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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8NEWS] "대학 나와도 남은 건 배달뿐입니다"…시진핑이 애써 감춘 '1,270만 명'의 진실

00:00 인트로
00:30 "대학 나와서 배달 뜁니다"…하루 11시간에 150만 원
02:18 "학생은 뺐습니다"…실업률 15.6%의 함정
03:24 "어차피 썩었으니 더 썩어라"…쏟아지는 1270만 명
04:39 일자리는 왜 사라졌나…규제·미스매치·미중 갈등
06:14 "시진핑이 다급해졌다"…체제 흔드는 청년의 좌절

저는 지금 음식점이 많이 몰려 있는 베이징 시내의 한 거리에 나와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주문이 몰려드는 저녁 시간이라서 배달 기사들이 이렇게 줄줄이 대기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는데요. 중국어로 배달은 '와이마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배달 기사들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노란색은 메이퇀, 붉은색은 징둥. 이렇게 각자 속한 회사마다 다른 옷을 입고 온종일 거리를 누비는 겁니다.

1. "대학 나와서 배달 뜁니다"…하루 11시간에 150만 원
배달 기사 중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앳된 얼굴들이 많아서 몇 명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정규직과 임시직이 섞여 있는데 일하는 시간은 보통 하루에 11시간 정도였습니다.

#배달 청년
(8시에 출근, 저녁 7시 반 퇴근인가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있어요. 배달 기사는 많은데, 주문이 적어서 쉽지 않습니다. 사회 환경 때문에 모든 게 더 어려워요."

제가 만난 청년들은 주로 우리로 치면 중학교를 갓 졸업했거나 직업훈련을 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돈을 벌기 위해 나온 경우가 많았고 고향은 베이징이 아니었습니다.

#배달 청년
(왜 베이징에 왔어요?)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베이징은 북부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곳이에요."

초창기만 해도 한 달에 우리 돈으로 치면 300만 원 정도 벌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워낙 경쟁이 치열한 데다 경기 침체로 인한 배달 주문이 줄어서 한 달 꼬박 일하면 약 150만 원 정도를 번다고 합니다.

#배달 청년
"하루에 40건 정도 배달합니다. (한 건에 얼마를 버나요?) 1천100원에서 1천200원 정도예요."

대학을 나와서 기업문을 열심히 두드렸지만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배달 일에 나선 청년들의 사연도 SNS에 종종 올라오는데요.

#배달 청년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온 형이) '너 내가 어떤 학교 졸업했는지 알아? 나 신장재경대학교 졸업했어'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다른 형이 '나도 대학 나왔어. 지난해 졸업했는데 올해 배달기사 하러 나온 거야.' 정말 공교롭죠? (저를 포함해) 세 명의 대학 졸업자가 모인 거예요.

2. "학생은 뺐습니다"…실업률 15.6%의 함정
지금 중국 주요 도시의 거리 풍경이 청년 고용의 잔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인 셈인데 최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16세에서 24세 사이 청년 실업률을 보면 15.6%입니다. 이 숫자만 놓고 보면 20%를 넘던 예전에 비해 좀 내려간 게 아닌가라고 착각을 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에는 커다란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중국 당국이 이 통계에서 학생을 전면 제외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2023년 6월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인 21.3%까지 치솟자 통계 발표를 두 달 넘게 갑자기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통계 개편을 거쳐서 학생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산정 방식을 바꿔 발표를 재개했는데요. 중국 정부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학생의 본업은 공부고 구직 시장의 진짜 실업자로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일자리를 못 구해 졸업을 미루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방식으로 '고용 유예' 상태에 있는 많은 수의 청년을 통계에서 빼버림으로써 수치를 인위적으로 낮춘 이른바 '착시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체감경기상 실제 청년 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는 추정이 계속 나오는 겁니다.

3. "어차피 썩었으니 더 썩어라"…쏟아지는 1,270만 명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올해는 특히 노동시장으로 사상 최대의 대학 졸업자가 쏟아졌습니다. 무려 1천270만 명입니다. 2022년 처음으로 1천만 명을 돌파한 이후에 매년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건데요. 서울시 인구 전체보다도 많은 사회 초년생이 매년 한꺼번에 고용시장으로 쏟아지는 셈입니다. 문제는 일자리의 질과 양 모두 이 폭발적인 공급을 받아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중국 청년사회에서는 몇 년 전부터 '탕핑', '바이란' 이런 말들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탕핑은 말 그대로 열심히 무언가를 하지 않고 누워 지낸다는 이야기인데 바이란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상황이 어차피 썩었으니 더 썩어버리라는 식의 극단적인 무관심이나 자포자기 상태입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좋은 직장 얻기 어렵고 집 한 채 마련하는 건 더더욱 어렵고 신분 상승이나 계층 이동은 불가능하다고 느껴서 아예 주저앉아버린 청년들이 늘고 있는 겁니다.

#취업 희망 청년
"(학창 시절) 질문도 많이 했고, 졸업하면 취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력서를 보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무도 저를 원하지 않습니다."

4. 일자리는 왜 사라졌나…규제·미스매치·미중 갈등
중국의 청년 실업률이 이렇게 떨어지지 않는 원인은 몇 가지가 있는데요. 일단 청년들이 선호하는 산업에 대한 규제 영향이 큽니다. 우리나라 청년들도 비슷하겠지만 중국의 고학력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는 일자리는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빅테크 IT 기업입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중국 정부가 이런 분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청년층 고용에 큰 기여를 했던 이런 분야의 고용이 크게 위축됐습니다. 여기에 사교육 시장에 대해서도 중국이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을 줄이겠다며 교육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바람에 수백만 개의 고학력 일자리가 사라진 상태입니다. 최근 자녀가 '가오카오'라는 중국 대학 입시를 치른 학부모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사교육 시장이 아예 다 사라진 건 아니라고 합니다. 다 알음알음 구해서 하고 있다는 거죠. 하지만 예전처럼 대놓고 할 수는 없다 보니 그 규모가 크게 줄어든 상태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른바 '미스매치'입니다. 중국은 명실상부한 제조업 강국으로 관련 현장에 일자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힘들게 대학을 졸업한 1,200만 명의 청년들은 3D 업종이나 공장 라인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거죠. 그나마도 이런 제조업 현장에 로봇들이 속속 도입되면서 단순한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여기에 내수 경기 침체와 계속된 미중 갈등으로 기업들이 미래를 불확실하게 보면서 신규채용을 보수적으로 하는 탓에 일자리의 파이 자체가 늘어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5. "시진핑이 다급해졌다"…체제 흔드는 청년의 좌절
청년들의 불만과 고용 위기는 중국이 절대 방치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얼마 전 있었던 중국 공산당 창당 105주년 기념 연설에서 시진핑 주석은 청년에 대해 이례적으로 길게 언급했습니다. 보통 창당 기념 연설은 당의 위대한 업적이나 대외 안보 같은 국가적 담론을 밝히는 자리인데 시 주석은 '청년'이라는 단어에 강한 방점을 찍었습니다.

#시진핑/중국 국가주석
"청년은 중국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주력군입니다. 온 당이 청년들을 중시하고,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청년들을 지지해야 합니다. 청년의 성장을 돕고 인재로 키워내기 위한 조건을 창조해야 합니다"

일자리를 잃고 희망을 놓아버린 청년층의 좌절감이 사회 불만으로 이어지면 공산당 체제의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는 그런 위기감이 깔린 겁니다. 결국 거리로 내몰린 청년 배달원들의 모습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서 지금 중국 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하는 가장 시급하고 국가적인 과제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취재 : 최고운, 구성 : 김수형, 촬영 : 최덕현, 영상편집 : 홍진영, 디자인 : 안혜민, 제작 :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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