이 50여발 쏠 때 한국 해군 함정들은 4,950발로 100배 응수했고,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은 "현지 지휘관에게 지침을 주고 재량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해전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한국의 어르신들이 금강산에 갔을 때 한국군이 북한군 소초나 함정을 향해 경고사격한 적도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14년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북한 고위급 3인방이 참석하고 남북 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3인방 복귀 사흘 뒤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하자 한국 해군 함정이 불을 뿜었고, 최윤희 당시 합참의장은 "의장의 지침과 현지 부대의 판단에 따라 조준격파사격으로 대응했다"고 말했습니다.

2012년 6월 육군 3사단을 방문한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이 장병들을 격력하고 있다.

보수 정부의 대북 작전지침은 김관진 전 장관이 창안한 선조치 후보고로 대표됩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하라는 '즉강끝' 지침으로 발전했습니다. 국방장관, 합참의장, 참모총장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위권을 부르짖으며 군의 공격 본능을 자극했습니다. 군의 자율성은 보수 정부를 거치면서 점점 강화됐습니다.

보수 정부의 육사 사랑도 유별납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 연합사부사령관, 지상작전사령관은 육사 출신 전용이 됐습니다. 후방이라서 중요도가 떨어지는 2작전사령관 한 자리만 비육사 출신에게 허용됐습니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6대 4였던 육사 출신과 비육사 출신의 장성 비율은 윤석열 정부에서 거의 8대 2까지 벌어졌습니다.
 

진보와 보수의 극단적 문민통제…좌우로 널뛰는 군


군인들은 진보 정부에서 군인 노릇하기가 고달프다고 입을 모읍니다. 청와대 시어머니는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고, 대북 작전 할 때는 정치적 고려까지 하느라 골치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장교들이 많습니다. 보수 정부에서 군인들의 처지는 180도 바뀝니다. 청와대 눈치 덜 봐도 되고, 본능대로 총 쏜들 타박하는 사람 없습니다. 배운 대로, 몸 가는 대로 행동하면 됩니다. 군인 노릇하기가 나름 편합니다.

그렇다면 보수 정부가 안보를 잘하는 것인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남북 대화 국면, 금강산 이산가족 행사에 아랑곳 않고 총과 포를 쏴대는 무지성의 행각, 군의 의지로 전쟁을 불러올 수 있는 무모한 자위권 행사 등으로 안보를 망칠 우려가 큽니다. 과거 보수 정부가 군에 부여하는 자율은 과도했습니다.

간섭과 자율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문민통제가 필요합니다. 진보, 보수 정부가 모두 동의하는 균형과 중도의 문민통제가 작동해야 군인들도 정권에 따라 좌우로 널뛰지 않고 안정적으로 나라 지킵니다. 육사, 비육사 갈라치기 줄여 고급 전투력 보존에도 도움이 됩니다. 두루두루 안보에 도움 되는 방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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